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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균동 Apr 23. 2023

결국 열정 있는 사람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퇴사 후 아내와 함께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는 한 달 동안 이탈리아와 스위스, 프랑스를 여행했는데, 그곳의 모든 순간들을 잊고 싶지 않아 사소한 상황에도 사진을 촬영했다. 얼마나 찍어댔는지 스마트폰은 보조 배터리 없이 몇 시간도 버티지 못했고, 저장공간이 부족하다는 메시지는 수시로 울렸다. 나는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촬영한 사진들을 찾아본다.


이탈리아 로마 거리 - 이곳은 정말 대충 찍어도 이쁘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왜 여행 중에 마주친 인연들은 크게 기억에 남지 않는 걸까?


정말이었다. 우린 분명 여러 관광지를 경험했지만, 함께 있었던 '사람'을 기억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뭐... 나와 아내가 워낙 내향적인 성격이라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치했고, 그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열정'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그들을 마주한 시간은 길든, 짧든 상관없었다. 그저 기본적으로 발산하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우리의 머릿속을 강하게 찔러 하나의 기억으로 남은 것이다.


나와 아내는 로마에서 한 명의 요리사가 운영하는 작은 레스토랑에 방문했다. 그곳은 테이블 수도 적고, 위치도 좋지 않았지만 예약 없이는 갈 수 없었던 트러플 요리 맛집이었다. 우린 그곳의 대표 메뉴인 트러플 파스타를 주문했는데, 소스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바닥이 보이도록 싹싹 긁어먹었다. 그 모습을 본 요리사는 세상 행복한 얼굴로 손키스를 날리며 감사의 표현을 했다. 우린 식사 중 예상치 못한 그녀의 세레머니에 당황했지만 곧바로 함께 웃었다. 그녀는 자신의 음식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요리사였고, 눈앞에서 요리하는 모습은 행복함 그 자체였다. 식사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그녀는 후식으로 자신이 직접 만든 티라미수를 제안했다. 우린 이미 배가 많이 부른 상태였지만, 그녀에게 느껴지는 열정을 믿고 주문해 보기로 했다. 그 결과, 그 티라미수는 내가 살면서 먹어본 티라미수 중 가장 맛있는 디저트로 기억에 남게 됐다. 열정이 느껴지는 사람은 음식도 기억에 남게 하나보다.


또 가이드 투어 때의 일이다. 아시다시피 유럽은 관광 포인트가 굉장히 많다. 이 때문에 모든 일정을 자유 일정으로 보내기엔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우리는 주요 관광지 여섯 곳을 정해서 해당 지역을 방문할 땐, 가이드 투어로 일정을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이탈리아에선 로마의 바티칸, 남부의 포지타노, 피렌체의 우피치/두오모를 프랑스에선 몽생미셸과 루브르를 여러 가이드와 함께 보냈다.


바티칸 미술관 (1번, 2번 사진) / 포지타노 (3번 사진)


짧은 기간 동안 여러 투어 일정들을 소화해서 그런 걸까? 우리는 가이드 상품마다 만족스러웠던 부분과 아쉬웠던 부분을 비교하게 됐다. 각자만의 매력들은 분명했다. 차분하지만 중간중간 피식하는 드립을 던지며 설명해 주는 가이드, 또 다른 가이드는 자신만의 콤플렉스였던 말투를 활용하여 투어 일정을 재미있게 진행했다. 그리고 긴 일정에 다양한 오락 콘텐츠를 삽입하여 즐거운 여행을 이끈 엔터네이너형 가이드도 있었다. 다들 자신만의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에 사진을 보면, 그 가이드의 모습도 함께 생각이 났다. 반대로 기억에 남지 않았던 가이드는 마치 우리가 회사에서 지루한 업무를 간신히 해결하는듯한 느낌을 줬다. 매번 반복적인 일정을 해내야 하는 그들의 고충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그 가이드들과 함께한 여행은 큰 기억으로 남지 않았다. 그저 그날의 사진만 남아있을 뿐이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1번, 2번) / 우피치 미술관 (3번)


난 이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람은 엔터테이너형 가이드였다. 가이드가 직접 기획한 다양한 콘텐츠 덕분에 15시간의 긴 일정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또 특정 관광지에 도착하면 그곳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주는 센스도 있었으니, 이제 그 음악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그 장소가 떠오른다. 그리고 항상 무언가를 설명할 때 "나 여기 처음 왔을 때 진짜 행복해 죽을 뻔했는데... 너희도 그랬으면 좋겠어! 어때? 최고지??"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관광 포인트를 보다가도 그의 열정적인 모습에 몇 번씩이고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순간 그가 살아가는 세상이 부럽게 느껴졌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고, 누군가를 도울 마음을 갖는다면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사실 나는 내가 선택한 일이 진정 원했던 일인지 확실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열정적일 수 있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과거에는 '성공'과 '돈'을 먼저 떠올렸다면, 이제 '행복'과 '열정'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열정'이란 단어를 갈망하고 있다. 그래 계속 부딪혀 보자! 나도 당신도 결국 정답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면 모두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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