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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상록79회

해월 최시형선생을 만나다.

by 안병권



1979년부터 시작된 인연, 서울농대 입학하고 김상진열사 양심선언문에 매료되고 좋은세상 만들자 각자 써클에서 역할을 감당했다. 공부하고, 모임하고, 치열하게 토론했다. 시위하고, 감옥 가고, 학교 짤리고, 군대 끌려갔고 프락치활동을 강요 받았다. 다양한 경로를 거쳐 노동운동, 빈민운동, 농민운동, 사회운동으로 삶결은 이어졌고, 이후로도 각자의 삶결로 60대 중반을 넘겨 살아 간다.

해마다 한번씩 정기모임 형태로 전국을 순회한다.


이번엔 ‘상록79회 박동섭과 함께하는 여주여행’. 박동섭군이 운영하는 공장에 이웃한 풍광수려한 기숙사에서 꿈결처럼 불멍,술멍... 46년간의 우정을 시간 가는줄 모르게 나누고 쪼개고 더하고 곱했다. 박동섭 안식구의 정성 어린 식사와 뒷받침 안에서 우린 마음껏 각자를 이야기했고 추억을 건져 올렸다. 그리고 만들어가야 할 미래를 토하듯 내 뱉기도 했다.


지난 4월 김상진열사 50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장으로서 상록79회의 후원금 1천만원 기여에 대하여 동료들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이튿날 여주시 강천면 도전2리 전거론을 방문했다.

1897년 8월부터 1898년 1월까지 5개월간 최시형선생이 관군의 추격을 피해 은거하신 곳이다. 해월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천식천(以天食天)” 사상을 설파했다. 이는 ‘먹는 자도 하늘이고, 먹히는 자도 하늘이며, 하늘이 하늘을 먹이고,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동학의 생명존중 사상을 대표하는 핵심 철학이다. 또한 이 곳은 동학 3세 교조 의암 손병희가 도통을 전수 받은 장소이며, 해월의 둘째 아들이자 독립운동가인 최동호가 태어난 역사적 의미도 지닌다.


해월이 목욕하고 휴식 취했던 장수폭포에 발을 담그고 선생의 ‘뜻과 지향’을 마음껏 누렸다. 최제우, 최시형, 손병희,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김덕명등 현시점 K-민주주의 출발점 동학사상의 실행자들을 연결연결 생각하는 시간과 공간이기도 했다.


상록79회는 윤석열탄핵 및 국민주권정부 수립을 자축했다. 그리고 각자의 영역에서 젊은 세대가 일을 잘 풀어가도록 뒤에서, 옆에서 돕는 ‘말벌동지’역할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동시에 여차하면 현장에 적극 결합하면서 시민으로서의 힘을 북돋기로 한다. 힘 닿는데 까지.

친구들의 건강과 무운을 빈다.

장수폭포.jpg 해월선생이 목욕하고 휴식을 취하던
KakaoTalk_20250706_074236547_18.jpg 신륵사에서
기숙사앞.jpg 박동섭군 기숙사에서
낮술.jpg 낮술멍
불멍.jpg 불멍
식당에서.jpg 티타임
안내판앞에서.jpg 전거론 안내판
은거지.jpg 해월 최시형 은거지
정갈한해장밥상.jpg 아침해장국
정봉수라이브.jpg 정봉수군의 취멍 라이브 발언대
출렁다리.jpg 출렁다리
폭포앞.jpg 장수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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