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일기
진실규명 대상자 안병권의 진술 내용 및 보안사령부 개인별 존안자료 내용을 종합할 때 대상자는 군 복무 중 ‘특수학변자 심사 및 순화계획’에 따라 동향관찰 등 특별 관리를 받은 사실, 제203 보안부대로 연행되어 학생운동 전력에 대해 조사를 받고 사상 전향 및 프락치 활동 강요를 당한 사실, 전역 후 사찰을 당한 사실 등 인권 침해 피해 사실이 확인된다. _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규명결정문
윤석열 내란 진압중인 결전의 시기에 저의 ‘20대 청춘’이 날아왔습니다. 60대 중반에 서서 조국의 안위, 조국의 민주주의가 결정적으로 흔들리는 시점에 맞이한 제20대가 담긴 결정 통지서는 또 다른 의미로 새록새록 제 인생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사건번호 2라-17355-4, 사건명은 대학생 강제징집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4)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결정서가 등기로 도착했습니다.
20대로 날아갑니다. 1979년 윤석열과 같은 해에 입학했습니다. 3학년때인 1981년, 학내 시위로 두 친구는 구속되고, 나는 현장 주동 혐의로 1년 무기정학을 받습니다. 1년 만에 1982년 가을학기로 복교했습니다. 겨울을 지내고 83년 신학기 6월 8일, 서울농대 수원캠퍼스에서 ‘전두환정권 타도’ 반파쇼 학내 시위를 기획합니다. 바로 밑 학번(80) 두 명의 친구가 데모를 주동하고 구속됩니다.
그날 학교 앞 아미분식점에서 각 후배들과 함께 상항 파악하고 정리모임을 가졌는데, 제 담당 형사들이 분식집 담벼락에 녹음기를 설치했고, 다음 날 수원 서둔동 자취방으로 형사 3명이 찾아와서 체포당했습니다. 4일간 조사를 받고 6월 13일, 영장없이 의정부 101보충대 거쳐 철원 백골 3사단 신병교육대로 강제징집 당했습니다. 부모님이나 친구·동료들 얼굴 볼 틈도 없이 전격적인 조치였습니다.
수원경찰서, 문교부와 서울대, 보안사령부의 협조로 이루어진 강제징집녹화공작 프로젝트입니다
이 과정을 진상규명결정서는 이렇게 기록했다.
진상 규명 대상자 안병권의 학적부, 병적기록부, 보안사령부 개인별 존안자료 카드, 서울대학교 학생처 생산 자료 등을 확인한 결과 대상자는 서울대학교 재학 중 1983년 6월 8일 학내 시위 참여 및 시위 관련 언동이 수원경찰서에 적발 뒤 6월 9일 연행 조사 후 ‘소요관련 대학생 특별조치 방침’에 따라 지도 휴학 및 현지 입대 조치되어 1983년 6월 13일 강제 징집된 사실이 확인된다.
그로부터 40년 만에 20대로 돌아가 제 삶의 여정을 되돌아봅니다. 비슷한 시기에 제 친구 한희철을 비롯 많은 강제징집자들이 보안대의 고문과 회유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군대생활하면서 녹화공작에 저항하면서 끊임없이 일기도 쓰고 독서량을 늘려서 견디어냈습니다. 이후 평생을 나름 일관되게 재미있게 사나 싶었는데 윤석열 내란세력들의 준동이 또다시 삶을 불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젊은 세대의 ‘응원봉혁명’으로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재구성되고 디자인될 조국의 미래를 예쁘게 상상하고 있습니다.
강제징집 녹화공작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재판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임에 대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1차, 2차 손해배상 승소 판결이 나면서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시기에 진행되었던 대학생 강제징집프락치 선도공작 사건에 대한 책임이 공식화 가시화 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약 3천 명 정도 강제 징집 선도 공작 녹화 공작 프락치 강요 등 다양하게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분들이 많은데요. 이 결정문을 받아들고 자료를 더 준비해서 동지들과 함께 더 냉정하게 재판에 임할 생각입니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국민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날을 위한 싸움은 평생 진행되고 있는 듯합니다. 윤석열 내란세력에 대한 잔인한 진압과 새로운 사회구성체 결성, 민주공화국의 재구성 이런 목표들을 돕는 일상활동을 실행의제로 삼아 제 삶의 여력을 바치고 싶습니다.
재판과 동시에 국가폭력으로 피해를 입었던 분들에 대한 채록, 인터뷰 촬영 작업들을 촬영팀을 꾸려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생성되는 밑 자료들을 중심으로 길고 짧은 다양한 이야기로 세상에 표출해내는 작업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2025년도 올해부터는 핵심 업무로 작동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동시에 1975년 서울 농대 대강당 캠퍼스에서 박정희 유신 독재 정권에 항거하여 양심 선언문을 낭독하고 할복 자결하신 김상진열사 50주기가 되는 해라서 4월 11일, 50주기 기념행사 추진위원장으로 관련사업에 열일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어떤 그림을 그려야 될지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될지 어떤 콘텐츠로 김상진 열사의 뜻을 세상과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실행 또한 숙제로 남겨져 있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로부터 강제 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 진상규명 결정 통지서를 받는 날, 20대의 안병권과 60대의 안병권은 치열하면서도 동시에 연대적 느낌을 공유합니다. 윤석열 내란 진압과 김상진 열사추모, 국가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기록과 채록, 영상스토리텔링등 이런 작업들에 매진하라는 ‘남은 인생 결정명령서’와 뜻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