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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랑 Aug 09. 2023

뜨거웠던 만큼 그리워지다.

내가 뜨겁게 사랑한 도시 Doha, Qatar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빛에 반짝거리는 코니쉬해변. 그 곁으로 맘껏 자태를 뽐내는 빌딩 숲 사이로 신기루가 아른거린다. 화려하고 뜨거운 나라 카타르. 한국에서 검색해 그려보던 그곳의 모습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뜨겁고 기대했던 것보다 다채로웠다.


아직은 개발이 한창이던 2013의 카타르. 10년 전 나는 카타르라는 미지의 나라에 처음 발을 붙였다. 려한 도심지와는 달리 소박하던 주택가 작슈퍼에서 양배추와 당근을 고르면 "7 Riyal(2100원)"하며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던 인도 주인 아저씨. 너무 싸서 "Really?!!!!" 하는 내게 비싸서 묻는 줄 알고 "Ok ok 5 Riyal, okay?" 하며 되려 깎아주던 웃긴 미스 커뮤니케이션이 다반사였던 곳. 낙타가 걸어 다니고 팔콘이 푸드덕거리던 전통시장 쑥 와프. 무슬림 국가답게 하루 다섯 번 어김없이 울려 퍼지던 기도소리. 구김 하나 없는 순백색의 디시다쉬를 입고 선글라스와 시계, 멋들어진 수염과 진한 향수로 멋을 낸 카타리. 그 옆으로 우아하게 줄지어 물속에서 헤엄치듯 걸어 다니던 아바야를 쓴 여인들. 한여름 50도를 육박하던 찌는 날씨에 찾았던 시원한 bar, 그곳에서 더위를 식히며 시원한 맥주잔을 부딪히던 외국인들. 만국이 공존하던 매력적인 나라 카타르.



항공사 준비를 하기 전까진 듣지도 보지도 못했그곳으로 무작정 떠났던 스물여덞의 나. 그 시절만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과 청춘의 충만했던 용기로 카타르라는 곳을 만나고 그곳에서 5년 넘게 살아냈다. 


한동안 돌아오지 못할 한국을 떠나던 날. 집채만 한 짐을 두 개나 이고 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같은 날 입사하는 동기들의 낯선 얼굴 사이로 보이는 익숙한 친구의 존재가 그날따라 더 애틋했다. 왠지 모르게 어색한 공기가 작별을 준비하는 아쉬움을 뒤덮었다. 입국장에 들어서서 서로의 모습이 안 보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흔들던 친구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순간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새로운 시작 앞에선 어김없이 마지막도 찾아온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5년 후, 카타르를 떠나며 그때보다 더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 느새 다섯 번이나 사계절이 왔다가 다시 갔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마다 카타르의 날씨를 떠올려본다. 훅훅 찌는듯한 더위도, 조금 선선해져 쌀랑하게 불었던 바람도 다시금 느끼고 싶어 진다.


습관처럼 시계를 보며 6을 더했다, 뺏다, 한국과 카타르의 시차를 계산해 본다. 카타르보다 앞서가는 한국의 시간으로 돌아와 살면서도 느지막이 따라오는 카타르의 시간을 떠올리며 그 시간대의 풍경들을 눈감고 그려본다.


그곳이 이토록 그리운 곳이 될 줄은, 그땐 몰랐다.


사막의 모래바람 때문에 쉽게 누렇게 색이 바래기 쉬워 건물 색을 황토색이나 노란색으로 칠하는 중동.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던 처음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변했고 외국항공사의 승무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저 고되고 외롭다고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숙소 밖 황토색 건물들이 쩍쩍 갈라지는 내 맘처럼 척박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힘을 내고 그곳에서 묵묵히 살아낼 수 있었던 건 함께해 준 인연 덕분이었다. 함께 미국으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아시아로 전 세계를 날아다니던 착하고 다정한 동료들이 어느새 내 곁에서 든든하게 자리를 채워준 덕분에 잃어버린 초심을 다시금 되찾고 그곳을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게 됐다.


꼬불꼬불한 곱슬머리에 새하얀 피부, 장난끼 가득한 눈에 입가엔 늘 미소가 머물던 튀니지안 플랫메이트 예스민. 깔끔하고 퉁명스러운 폴란드 플랫메이트의 등살에 힘겨워하던 내게 한 줄기 빛이었던 그녀를 통해 푸르른 바다와 그 바다를 담은 아기자기한 집들이 가득한 튀니지를 미리 만났었다. 무엇이든 조심스레 먼저 배려하며 나보다 더 언니같이 어른스럽게 내 고민을 들어주던 일본인 플랫메이트 유미에. 그녀에게서 정갈하고 조용조용한 일본의 정취를 느꼈다. 랜딩사인이 나면 신나서 춤을 추던 케냐 동료들의 소울로 아프리카를 만나고, 쉴 새 없이 고개를 까딱이며 특유의 발음으로 조잘거리던 인디언 동료들에게서 인도의 문화를 만났다.

웃음도 눈물도 아낌없이 쏟아내던 그곳의 하루하루가 지금 이토록 그리운 건 그들이 늘 곁에 있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동서남북으로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가 어김없이 다시금 돌아갔던 나의 최종 목적지, 카타르. 때론 너무 뜨겁고 때로는 너무 차갑기도 했던 나의 도시 카타르를 시작으로 세상 곳곳에 발자국을 많이 찍고 다녔다. 그러면서 나에게 사랑하는 장소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당신에겐 사랑하는 도시가 있나요?"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열흘밤을 새워가며 대답할 수많은 나의 사랑하는 도시들. 그 도시들을 만나러 가는 시작과 끝에 항상 존재했던 Doha, Qatar. 그곳을 사랑했노라고, 그곳에 스민 나의 지난 시간과 그 시간 속 공존했던 사람들을 이토록 그리워하고 있다고 뒤늦게 고백한다. 내 여행의 시작과 끝이었던 그곳. 뜨거웠던 그곳의 온도만큼 더 뜨겁게 그립고, 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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