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지난 주말, 오랜만에 친구들과 1박 2일 부산 여행을 갔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밤에는 광안대교 근처에서 드론쇼를 구경하고, 다음날 낮에는 전망대에 올라 부산 시내 전경과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감상했다. 좋았다. 그런데 왠지 큰 감흥은 없었다. 이미 그런 구경을 여러 번 해봤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주중의 피로가 남아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 어쩌면 무거운 가방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깨가 아파 왼쪽 오른쪽으로 가방을 계속 바꿔가며 멨다.
가방에는 1박 2일 일정에 필요한 소지품도 있었지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책도 들어있었다. 이튿날 오후에 따로 일정이 있어 저녁에 혼자 서울로 올 예정이라 기차에서 읽기 위해 한 권 챙긴 것이었다. 부산역에서 수서역까지 자지 않고 독서를 해보겠노라고 야심차게 챙겼지만, 여행 내내 가방이 무거워 후회하고 있었다.
서울행 기차에 타자마자 눈을 감았다. 몹시 피곤했다. 잠이 올 듯 말 듯했다. 그런데 양 어깨가 욱신거리며 가방 속 책의 존재를 상기시켰다. 얼굴을 찌푸린 채 눈을 뜨며 ‘어휴, 괜히 책 가져와서 어깨만 아프고 말이야. 이렇게 고생하며 들고 다녔는데 몇 장이라도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책을 꺼내 펼쳤다. 그렇게 여행의 끝에서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아주 흥미롭진 않았다. 그래도 책 앞부분 한 줄 평들이 하나같이 극찬이라 인내심을 갖고 찬찬히 읽어나갔다. 다 읽은 뒤 나도 비슷한 찬사를 하게 될까 하는 궁금증도 책을 읽는 원동력이었다. 도서관 반납기한이 다 되었다는 문자를 받은 터라 더욱 속도를 내었다.
점점 빠져들었다. 추리 소설도 아닌데 뒤의 내용이 궁금해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소설은 아니다. 그런데 마치 소설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작가는 실존했던 인물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그의 회고록을 읽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그와 관련된 사람과 흔적들을 찾아다니는 긴 여정을 떠났다. 자료 수집 순서에 따라 또는 작가의 생각이 머무는 순서에 따라 글이 전개되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목에 대한 실마리는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밝혀진다. 답은 명쾌하게 제목 그대로다. 분류학자들에 따르면 조류, 포유류, 양서류는 존재하지만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속에서 산다고 해서 같은 생물 범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무슨 어리둥절한 말인가. 폐어라는 이름을 가진 담수어는 인간과 상당히 가까우며 송어와는 다른 범주다. 상어는 송어와 또 다르며 인간과 훨씬 더 거리가 멀고 진화상으로는 더 오래되었다고 한다. 직관에 어긋나는 개념이라 그 관념이 학계 밖으로는 도저히 퍼지지 않는다는 책 속 전문가의 말에,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결코 편안함을 진실과 맞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 또한 이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작가의 친구가 그 의미를 쉽게 재해석해주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살던 시절, 그 옛날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하늘이, 별들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었다. 그래서 하늘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있다는 주장을 그가 처음으로 했을 때, 그 의견은 완강히 거부당했다. 지동설은 그가 죽고 나서 한참 뒤에야 받아들여졌다. 작가의 친구는 짧고 강력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별들을 포기하면 우주를 얻게 된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면 무엇을 얻게 될까? 작가는 물고기를 포기하고 무엇을 얻었는지 책 말미에서 보여준다. 나에게 이 개념은 여전히 모호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는 유명한 구절처럼 이해하면 되는 것일까? 만일 이 의미가 내가 당연하다 고집했던 것을 내려놓는 것, 옳다 생각했던 것을 포기하는 것, 거기서 더 나아가 내가 살고 있던 세계에서 용기 있게 빠져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나는 2년 전 이 일을 해낸 적이 있다.
퇴사를 결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생 다닐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애정했던 곳을 떠나는 상실감, 선택에 대한 후회, 그리고 약간의 개운함 등이 뒤섞여 휘몰아쳤다. 시간이 흘러 아쉬움은 후련함으로 서서히 바뀌었고, 재충전이 충분히 되었다 싶을 무렵, 새로운 회사로 이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진작 나올걸.’
작가는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애를 뒤쫓았다. 그렇게 끈질긴 추적 끝에 그녀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러나 원하는 인생을 발견했다. 나 또한 퇴사 후 더 넓은 세상을 발견했고, 별들을 포기하고 우주를 얻었다. 끝은 결국 더 큰 시작이었다.
기차에서 자는 대신 책을 펼친 것. 이 또한 어찌 보면 작은 별을 포기하고 소우주를 얻은 것이다. 부산에서 먹은 회보다 더 신선하고, 광안리 드론쇼의 불빛보다 더 영롱하고,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보다 더 넓고 깊게 펼쳐진 세상을 나는 책 속에서 보았다. 가만히 앉아서 떠나는 여행,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 끝에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부산 여행의 여운은 금방 사라졌지만, 이 책의 여운은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 그리고 그 여운의 끝에서 나는 또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