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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zak Feb 10. 2023

시작(seezak)의 6개월

노션페이지 한 장에서 카카오벤처스의 미팅 제안까지


안녕하세요,


디자이너 채용플랫폼 시작(seezak)을 운영하는 Sunny입니다.


작년 7월 12일, 시작팀은 노션 페이지 한 장으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1월 플랫폼을 출시했고, 카카오벤처스로부터 미팅 제안을 받기도 했습니다. 참 다이나믹한 6개월이 지나갔네요.


그동안 팀에 중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글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막상 쓰려니 쉽지 않더군요.

서비스 개발하느라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기도 했고, ‘내가 뭐 대단한 것을 이룬 것도 아닌데’ 하며 썼던 글을 여러 번 지웠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팀원들이 회고 글을 써서 올려달라며 강하게 응원을 해줬습니다(거의 6개월간 강요 수준^^).

그리고 얼마 전 디스콰이엇을 통해 만났던 호패(로그인 SaaS 서비스 ‘Furo’) 팀의 Edward Choi선배님께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회고를 써보라며 적극 권유해주셨는데, 덕분에 용기 내어봅니다. 감사합니다(다 쓰고 보니 결국 가벼운 마음으로 쓰지는 못했네요^^).


최근 <The Messy Middle (국문 제목: 어도비 CPO의 혁신 전략*)> 이라는 책을 접했습니다(*제목 번역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담지 못해 너무나 아쉽습니다). 메시지를 요약하면 ‘시작과 끝(결과)은 쉽다. 중요한 것은 중간이고, 성공의 핵심은 어려운 중간 단계(Messy Middle)들을 이겨내는 데에 있다.’ 인데요.



다소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주제이지만 저에게는 마음 속 깊이 와닿았습니다. 저희 시작 팀이 정확히 ‘Messy Middle’을 경험해왔기 때문입니다.


7월 12일부터 단 하루도 위기가 없던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꾹 참고, 당장 들어닥친 위기를 하나씩 넘고 뒤돌아보니, 어느새 서비스가 우상향 곡선 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더군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위기들은 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앞으로는 더 큰 위기가 올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앞서 극복해온 위기들을 생각해보면, 다가오는 위기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우리팀이 앞으로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대단한 것을 이루는 결과가 아닌, 위기로 가득한 중간 단계와 이를 극복해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 종종 회고를 통해 지나온 중간 단계들을 솔직하게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가는 방향이 맞는 방향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꿈을 좇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여기에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있는 동료가 있다는 위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2022년 7월. 시작

준비하던 서비스를 과감히 버리고, ‘디자이너 채용’ 문제를 풀기로 결정했다. 노션 페이지 ’시작 아카이브’를 하루만에 출시했다. 서비스 운영 2주차에 유저 인터뷰를 하다가 알게 된 유저를 새 팀원으로 영입했다.


디자이너 채용, 어떻게 하지?

2022년 6월 말, 우리 팀은 고려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창업 대회 본선에 진출하여 사무공간을 지원받았다. 당시에는 지금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서비스를 기획 중이었다. 팀 이름도 ‘나비(nabi)’였다.

7월 1일 사무실 입주 첫 날. ‘자- 서비스 개발을 시작해볼까-’ 하고 보니 서비스 UI를 그려줄 디자이너가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팀은 개발자 2명과 운영 팀원 1명으로 구성).

이후 일주일동안 각종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디자이너를 찾았지만, 우리 팀은 단 한명의 디자이너도 만나지 못했다.

의기소침해있던 순간, 나는 문득 ‘디자이너 찾기 어려운 것이 우리만의 문제인가? 다른 팀들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그 작은 궁금증이 이렇게 긴 여정을 만들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시작 사무실 외관. 우리는 2층 방 한칸을 쓴다.


디자이너 채용해보셨어요?

이틀간 고려대학교 캠퍼스타운에 입주해있는 창업팀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른 일은 모두 내려놓고 정말 인터뷰만 했다. 30도가 넘는 찜통 더위 속에서, 안암동 곳곳을 돌아다니며 대표님들을 만나 물었다. “디자이너 채용 해보셨어요?”

인터뷰 결과, 창업팀들이 디자이너 채용 과정에서 겪는 공통적인 문제가 있고, 우리 팀이 겪고 있는 문제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디자이너 구인 공고를 어디에 올려야할지 모르겠다. 에브리타임이나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구인 공고를 복붙해두긴 하는데, 결국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해 지인 소개에 의존하거나 채용을 무기한 미루게 된다.”



우리 문제 먼저 풀어보자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창업대회 때 준비했던 서비스 기획을 모두 제쳐두고 ‘디자이너 채용’ 문제를 풀기로 했다.

“디자이너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팀이 우리 서비스에서 디자이너를 만나면 성공이다” 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우리가 직접 겪었던 문제이기에, 타인의 문제를 풀면 우리 문제도 동시에 풀리겠다는 생각이 가슴을 뛰게 했다.

그리고 우리팀은 그날 밤 하루를 꼬박 새서 디자이너 채용공고를 모아서 보여주는 노션 페이지 한 장과 채용공고를 등록할 수 있는 구글 설문지를 만들었다. 다음 날인 7월 11일 아침, 디자이너를 채용중인 팀들에게 곧바로 서비스 홍보 메일을 보냈다.

서비스명도 정말 단순하게 지었다. “디자이너가 없으면 서비스 개발을 시작할 수가 없으니까, ‘시작(seezak)’ 이라고 짓자.”


시작의 노션 페이지. 초기에는 ‘시작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서비스 했다.
채용공고를 등록할 수 있는 구글 설문지. 아직까지도 우리 팀은 구글 설문지를 통해 채용공고를 접수받고 있다.


10개의 기업과 79명의 디자이너

서비스 첫날인 7월 12일, 8개의 기업이 시작 에 채용공고를 등록했고, 53명의 디자이너분들이 서비스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어느정도의 크기인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필요없는 서비스를 만들지는 않았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7월 13일 기업 수가 10곳으로 늘었고, 디자이너 구독자 수는 79명으로 느는 것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유저 인터뷰에서 새 팀원을 만나다.

시작은 디자이너 채용 서비스를 만드는 팀인데, 정작 팀 내에는 디자이너에 대해 알고 있는 팀원이 단 한명도 없었다. 가까운 디자이너 지인도 없었다.

서비스 운영 2주차가 되어서야 유저 인터뷰를 준비해서 서비스 기획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고자 했다.

유저 인터뷰는 설문조사와 Zoom 인터뷰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했다.

Zoom 인터뷰를 하던 중, 유저 ‘난희’(닉네임)님을 만났다. 난희님은 다른 인터뷰 참가자와 달리,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시작 서비스에 궁금한 것이 많다며 30분 정도 질문을 이어갔다. 나도 왠지 모르게 난희님에 대해 궁금해졌고, 만나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게 7월 26일, 나는 처음으로 내가 만든 서비스의 유저를 직접 만났다.

난희님은 디자인 에이전시에 재직중이었다.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눈 끝에, 나는 그 자리에서 난희님에게 팀에 합류해달라고 했다. 난희님은 당시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온 나를 보고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아 도망갈까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정말 극적으로 마음이 맞았고, 난희님은 시작의 4번째 팀원이 되었다.



2022년 8월. 우리의 고객이 누구지?

“우리가 푸는 문제가 기업의 문제일까? 디자이너의 문제일까?” 디자이너 관점에서 서비스를 처음부터 다시 기획했다.



창업팀만의 문제가 아니네?

7월 말, 시작에 채용공고를 등록한 기업 수는 40개에 달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초기 타깃했던 창업 단계 기업보다 중소 스타트업, 중견기업과 대기업의 비중이 높았다.

그래서 8월 초에는 2주간 기업 대표님들과 HR 담당자님들을 만나러 다녔다. 현장에서 접한 생생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존에 정의했던 문제나 가설들을 재설정했다.



기업의 문제? 디자이너의 문제?

“채용플랫폼이면 구직자가 많아야 하고, 지원자 수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구직자의 만족도가 높은 서비스를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사업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업의 문제에 집중하다보니, 기업과 구직자의 문제 중 어느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서비스를 만들어가야할지 딜레마를 겪었다.

사실 이상적인 답은 기업의 문제도 풀고, 구직자의 문제도 푸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과 개발 자원이 부족했다. 한가지 문제, 한가지 솔루션에 집중해야했다.

길고 긴 고민 끝에 우리는 구직자의 편에 섰다. 구직자가 없으면 기업의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디자이너 채용에 어려움이 있는 기업을 위한 서비스”에서 “구직중인 디자이너를 위한 서비스”로 관점을 전환했다. 서비스를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기획해야했다.



2022년 9월. 유저를 어떻게 모으지?

초대제 기반 유저 커뮤니티 ‘시작클럽’을 런칭하고, 실패했다.



시작클럽: 프라이빗 디자이너 커뮤니티

갑자기 디자이너 구직자의 문제에 집중하자니,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를 뿐 아니라 어디서 유저를 만날지에 대한 계획조차 없었다.

그래서 기존 채용서비스 구독자층을 위주로 초대제 기반 커뮤니티를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클럽하우스처럼 가입하면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 프라이빗 커뮤니티였다. 추석 연휴를 끼고 일주일을 쏟아 서비스를 개발했다.

시작클럽을 런칭하고 약 2주 동안 100명의 유저를 모았다. 시작클럽에서 유저들과 네트워킹 행사도 갖고, 행사에서 들었던 의견들을 반영하여 포트폴리오 피드백과 같은 디자이너를 위한 스터디 모임도 열었다.


시작클럽 초대권



채용에만 집중하자

결과적으로 시작클럽은 실패했다. 실패 원인은 컨텐츠의 부족과 초대제 시스템의 정체였다.

컨텐츠 제작을 위해 국내 유명 기업(카카오, 토스, 하이퍼커넥트 등) 시니어 디자이너들과 함께 포트폴리오 피드백 클래스를 기획하는 단계까지 갔으나, 기존 채용서비스와 병행하기에는 팀 내 운영 자원이 부족했다.

채용서비스를 모두 접고 디자이너 클래스 서비스로 나아갈까도 고민했었다. 그런데 시작클럽 유저의 95% 이상이 채용서비스를 통해 유입되고 있었고, 정체된 초대제 시스템과는 달리 채용서비스 유저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즉 채용서비스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것이다. 우리는 한 달간 공들인 시작클럽과 관련 서비스를 모두 종료했다. 유저에게 필요한 채용서비스만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공들인 탑을 내 손으로 무너뜨리는 과정은 괴로웠다. 그렇지만 탑을 무너뜨릴 때마다 팀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2022년 10월. 다른 채용플랫폼이랑 뭐가 달라?

차별화 전략을 찾아 고군분투했다. 한양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창업 대회의 서류전형(1차)에서 탈락했다.



레드오션

채용플랫폼 시장은 경쟁이 극심하다. 스타트업을 하면서 경쟁이 극심하지 않은 시장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온라인 구인구직은 역사가 오래되어 더욱 그런 것 같다. 실제로 사람들은 채용플랫폼에 ‘세대’라는 표현까지 붙인다(ex. 1세대 - 사람인, 잡코리아 / 2세대 - 원티드, 리멤버, 로켓펀치, 잡플래닛 / 3세대 - 그리팅, 스펙터 등)

‘이런 기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경쟁서비스를 찾아보면 완벽하게 구현이 되어있었고,

유저 인터뷰를 해보아도 어느 지점에서 경쟁력을 찾아야할지 뾰족한 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우리 서비스에 애정을 갖고 사용하는 유저들이 있었다. 결국 그들에게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아직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한양대학교 창업 대회에 도전했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우리는 서류심사에서 탈락했다. 역시나, 심사 의견을 보니 ‘타 플랫폼과의 차별성 부재’가 대다수 의견이었다. 불합격임에도 불구하고 심사 의견을 공유해주신 한양대학교 관계자분들께 정말 감사하다.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우리팀은 유저 인터뷰에 신경을 정말 많이 썼다. 우리 끼니 챙겨먹을 여유는 없어도, 유저 인터뷰에는 꼭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한 장씩 준비했다.

우리팀은 유저 인터뷰에서 추상적인 질문을 중요하게 여긴다. 답하기 모호해서 참가자가 얼버무리더라도, 어떤 단어를 말했는지 세세하게 적어두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근본적인 인사이트가 나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공통 질문이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였다. 그리고 이 질문에 공통적으로 많이 나왔던 답변은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아요”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해석했는데, 이 답변은 시작 플랫폼 UX의 근간이 되었다. 서비스 한 줄 소개인 “데이터로 한눈에 보는 채용플랫폼”도 유저가 했던 말을 그대로 가져다 붙인 것이다.



이곳저곳 분산되어있는 채용정보, 필요한 정보 항목의 부재

“한눈에 볼 수 있다” 라는 말 속에는, 다른 플랫폼에서는 “한눈에 볼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는 인사이트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플랫폼에서 보기 불편하거나 볼 수 없는 채용정보에 집중했다. 우리가 찾은 구직자의 문제는 두 가지였다.


1. 플랫폼마다 다른 채용공고들이 흩어져있어 여러 플랫폼을 확인해야한다(채용정보의 분산)

2. 연봉이나 직무소개 등 필수 정보가 양식화 되어있지 않고, 상세 페이지를 하나씩 읽으면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야한다(정보 항목의 부재)


우리는 2번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디자이너에게 꼭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하나씩 조사해서 양식을 통일했고, 굳이 상세페이지를 안봐도 필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표로 정리했다.

한 달 뒤, “OO정보가 있어서 좋아요” 라는 유저 피드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봉”, “사수여부”, “재택정책”, “수습기간” 등이 다른 플랫폼에서 볼 수 없는 정보항목의 예시가 되었다. 이 정보들은 아직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는 앞으로 구직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끊임없이 연구해나아갈 것이다.



2022년 11월. 디자이너 시장, 너무 작지 않아?

‘개발자’ 직군 서비스를 오픈했다가 한 달만에 종료했다. 서울 캠퍼스타운 페스티벌의 서류전형(1차)에서 탈락했다.



개발자 서비스를 한 달만에 종료한 이유

10월 초, 디자이너 채용서비스와 동일한 방식으로 개발자 채용서비스를 오픈했었다.

채용플랫폼에서 디자이너 계열에만 집중하기에는 스케일이 제한적이었고, 우리가 타깃하는 IT업종 디자이너(UI/UX, 프로덕트, BX, 그래픽 등) 카테고리는 전체 디자이너 시장 내에서도 작은 부분이었다. 그래서 개발자 직군으로 타깃 시장의 범위를 넓히고자 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우리는 공들인 탑을 무너뜨렸다. 서비스에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서비스를 확장하기에는 기존 유저(디자이너 구직자)의 문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스케일업은 우리가 안고가야 할 문제이며, 시기적으로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작은 시장이라도 점유율을 높이고, 유저의 문제를 푸는 작지만 강한 솔루션을 마련한 뒤에 크기를 키우는, 다소 고통스럽지만 정당한 전략을 택했다.



집중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하는 것

스티브 잡스는 “Focusing is saying no(집중의 필요조건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돌아보면 우리팀도 위기를 마주할 때마다 이미 있던 것을 빼거나 없앴을 때 탈출구가 보였던 것 같다.

11월에는 팀원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 3가지” 리스트를 만들기까지 했다.

내 리스트는 1) 젤리 안먹기 2) 잠들기 전 휴대폰 안보기 3) 사무실에서 잠 안자기였다.

젤리 안먹기는 아직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 더 분발해야겠다.



2022년 12월. 돈은 어떻게 벌지?

고창 선운사 템플스테이에 1박2일 팀 워크샵을 다녀왔다. 2주만에 플랫폼을 개발했다. ‘돈은 어떻게 벌지?’ 플랫폼 출시를 앞두고 PMF(Product-Market-Fit)의 벽에 부딪혔다.



보왕삼매론: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12월 초, 본격적인 플랫폼 개발을 앞두고 하루 쉬어가기로 했다.

팀원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고창 선운사로 템플스테이를 다녀올 수 있었다(템플스테이에서 회사 사람들끼리 왔다고 소개하니, 다른 참가자분은 ‘벌칙으로 오셨냐’고 했다).

선운사 입구에는 ‘극락교’ 라는 다리가 있었고, 다리 앞 비석에는 ‘보왕삼매론’이 적혀있다.

보왕삼매론

원래 괴롭고 힘든 것이다.. 아직까지도 힘든 순간마다 보왕삼매론을 되내인다. 위기를 마주한 모든 스타트업 팀에 템플스테이를 강력 추천한다.



PMF의 벽

템플스테이에 다녀온 뒤 플랫폼 개발에 풀집중했다.

2주만에 개발을 끝내놓고, ‘생각보다 괜찮은데?’ 하는 순간 ‘돈은 어떻게 벌지?’가 현실로 다가왔다.

BM도 없이 플랫폼을 개발했던 건 아니었다. 항상 계획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제품을 유료서비스로 구현하자니 걸림돌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잠시도 기뻐할 틈 없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유료 서비스를 기획하는 데에 모두 쏟았다.



2023년 1월. 모의고사

프라이머 배치 22기의 서류전형(1차)에서 탈락했다. 플랫폼 출시 후, 유저 수가 빠르게 증가했고, 유료 상품 구매 의향이 있는 고객사를 확보했다. 그리고 카카오벤처스로부터 미팅 제안을 받았다.



카카오벤처스 모의고사

12월, 지인을 통해 프라이머 배치 프로그램에 대해 전해듣고 지원서를 냈다. 이전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냈던 서류들에 비하면 많이 개선된 상태였지만, 좋은 평가를 받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던 것 같다. PMF의 벽에 가로막힌 채 지원서를 썼으니..

그런데 프라이머 불합격 통보를 받기 하루 전,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발신인 카카오벤처스.. 미팅 제안이었다.

카카오벤처스의 미팅 제안 이메일

난 고등학교때 국어에 자신이 없었다. 고3 6월 모의고사에서 처음으로 1등급을 받아봤는데, 이메일을 받고 그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모의고사일 뿐이지만, 내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그 무엇보다 팀원들이 이메일을 받고 기뻐해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하필 메일이 팀 전체가 공유해서 보는 계정으로 들어왔는데, 내가 통화하고 있는 사이에 팀원들이 메일을 보고 환호하고 있었다. 앞으로 팀원들이 기뻐하는 일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미팅에서는 ‘아직 투자를 받고싶다고 말씀드리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다. 사업적으로 성과를 더 만들어서 보여드리겠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갈 길이 너무 멀지만, 한 걸음씩

1월, 시작 플랫폼의 평균 DAU(일간 활성 사용자 수)는 200명 이상이며, MAU(월간 활성 사용자 수)는 2,500명 이상이다. 평균 DAU는 플랫폼 런칭 전 대비 3배 가량 성장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평균 10개의 신규 기업이 디자이너 채용공고를 등록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너무너무 멀다. 먼 길을 내다보면 막막하지만 내일 하루 정도 걸어갈 힘은 있다. 그리고 하루하루 한 걸음씩 집중해서 걷다보면 그 다음 날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는 이것저것 계획하기보다 실행하고 싶다. 나는 원래 극도로 계획중심주의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난 6개월간 내 계획이 처참히 깨지는 모습과, 막상 계획 없이 부딪혀서 깨졌을 때 비로소 답이 보이는 것을 보고 올해는 계획의 비중을 확 줄이고 일단 닥치고 실행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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