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관찰하기를 즐기는 나. 사실 즐긴다고 말하기는 애매하고 어느샌가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 나를 깨닫고는 했는데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뚜렷이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고등학교 때부터 깨달았던 것 같다. 그 일로 하여금 나에게 이득이 되는 건 아니지만 뒤돌아보면 사람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은 재밌긴 하다.
세상엔 실로 다양한 인간들이 살고 있고 또 그들이 길러내는 사람은 어찌나 각양각색인지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나는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성인들만 관찰했던 예전과는 다르게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관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둘은 참으로 닮아있다. 인간은 입체적이므로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되지만 오랫동안 관찰해온 결과 대략 들어맞는 부분들이 있다. 성격은 아이의 기질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지만 자라온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므로 양육자의 태도에 맞춰 달라진다. (개인적인 의견이니 그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면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특히나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아이들은 그 성격이 확연히 드러난다. 내 아이, 너의 아이 할 것 없이 드러나는 전과는 다른 성격에 양육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얘가 왜 이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집에서는 안 그러는데 밖에선 달라지는 내 아이. 마늘이도 마찬가지로 집에서는 입이 잘 튀어나오고 엄마 껌딱지에 아직도 아기 같은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교실 안에서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 나에게 당혹감을 안겨준 적이 있다.
성인인 사람을 두고 저 사람은 가정교육을 잘못 받아서 저렇다 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성인이라는 것은 이미 부모의 손을 떠나 말 그대로 어른인 독립된 인격체이기 때문에 양육자를 꼬집은 비하 발언은 삼가야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은 다르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뿌리가 단단히 내려지지 않은 나무이기 때문에 비바람에 쉽기 흔들리기 마련이다. 양육자들은 아이들의 최측근에서 강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뿌리내리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비바람을 양육자들이 만들어주고 있다면? 애정이라는 변명하에 그들이 직접 비를 뿌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 이때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정보들이 있는가 조금만 검색하면 나오는 자료들은 우리를 도망갈 곳 없게 만든다. 문제 행동을 보이면 깊게 뿌리내리기 전에 바른길로 전환해 줘야 한다. 양육자의 의무다. 모른척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아이들은 자기들의 세상에 속해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잘 살아 나갈 수 있게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줘야 한다.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아이는 문제 행동을 보이고 있는데 방관하는 어른이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과하게 아이를 꾸짖는 모습, 몇 번이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데 웃으며 적당히 말리는 모습들. 물론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안타까워하는 기분도 굉장한 무례를 범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글로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나름 육아 서적을 꽤 많이 보아온 현역으로서 그러지 말아주십사 하는 거다. 뭐 남편 말대로 저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넘기고 말면 되는데 어찌 됐건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인생 동료로써 또 내 아이와 같은 세대를 살아가야 하고 어쩌면 주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과한 상상 속에서 부디 좋은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푸념 같은 글을 쓰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더라.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