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첫경험이 염따라니

앨범은 무엇을 말하는가

by 준성

긴 음악을 듣고 싶었다.


요즘 음악들은 전체적으로 짧으니까.

설거지 한 번에 몇 곡이나 재생되는 건지.


숏폼 콘텐츠가 난무하는 시대에 뮤지션들은 플랫폼에 최적화된 음악을 발빠르게 내놓기 시작했다.

챌린지성 노래와 짧은 호흡의 음악들.

바이럴이 성공하면 같은 부분만 다시, 다시, 다시...


아쉬웠다.

난 좀 더 여운을 느끼고 싶은데.

서사가 담긴 음악을 듣고 싶은데...


그래서 늘 한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어떤 음악에 꽂히면 50번, 100번 반복재생으로 틀어놓았다.


지루하지 않았다. 매번 돌려 듣는 음악도 내가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곡이 되었다. 어떤 날에는 도입부를 다시 들으려고 하루종일 같은 음악을 틀어놨고, 다른 날에는 클라이맥스 파트의 가사가 터지는 여운을 느끼고자 다시 들었다. 그날의 내 기분에 따라 매번 따라부르는 파트가 달라졌고, 나는 여자친구에게 같은 노래 좀 그만 부르라고 자주 잔소리를 들었다.


아예 몇십분짜리 한 노래를 만드는 가수는 없는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아무도 안 할 것 같다, 생각하며 쿡쿡 웃었다.




앨범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누가 앨범이 가수의 모든 것이라는 말을 해도, 난 어차피 그 중 한 곡 밖에 듣지 않았으니까.

어렴풋이 앨범은 소설이고 각 곡이 챕터 같은 개념인가 싶었지만,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한 챕터를 무한 반복해도 문제가 없었다.


음악을 듣게 되는 계기를 운명처럼 생각한다.

어디서든 어떤 노래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순간, 그건 나와 노래를 연결시켜주는 뭔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노래'가 내 취향이라는 것이지, 같은 가수의 다른 곡을 디깅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건 타율이 낮았다.


몇 번 앨범 전체를 들어보려는 노력을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챕터 중 하나를 찾고자 앨범 전체를 듣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어떤 가수의 앨범이 나오면 처음부터 끝까지 돌려 듣는다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했다.

자기 취향의 노래가 아닐 수도 있는 챕터들을 왜 굳이 들을까?


그래서 나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른 노래를 운명처럼 만나기 전까지는 전에 꽂힌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AI가 추천하는 노래는 듣지 않았다.

운명을 방해받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룩삼'이라는 유튜버를 알게 되었다.

유노윤호의 화려한 '깡'식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장본인이다.


그가 염따라는 래퍼의 앨범을 리뷰한다고 했다.

그리고 35분 가까이 되는 그의 앨범 감상회를 나는 그 자리에서 전부 다 들었다.




난 랩도 안 듣고, 힙합도 잘 모른다.

염따는 조금 안다.

그가 최근에 어떤 이유로 잠적을 하고, 힙합씬에서 두문분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전성기가 쓰나미처럼 거리를 휩쓸 때를 기억한다.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화려한 옷을 입고, 반짝이는 금니를 끼고, 몇 십 몇 백만의 조회수를 군마처럼 이끌고 다니며 모든 이들의 관심을 확실하게 누리던 때였다. 그런 삶을 살고 싶냐 물으면 어느 정도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그처럼 되고 싶냐는 질문엔 확실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었던, 그 정도의 인식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그는 사라졌다.

듣자하니 주변사람들한테 잘못을 한 것 같았다.

조롱과 침을 덕지덕지 묻히고 사라졌다.

그리고 자신의 정규 앨범을 들고 다시 조용히 돌아왔다.


앨범을 듣는데 눈물이 조금 났다.

주책인지 뭔지 몰랐다.

다듬어진 솔직함은 이런 거구나.


나는 그를 잘 모르고, 그를 둘러싼 사건들도 잘 모르지만 그의 음악과 가사는 이해가 갔다.

아니 억지로 그를 이해해보려고 할 필요가 없이, 잠적하는 동안 그가 어떤 마음으로 지냈는지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앨범 전체는 마치 한 곡 같았다.


유튜버는 그의 가사를 두고 '고르고 고른 유치함'이라고 표현했다.

전혀 깊다고는 표현할 수 없는 가사가, 이보다 더 그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달관, 현타, 환희, 후회가 전부 들어있었다.

예술가는 이런 자유가 있구나.

그것으로 다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거구나.

재밌었다.


앨범은 소설이라고 추측했던 것이 맞았다.

앨범 안에 들어있는 곡들은 각각의 서사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곡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또 다른 커다란 줄기를 만들어냈다.

나는 앨범 안에서 한 곡이 끝날 때 그 다음에 이어질 곡의 시작과 이어지게 만든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유튜버의 리뷰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왜 앨범 전체를 굳이 찾아서 듣는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인정 받는지 알게 되었다.

앨범으로 말을 해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처럼 하나의 곡을 반복해서 듣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삶을 녹여낸 앨범을 듣는 것은 그것 자체로 더 넓은 의도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수단이었다.

음악이 좋다면, 그 시너지는 배가 되었다.




좋아하지 않는 장르에, 좋아하지도 않는 래퍼의 음악을 몇 십분 들을 수 있게 만든 것은 결국 염따의 음악성일 것이다. 이로부터 오는 청각의 충만함은 예술가의 외침을 재고하게 만들고, 어떤 일이 있었던지 그의 음악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를 용서하게 되는, 수용자로서의 안일한 태도를 자연스럽게 갖게 만들었다.


그게 좋은가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자신의 인생을 뭔가에 담아 표현할 수 있는 건 만드는 사람들의 특권이다.

그것이 받아들여지게끔 하는 데에 성공했다면, 수용자들에게 받는 사랑은 그들이 얻어낸 것일 테다.


분출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의 생각을 꾹꾹 눌러담아 세상에 내놓음으로서 스스로를 마침내 마주할 수 있게 된다면, 창작물은 예술가의 진정한 분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나도 그런걸 만들 수 있을까?


앨범 입문은 명반이라는 앨범들로 입문을 하고 싶었다.

퀸이나, 다른 여타 유명한 명반들로..

어쩌다보니 평소에는 듣지도 않는 힙합 분야의 앨범을 듣게 되었다.

근데 좋았다.


앨범은 들을만 한 것이었다.

작가의 이전글삶의 틀이 갖춰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