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틀이 갖춰진다는 것

발전은 반복속에서만 티가 난다

by 준성

아주 나른하고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전에 없이 규칙적으로 살고 있다.

심지어 아주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그게 신기한 요즘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게으르게 살았던 때는 사회복무하기 전 3개월이다.


12시쯤 친구 집에서 느지막이 일어나 씻지도 않고 플레이스테이션 축구게임을 3시간쯤 하다가, 지루해지면 피시방 가서 컴퓨터 축구게임을 4시간쯤 하고, 배고프다는 말에 친구가 수육 끓여주면 맛있게 먹고, 친한 형들 하나 둘씩 모여서 광란의 축구게임을 또 밤 늦게까지 하다가 얘기를 하며 잤는데....


돌아보면 그때 기억으로 사는 것 같다.

고작 3개월 그렇게 놀았는데, 그때 놀아서 지금 노는게 재미가 없나보다.

장호 형이랑은 승급하겠다고 14시간 동안 피시방에서 게임한 적도 있다. 시작할 때와 피시방에서 나왔을 때 티어가 같았던 건 아직도 웃음소재다.




지금은 9시 전에 눈이 떠진다.

원래 같으면 더 잘 텐데, 왠지 모르게 그냥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떠지면 아무 생각없이 보카 (영어 공부 앱)으로 영어 단어 공부를 한다.

그리고 대충 늘어져 있다가 카툰을 그린다. 아이디어가 안 나와서 스케치를 붙잡고 씨름하다가 콘텐츠 하나 뽑아서 업로드 한다.

그러고나서 책을 읽는다. 2시간 정도 읽는데, 집중이 안 되면 올린 콘텐츠를 새로고침하다가 오르지 않는 조회수를 보고 포기한 후 책을 덮는다.

그리고 글을 조금 쓴다. 브런치를 쓰거나 소설을 쓴다. 요즘은 SF 단편 소설을 쓰고 있다.

글이 잘 안 써지면 영화를 한 편 본다. 하루 한 편 보는게 목표다. 중간에 끊을 수만 있다면 드라마도 괜찮다.

아주 가끔 출사를 나간다. 찍을게 없어도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 그럼 한두컷 정도 건진다. 그럼 집에 돌아와서 사진을 다운 받고 보정을 조금 한다.

그리고 저녁을 한다. 요즘엔 자주 해먹는다. 요리가 재밌다.

그러고 여자친구를 만나거나, 쓰려고 하는 책의 목차를 잡아보거나, 아니면 집에서 레퍼런스 체크를 명목으로 릴스와 쇼츠를 왔다갔다 하다가 잔다.


칼 같이 이런 스케줄을 지키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사이클로 하루가 굴러간다. 큰 소비도 없고, 뭔가를 만들기는 하는 루틴이다. 신기한 건 '내가 왜 이렇게 살지'라는 생각 대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뭐 조급함 이런건 1도 없고 그냥 저녁 뭐해먹지, 내일 카툰 뭐 그리지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


어느 순간부터 조급함을 버려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조급함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도움이 안 된다. 하지만 내가 가진 기질이기에 쉽게 버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냥 SNS를 하다가 '남들은 다 앞으로 나아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면 일어나서 카툰을 그린다. 1일 1게시물의 목표를 지킨지 한 달 째다. 5월 29일 부터 했으니 딱 한 달이다. 누가 그러라고 하진 않았는데, 혼자 만든 규칙을 그냥 지키고 있다. 처음엔 릴스를 올려도 몇 십 조회수밖에 나오질 않더니, 요즘은 몇 천 단위 이상도 나온다. 콘텐츠의 퀄리티? 좋지 않다. 그래도 그냥 계속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끄집어내서 그려 올린다.


IMG_6373.jpg 제일 잘 된 콘텐츠. 댓글 달리고 공유해가는거 보면 신기하다.


루틴이 없어서 조급함을 느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축구를 할 때에도 그랬다. 나보다 어린 선수들이 데뷔하는 것을 보면서 자괴감과 조급함을 느낄 것이 아니라 매일 루틴을 갖춰 내가 하루하루 얼만큼 성장하는지에 포커스를 맞춰야 했다. 그때는 무작정 많이, 열심히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마음을 힘들게 했다. 언제나 최대한의 노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그냥, 그냥 매일 하는 것에 의의를 뒀어야 하는데...


게으른 완벽주의를 이기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일부러 더 느긋하게 살려고 한다. 그랬더니 '내 것'이 조금씩 만들어진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인스타툰을 시작해서 잘나가는 작가들이 있지만, 부럽지 않다. 나는 그들처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이었다면 어떻게든 뜨려고 바이럴 위주의 콘텐츠를 내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자괴감을 느꼈겠지.


목표를 세워서 열심히...도 좋지만 나만의 속도로 꾸준히 한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요즘의 하루는 꾸준한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반복, 반복, 반복... 내가 매일 들일 수 있는 노력과 아웃풋이 얼만큼인지는 꾸준함을 통해서밖에 알 수 없다. 나의 평균이 세워지면 그때부터는 아주 약간의 발전도 티가 난다. 그런 순간순간을 느끼기 위해 삶의 틀을 갖춰가고 있다. 지금 당장, 내 자리에서 꾸준하게 할 수 있는 것들로. 꾸준히 할 수 없다면 당장에 내게 필요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이 삶의 틀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렇게 살고 있다.

그렇게 살다 보니 하고 싶은 것들도 생기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들도 보인다.

그건 다음 글에 정리해보겠다.


나는 아마 평생 돈을 못 벌 것 같다.

돈을 벌 수 있는 루틴이 아니다.

근데 지금 삶이 재밌다.

이게 뭐지.


아, 최근에 갖고 싶은게 하나 생겼다.


포르쉐 911... 갖고 싶다. 뚜껑 열리는 거 멋있더라.

아버지는 카니발 리무진을 갖고 싶다고 하셨다.


아빠 조금만 기다려!(설거지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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