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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석 Jan 31. 2023

지극히 일본적인 디자이너, 우치다 시게루

가구와 공간에 대한 그의 철학

이사무 노구치 테이블, 아카리 조명, 출처_https://www.vitra.com/en-as/home

인테리어깨나 한다는 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아카리(Akari) 조명은 이사무 노구치가 일본 전통 종이인 와시로 디자인한 조명입니다. 종이 조명하면 대표적으로 아카리 조명이 떠오르겠지만, 얼핏 보면 아카리라 착각할 생김새의 다른 종이 조명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바로 우치다 시게루가 디자인한 페이퍼 문(Paper Moon)입니다. 비대한 몸집에 비해 짧은 다리를 가진 위트 있는 디자인의 페이퍼 문은 기후 지방에서 나는 고품질의 와시를 사용해 장인의 기술로 생산되는 조명인데요, 페이퍼 문만 봤을 땐, 우치다 시게루는 전형적인 일본적인 디자이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우치다 시게루(1943~2016), 출처_http://www.uchida-design.jp/

자유로움을 추구한 디자이너

일본 요코하마에서 1943년에 태어난 우치다 시게루는 고베 패션 미술관, 도쿄 아오야마에 위치한 요지 야마모토 부티크 등을 설계한 건축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건축물뿐만 아니라, 빈백이라고 불리는 푹신한 1인용 소파의 전신인 프리폼 체어(Free Form Chair, 1969), 평상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소파 프래그먼트(Fragment, 2000) 등의 다양한 가구를 디자인했습니다.

프래그먼트 소파, 출처_http://www.uchida-design.jp/
프리폼 체어, 출처_http://www.uchida-design.jp/

우치다 시게루는 무(無)의 공간에 도구와 가구라는 부분들이 모여 공간이라는 전체의 의미를 완성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모든 도구와 가구는 공간과 함께 공존해 나가며 상관관계를 이루며, 부분은 언제나 자유롭게 접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전체도 자유로운 성질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자유성이 우치다 시게루 디자인 철학의 초석입니다.

프리폼 체어는 앉는 방식대로 의자 형태가 달라지고, 프래그먼트 소파는 배치에 따라 사용자의 의도대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입니다. 자유성을 띠는 시게루의 가구 작품은 디자인 철학을 투영하는 매개체입니다.

페이퍼 문 조명, 출처_http://www.uchida-design.jp/

어둠을 만드는 조명

실내에 드리워진 그림자도 인테리어가 될 수 있을까? 우치다 시게루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일본의 등불들은 대부분 밝은 빛을 추구해 왔지만, 반골 기질이 충만했던 우치다 시게루는 실내 인테리어에서, 어둠이 밝은 실내에 깊이를 더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양 전통 주거의 대표 특징인 창호지를 바른 문은 빛을 부드럽게 걸러서 실내로 전달하는데, 이것이 만들어내는 음영에 영감을 받아 우치다 시게루는 1998년 페이퍼 문(Paper Moon) 조명을 디자인했습니다. 페이퍼 문은 기후 지방에서 와시로 공예품을 만드는 전통 기업 아사노 상점에서 생산합니다. 철제 와이어 프레임에 와시로 만든 조명 갓을 씌우는 구조 덕분에 가벼울 뿐만 아니라, 납작하게 접을 수도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페이퍼 문은 이사무 노구치의 아카리 조명과 더불어 종이 조명으로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다실, 출처_http://www.uchida-design.jp/


우치다 시게루는 지극히 일본적인 디자이너였다고 평가받습니다. 그의 작품 다실, 페이퍼 문을 제외한다면 일본적인 느낌은 덜한데 말이죠. 그는 저서『가구의 책』에서 본인의 디자인은 언제나 변화했다고 언급합니다. 일본의 전통, 가구라는 물질의 통속적인 개념, 사회의 사상 등과 같은 대상과 언제나 맞서 싸워왔기에 표현하는 디자인 또한 꾸준히 변화해왔다고 합니다. 그는 디자인을 인간, 사회, 자연을 연결하는 문화적인 기술이며 인간의 고유한 정신에 관한 문제를 시각화하는 표현이라고 정의했는데, 그가 말한 고유한 정신은 인간의 행동, 국가의 문화와 정서들을 모두 포함합니다.


의도적으로 일본적인 디자인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변화하는 사회문화의 흐름에서도 그의 고유한 정신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극히 일본적인 디자이너라고 평가받은 것입니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우치다 시게루는 공간의 본질이란 사람, 공간의 가구 그리고 공간 전체가 서로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람의 고유한 정신이 담긴 곳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온라인이 전부를 대체할 것이라는 지난 2년 간, 역설적이게도 수많은 브랜드가 오프라인 공간을 탄생시켰던 것이 공간의 중요성을 방증합니다. 브랜드가 오프라인의 공간으로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는 우치다 시게루가 정의한 공간의 본질에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일본적이지만, 일본적이지 않은 디자이너 우치다 시게루는 2016년에 타계했습니다. 공간이란, 가구란 무엇인지 그의 언어로 재정의 하고 세상을 떠난 우치다 시게루의 작품 대부분은 리프로덕션이 되지 않습니다. 각종 미술관과 박물관에 영구소장돼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페이퍼 문은 예외입니다. 페이퍼 문은 여전히 제조사인 아사노 상점에서 생산하고 있어 구하기 수월하니, 종이에서 비롯한 작은 빛으로 전해지는 우치다 시게루의 철학으로 공간을 빛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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