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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기 Feb 04. 2023

미술활동보고서 - 프랑스 경매회사 인턴 I

파리 2022

첫 번째 프랑스 경매회사 인턴십, TAJAN


첫 출근은 역시 인스타그램에 올려버리기

2021년 9월 4일, 파리에서 한 사립 예술경영학교의 MBA프로그램을 졸업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졸업생임에도 불구하고 한 학기정도의 학생비자의 기간이 넘치게 받아버렸다. 말 그대로 시간이 떠버린 것이다. 우리 학교는 인턴이 의무가 아닌 학교였기 때문에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보다 오랜 꿈이었던, 어쩌면 너무 간절해서 실패할까 두려워 회피하고 싶어만 했던, 경매회사에 지원을 해보기로 했다. 운 좋게도 나의 첫 번째 경험은 미술시장에 일가견이 있으면 누구나 들어봤을 제법 큰 프랑스 경매회사 TAJAN에서 시작된다. 






인터뷰 보러 가는 날 오후 2시, 이 날 사실 아침에 1개의 인터뷰를 이미 봤던 상태

2021년 9월 7일, 경매회사 TAJAN의 인터뷰는 Loïc이라는 operation directeur와 1시간 동안 영어와 불어를 섞어 쓰며 엉망진창으로 봤다. 그런데 의외로 말이 잘? 통했던 것 같다. 아침에 다른 경매회사에서 면접을 보고 와서 덜 떨었던 것일까? 로익은 나의 반짝이는 활기가 인상적이라고 경매회사는 그런 활기가 필요한 곳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면접을 보고 2일 후, Stage polyvalent에 합격하게 되고 나와 같은 시기에 면접을 보고 새로 들어온 친구 1명과 원래 있던 친구들 2명, 그리고 6개월간 어쩔 땐 3명이서 어쩔 땐 6명이서 일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체 무슨 깡으로 다짜고짜 CV를 들이밀었는지 의문이기도 하다. 





MOA 부서와 Tableaux anciens 부서의 공동전시 

파리 8구 중심에 위치한, 세상 화려한 1920년경 art déco style로 되어 있는 TAJAN의 salle 경매장소는 인턴들의 땀과 꿈이 서려있는 공간이다. 개인적으로 이곳의 가장 매력적인 장소는 뻥 뚫려있는 천장과 뱀의 형상으로 디자인되어 있는 아르데코 계단인데, 어쩔 땐 전시가 겹쳐서 오후 8시까지 추가근무를 했던 적도 있었다. 


사내에 따로 전시담당파트가 없기 때문에 각각 부서의 스페셜리스트들이 내려와 어느 공간에 무엇을 전시할지 큰 틀을 잡아준다. 인턴들은 의견을 내보기도 하고, 작은 오브제 같은 경우에는 맘껏 전열 해보기도 한다. 






주얼리부서의 경매장면, 5,98캐럿의 루비가 151,000유로에 팔렸다.

인턴이 하는 일은 잡다한 일부터 손님을 상대하는 전화응찰까지 넓은 범위의 멀티플레이이다. 그래서 나같이 호기심 많고 다재다능한 사람에게 TAJAN의 인턴은 경매회사에 대한 경험을 충족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정해진 부서가 없었기 때문에 -물론 원하는 부서가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나서면 된다. 아침에는 주얼리부서나 아시아부서에서 일하다가 오후에는 올드마스터 부서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경매가 크리스마스 전 이브닝 세일에 주목하는 만큼 주얼리부서에게도 특별한 순간이었다. 5,98캐럿의 루비가 151,000유로에 팔린 순간인데, 사실 이것보다 더 놀라운 숫자로 낙찰된 물품들은 많다. 나는 6개월간 일을 하면서 20번 정도의 경매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는데 -물론 내가 다 준비한 건 아니지만- 한 경매를 준비하면서 200-300개 정도의 출품들의 description을 보고, 직접 사이즈를 재고, 가끔 provenance를 리서치하며 스스로 공부함에서 오는 성취감은 말할 것도 없다. 






아시아부서의 경매, 한 손님이 10개 이상 lot에 전화 응찰하는 경우도 있다. 

경매회사에서의 인턴이 하는 일 중 단연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아마 전화응찰이라 생각된다. 가끔 인턴 중에 2개 이상의 언어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가끔 아시아부서에도 불려 나가고, 주얼리부서에도 불려 나가고, 전화 경매에 많이 참가하게 된다.


처음에는 너무 떨려서 대본 보면서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경매는 몇 초안에 주인이 결정되는 순간이기에 정말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모아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응찰자와 경매장을 연결시켜줘야 한다. 이 순간에서 인터넷이 먹통 될 수도 있고, 손님이 전화를 안 받아서 -혹은 순번이 끝나고 전화가 오기도 한다- 당황했던 순간도 더러 있었다. 






2023.2.4 토요일. TAJAN에서의 인턴이 끝난 지 약 1년이 지났다. 보고서에서는 장단점보다는 활동위주로 글을 작성했는데, 전반적으로 프랑스에서 미술시장, 경영계열에 들어가고 싶다면 절대적인 활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경험을 토대로 구직활동 시 인터뷰에서 말할 거리도 많았고, 대부분의 인터뷰어들이 회사를 알아보고 긍정적으로 나에 대한 질문을 연이어해 줬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서 회사의 operation directeur였던 로익에게 추천서도 받을 수 있었고, 회사에 작은 이벤트가 있었을 때 자원봉사 개념으로 일을 도와준 적도 있었다. 


현재 두 번째 인턴을 마치고 취업 준비 중인 나는 더 분발해야 할 것이 많다. 구직활동을 한다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적으로 의기소침해지고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실제로 내 역량을 믿지 않고 울면서 지낸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로 유학 와서 이름 있는 경매회사의 인턴으로 일해본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경험이며 하나의 중요한 인생의 단락으로 발판 삼고 거듭 도전하는 나로 성장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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