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기 Feb 05. 2023

미술활동보고서 - 프랑스 경매회사 인턴 II

퐁텐블로 2022

두 번째 프랑스 경매회사 인턴십, OSENAT


첫 번째 인턴이 끝난 나는 괴로웠다. 한국의 인턴과 다르게 프랑스의 인턴은 "학생으로서의 사회 경험을 했다."라는 수습생정도의 의미이기 때문에 불어에 자신이 없었던 나를 뽑아줄 가능성은 현저히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나는 옥션회사 혹은 올드마스터 분야에서 일하고 싶음이 분명했기에 MBA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의 옥션회사에서의 인턴십을 구하기로 했다. 또다시 6개월간 1시간에 3,9유로밖에 되지 않는 노동력. 정석대로는 나아가지 않지만, 돌아가더라도 도움이 되는 것을 하자.


2022년 2월에 TAJAN의 인턴이 끝났던 그 후 조건이 좋은 인턴십을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미 사람 구하는 시즌을 넘어버렸기 때문에, 공고란에는 나와 관련 없는 전공 혹은 급하게 사람을 뽑는 회사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중 Maître Anciens (Old Masters)는 아니지만 19세기 이전의 Ecole de Nature를 전문으로 하는 부서에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퐁텐블로에 있는 ONENAT라는 회사였다.


Hôtel particulier에 위치한 OSENAT는 퐁텐블로 성의 한 부분을 보는 것과 같이 화려하고 아름답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OSENAT 계단. 빨간 벨벳 카펫이 깔려있고 인상적인 패턴의 창문과 나폴레옹 시대 때 만들어진 두 개의 applique가 있다.

파리에 살면서 딱 한번 가본 작은 도시, 프랑스 왕들이 가장 좋아했던 거주지이자 사냥하기 딱 좋아서 여러 왕들과 나폴레옹까지 좋아했다는 Fontainebleu 궁전 바로 앞에 있는 회사는 집에서 15분 정도 버스를 타고 내려서 지하철로 갈아탄 뒤 gare de lyon 역에서 RER R선을 타고 37분을 달려 도착하면 또 버스를 타야 겨우 도착했다. 아침 9시 출근이었으니 6개월간 꼬박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재빨리 준비하고 적어도 6시 50분에는 집 앞에서 버스를 타야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라클모닝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었던 것.


가고 오는 부분은 매일이 도전이었지만, 이곳에서의 경험은 뜻깊었다. 게다가 감사하게도 Salle을 관리하는 인원과 포장을 담당하는 인원이 있었기에 지난번 경험때와 같이 몸소 나서서 하는 부분이 없었다. 창고에서 매번 300개의 크고 작은 그림들을 리스트 체크 업하면서 시시때때로 옮겨야 하는 것은 애교랄까.

19세기 그림부서에서 인턴은 나 하나였기 때문에, 의외로 더 전문적인 경험을 얻게 되었다. 손님 집에 인벤토리를 작성하러 외근을 해보기도 했으며, 아티스트의 카탈로그를 뒤져가면서 의뢰온 그림과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지도 찾아봤었고, 손님에게 경매 응찰메일이나 컨디션 리포트를 보내기도 했고, 손님들과 직접 그림에 대한 얘기도 해볼 수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6개월간 일하면서 2번의 전시-경매 프로세스의 모든 부분에 참가하며, 카탈로그에 어시스트를 했다는 증거인 (!) 내 이름이 박힌 책자도 받을 수 있었다.


전시되기 하루 전, 창고에서 올린 그림들을 다시 한번 체크한다.
창고-전시장-창고-전시장, 이 사진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백조의 다리 부분이다.

회사는 경매장이 따로 있었기에 그림들을 전시 시작되기 2-3일 전부터 창고에서부터 전시 공간에 올릴 수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어떤 그림이 어디에 있나, 컨디션 상태가 좋은가, 티켓은 제대로 붙어있는가 체크하는 것이다. 대부분 RDC (프랑스식 0층)에는 하이라이트 5-6점과 바다, 오리엔탈, 과슈와 드로잉, 약간의 정물화등이 전시되고 1층에는 École de Barbizon이라고 불리는 퐁텐블로 근처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이 전시된다. 그 주제로는 동물들이나 산, 바위, 강, 평야, 노을, 새벽빛, 나무 등 다양하다.


그림은 신기하다. 보다가 보면 왜 그런지 알고 싶어지고 알면 알수록 가치가 보이게 되고 가치가 보이게 될수록 향유하고 싶어 진다. Musée d'Orsay에 간다면 이제는 남들은 다 건너뛰는 회랑 부분의 그림들에 주목하게 될 것임이 분명해졌다. 나는 올드마스터에만 죽고자 했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아마 손님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얻어진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한 번은 누군가 나에게 이 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면 전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올드마스터! 올드마스터! 만 외치는 조그마한 목소리에 이끌려 이 인턴십을 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여기서 일하는 건 그저 회사의 이름의 경력 때문일 뿐, 19세기 그림이 주는 새로운 관점을 아예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점잖은 노신사 손님은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은 이것이라며, 그 그림의 구성, 색감, 화풍, 주제, 그리고 본인의 생각을 공유해 주셨다. 자만하고 좁게만 생각했던 내 태도에 관한 깨달음이었다. 참고로 그분은 그분이 나에게 공유해 준 그림을 좋은 가격에 경쟁자를 물리치고 낙찰받았다.


경매 하루 전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ée)를 최근 출간한 미술사학자들은 초대되어 강연을 갖는다.  

퐁텐블로에서는 특이하게 주말에 경매가 이뤄진다. 어쩌면 좋은 마케팅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주중에는 바쁘니까 퐁텐블로에 놀라워서 그림도 보고 사가라는 그런 의미 아닐까 싶다. 포스트 코비드 이후 그 속도는 느리지만 단연하게 손님들은 다시 그림을 보기 위해 경매장을 찾는다고 했다. 실제로 6월 경매가 열리기 하루 전인 토요일, 19세기에 활동했던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Frédérquc Bazile에 대한 1시간 정도 남짓한 회의가 열렸는데 홍보를 따로 하지도 않았지만 20명 남짓의 사람들이 자리를 참석했다. Frédérquc Bazile은 이 회의 이후로 처음 알게 된 작가였는데, 그가 이끄는 색채들의 향연은 작년 8월에 약 한 달간 머물렀던 프랑스남부의 기분 좋은 휴가를 연상시켰다. 경매회사에서 일하면서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작가에 배우게 되는 것.


언제나 그렇듯 전화 경매 응찰

퐁텐블로의 삶이 끝난 후 한 달이 지났다. 나는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고쳐가며 열심히 지원하는 중이다. 쉽지 않다. 하지만 쉬우면 누구나 다 성공했겠지 마인드 컨트롤 하며 오늘의 나를 살아보기로 한다. 해외에서 정착하는 게 쉽지 않은 건 자기 자신을 얼마나 더 벼랑 끝으로 밀어 넣느냐에 따라 달린 것 같다. 실패해도 좋다. 하지만 시도해보지도 않고 실패하고 싶진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술활동보고서 - OMNG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