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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분의 일 Jan 03. 2024

글태기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끝없이 써 내려지고 항상 즐거웠던 새로운 글의 첫 문단 운을 띄우는 일이 요즘에는 내가 이겨내야 할 가장 큰 고민이 되었다. 내가 원하고 즐거운 일이 내가 이겨내야 하는 일이 된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인 것 같다. 나는 지금도 글을 쓰기 위해 마음을 먹은 채로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계속해서 두드리며 수백 번, 수천 번 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한창 나의 글을 제일 사랑하고, 아무것도 없던 여백을 나의 글로 채워 갈 때, 가끔 글을 쓰는 일을 본업으로 삼는 누군가의 고민을 털어놓은 내용 중 글이 써지지 않아 몇 시간 동안 모니터를 멍하니 들여다보기만 했다는 글을 읽었을 때가 있었다. 어리석었던 나는 그 순간 이렇게 즐겁고 뿌듯하기만 한 일이 왜 어려운지를 모르고 있었다. 내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순간은 글을 사랑하며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하던 누군가가 남기고 간 여운이겠지.


평소 나는 주변에서도 쓸데없이 예민하거나 생각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많았다. 스스로 어느 정도 이런 나의 성향에 대해서 인지 정도만 하고 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글쓰기를 사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평소 사색을 즐기는 나의 성격과 이를 글로 풀어내고 정리해 가며 나 자신에 대해 점점 알아간다는 점이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나의 부족한 점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잘못된 부분들을 알게 되었다. 나의 부족한 점들과 잘못된 부분들을 알게 되니 위로받기 위해 읽고 쓰게 된 글들이 읽으면 읽을수록, 쓰면 쓸수록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글에 위로를 받고 쓰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글에 의지를 하고 있던 걸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처럼 글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중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언제부터 인지 책상 앞에 앉아 한참을 고민해 보았다. 순간 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은 한순간뿐이었다. 가깝다고 생각한 지인들에게 나의 브런치스토리 계정을 알려준 순간. 나의 사색, 정신적 나체를 가까운 지인들이 본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나의 경험에서 나온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할 나의 사색은 더 이상 글을 써 내리지 못하고 그저 사색으로만 멈추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글이 써지지 않았던 것이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누구에게도 나의 계정을 알리지 않고 나의 글을 보여주지 않을 생각이다.


누군가가 내가 쓴 글의 매력이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솔직함’이라고 답 할 것이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나의 글에 공감을 하고 얻어가는 것이 있다면 그건 정말 온전히 나의 글로 인해서 얻어 간다기보다는 스스로의 마음 한편에 떠오르고 품었던 본인의 사색을 끄집어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글을 읽는 것을 사랑하고 쓰는 것을 사랑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전공을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나의 글쓰기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가 나의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는 이유는 나의 내면에서 나온 솔직함의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이곳 나의 계정에 있는 글들은 솔직하고 나의 진심을 담아 써 내렸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나의 ‘글태기’에 대해서 써 내려가면서 내가 사랑하는 일을, 내가 사랑하고 싶은 일을 계속해서 사랑하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말이지만 지금까지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사랑할 수 있어야 내가 사랑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나의 노력과 시간을 들이더라도 사랑할 수 있는 일이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일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글을 써 내리는 일이 단순히 사고로 인해 온전하지 못한 지금의 나에게 도피하게 되는 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읽으며 글로 위로받았던 날을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 처음으로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나의 내면 속 이야기를 글로 옮겨 담으며 눈물을 흘렸던 밤을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 어느 순간 보기 좋은 포장지로 감싸버린 나 자신에게 솔직해 지자며 다짐하는 지금 이 순간을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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