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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분의 일 Feb 27. 2024

감정의 '포만'

넘치도록 가득함.

매 순간 나의 감정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때로는 내가 나의 감정을 이끌어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의 감정에 내가 이끌려 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길만한 것들이나 사람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들을 회피유형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던 비교적 어린 시절과는 반대로 나에게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고 익숙한 경험이 주는 안정감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사람의 감정은 양날의 칼과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공감을 하며 넘겼던 말이 나의 감정에 대한 사색 속에 있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부정하고 있다. 온전히 내가 갖게 되는 감정은 나 스스로를, 나의 주변을 모두 베어 버리는 양날의 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날카로운 칼날로 나에게 부정적인 생각 혹은 무언가를 베어버리는 반면에 무딘 쪽의 칼날은 나에게 부정적인 것들을 베어 낼 때에 나 스스로에게 힘을 실을 수 있게 도움이 되어 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었지만 어떤 것이든 베어버릴 수 있는 감정의 칼날은 너무나 날카로워서 나 스스로를 갈기갈기 베어버리며 찢어 놓았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반대로 나를 믿고 곁을 지켜주는 주변이 들 또한 나의 날카로운 감정의 칼날로 상처 입히고 떠나보냈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그저 평화롭고 안온한 기분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은 나의 욕심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항상 스스로 견디기 버거운 감정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어떠한 큰 일을 겪어야 이런 감정이 생기는 줄 알았지만 스스로 견디기 버거운 감정은 꽤 사소한 일들로부터 시작된다. 달갑지 않은 누군가의 전화나 이름 석자도 모르는 누군가의 무례함 따위에 잔잔하던 나의 감정의 파도는 어느새 몸집 만한 크기로 변하여 바위에 온몸을 던져 베여 버리는 해안가의 파도처럼 부서진다. 나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만큼 날카롭고 강하지만, 바위에 베이는 파도처럼 나를 상처 입히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람의 감정은 어떠한 감정이든 결코 가벼울 수 없다.


감정에는 수많은 종류의 감정들이 있다. 누군가를 죽을 듯이 사랑하는 감정, 누군가를 죽일 듯이 미워하는 감정, 그저 부족함뿐인 자신에게 분노하는 감정처럼 모든 감정들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를 죽을 듯이 사랑하는 감정을 가져보았다. 누군가를 죽일 듯이 미워하는 감정을 가져보았다. 그저 부족함뿐인 나에게 분노하는 감정의 밤을 지새워 본 적도 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감정을, 나 자신을 애써 외면하며 세상을 탓하기만 하며 살아갔었다. 나 스스로가 변하지 않는다면 내가 살아가는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 그저 나 자신에 대한 후회와 분노뿐인 삶을 살아갔었던 때의 나의 삶은 그대로 멈추어졌었다.


나는 20대 중반에 사고로 인해 한쪽 다리를 잃을 뻔했다. 사실 목발의 도움 없이는 거동을 하지 못하는 지금도 나의 한쪽 다리가 온전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 병원에서 처방받은 진통제 없이는 잠에 들지 못한 밤 덕분에 거의 매일 진통제와 함께 살아갔다. 원래 심한 통증이 느껴질 때에만 복용을 해야 하고 그 마저도 단기간 동안만 복용을 해야 하는 약을 주기적으로, 장기간 복용을 하다 보니 당연하게도 부작용이 찾아왔다. 한 달이라는 시간만에 체중의 절반이 더 불어나고 늘 약기운에 취해 잠을 달고 살아야 했다. 그때의 내 모습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지인들의 연락을 모두 피하기 시작했다. 사고 전에는 일을 쉬는 날이라도 어디든지 돌아다니며 바람을 쐬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지나다니는 모든 이들이 망가진 나의 모습을 보고 비웃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집으로 숨기 시작했다. 망가진 나의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방 안에 가득 참 어둠 속으로 나를 스스로 숨기기 바빴다.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어두운 방 안과 머리맡에 놓여 있는 약통만이 떠오른다. 그렇게 나는 부정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감정 속에서 나를 스스로 고립시켰다.


건강하지 못한 수많은 나의 감정들로 나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말라갔다. 이런 나에게도 한 줄기 빛 같은 존재와 감정은 거짓말처럼 나를 찾아왔다. 다시는 내가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장담했던 사랑이라는 감정. 한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는 나의 감정에 대한 욕심 하나만으로 나는 다시 방문을 열고, 현관문을 열고 세상을 마주했다. 사고로 온전하지 못한 나의 한쪽 다리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장기간 약 복용으로 망가진 나의 체중이라도 되돌리기 위해 현관 옆에 있던 목발을 짚고 나는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나를 보고 비웃는 것 같은 기분이나 간혹 어린아이들이 나를 보고 몸이 불편한 사람이라는 말, 장애인이라는 말이 나의 귀에 들어와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불어났던 체중을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감량했다. 부정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감정들을 비어 버린 나의 시간의 경험을 채우기 위해 나는 집에 있는 책장 한 구석에 꽂혀있던 책 한 권을 꺼내 들어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글을 사랑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온전하지 못한 나의 다리로 어려워진 거동 탓에 스스로 쌓아가지 못했던 경험들을 대신하여 누군가의 경험을 글로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한 때 나를 일으켜 세워 주었던 나의 감정은 당시 나의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나가면서 나를, 나의 세상을 다시 무너뜨렸다.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에 돌이켜 보니 그 사람으로 인해 가졌던 수많은 감정들과 다시금 갖게 된 나의 삶에 대한 욕심들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었다. 삶의 주체가 내가 되지 못하고 나를 사랑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사랑하기 바빴다. 전부 이겨내어 살아가고 있다 이야기하며 안도했고, 나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며 누군가를 죽을 듯이 사랑한다는 감정의 오류 속에서 살아갔었다. 그렇기에 내가 느꼈던, 욕심 내어 다시 가지게 되었던 수많은 감정들과 다시 쌓아가던 삶도 나의 것이 아니었다. 어리석었던 나는 나의 의지와 능력이라 믿으며 오만했기에 그 사람으로 인해 살아가던 나를 방관했었다. 다시는 내가 살아가는 나의 삶의 주체가 다른 이가 되어 나의 곁을 지켜주던 누군가가 떠나가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풍요로운 감정들의 포만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었다. 그렇기에 나는 본래 혼자 이겨내고 쌓아가야 했던 나의 삶을, 세상을 쌓아가고 만들어가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특정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언젠가 다시 한 줄기 빛과 같은 이가 나에게 찾아왔을 때 다시는 나의 어리석음과 부족함으로 놓치고 싶지 않고 잃고 싶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살아가는 삶은 변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내 곁에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숨기고 탓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어리석음과 부족함을 마주했다. 비어버린 나의 내면을 채우고 공허한 나의 삶을 채우기 시작했다. 다시 수많은 감정들이 주는 온화함을 느끼고 싶었다.


지금 내가 쌓아가고, 살아가는 세상은 부정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감정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보았기에 아무리 부정적인 감정이더라도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건강한 감정으로 풀어가고 싶다. 삶을 살아가면서 긍정적이고 건강한 감정만으로 가득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감정은 수없이 얽혀있는 거미줄 같아서 아무리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물들이더라도 건강하게 풀어낼 수만 있다면 나에게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 주고 동기가 되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며 스스로의 감정을 외면하고 무뎌진 채로 살아가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 사소한 감정들이 내게 주는 미약한 무게조차 짊어지기 힘들어 모든 것들을 내려놓은 채로 살았다. 수많은 아픔들과 노력들로 어느 정도 이로부터 자유로워진 지금은 내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든 감정들이 나에게 주는 무게들을 감당하고 나의 것으로 만들어내면 이 글의 제목처럼 언젠가는 나의 수많은 감정들에 아파하지 않고 그저 감정의 포만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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