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 사업의 굴레
기획자로 경험이 길지 않지만 다양한 정부지원 사업에 관여한 경험이 있다. 보통 정부지원 사업을 한 개만 하는 회사는 없는데, 내가 재직했던 회사 역시 기존 진행했던 정부사업의 연속과제 혹은 유사한 사업에 참여하여 정부지원금을 받아 사업을 꾸려갔던 경험이 있다.
한번 참여해 본 회사는 계속 참여하고 2~3개 이상 동시에 진행하는 곳도 많은데
구글링 해보면 '정부지원금=눈먼 돈'이라는 키워드로 많이 작성되어 있다. 심지어 눈먼 돈을 따내는 방법 이런 식의 강의 홍보도 버젓이 있고, 정부사업 만으로 회사의 수익구조가 꾸려진 곳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신사업 추진의 당위성을 얻기 위해 아이디어 및 사업기획 만으로 자유경쟁을 통해 정부사업을 수주한 경험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컨소시엄 업체 중 '이만하면 중간평가 통과다', '이만하면 최종결산 통과다' 라며 실제 사업화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열정과 퀄리티를 마치 숙제하듯이 하는 모습에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솔직히 눈먼 돈 줍줍이 아닌 사업을 하고 싶다면 정부지원사업 진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짜 사업을 하기 어려운 이유, 눈먼 돈이라고 놀림받는 이유를 실무자 입장에서 2가지로 뽑았다.
시장은 실시간으로 바뀌고, 요즘같이 사용자의 반응을 빠르게 확인하는 방법론이 유행하는 시점에 정부사업은 워터풀 방법론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정부 사업은 공고 시점에 낸 계획표에 맞게 예산을 써야 하고, 그때 낸 계획서에 맞게 산출물을 내야 하고, 그 계획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 제안을 한 시점으로부터 협약까지 늘 일정은 딜레이 되고 연장되면서 사업계획 변경은 참 힘들다. (변경할 수는 있지만 복잡하고,, 승인도 오래 걸리고,, 피로하다..) 장비변경 할인 기간이 끝나 부랴부랴 변경 장비 찾고-> 비교견적 뽑고-> 변경사유 소명하는 등 그 변경에만 몇 개월 소요되어 난감한 일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지원금을 착수금, 중도금, 잔금 식으로 지급받을 때 사이사이 중간발표, 중간점검 등의 프로세스가 있다. 그때마다 사업계획서에 끼워 맞춘 진척률, 정부사업 제출 문서 기준에 맞춘 산출물을 숙제 식으로 작성한다.
이미 테스트 결과 불가능한 것, 플랫폼 정책 변경으로 인해 더 합리적인 개발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한 것, 다른 업체에서 서비스를 출시해 버려 방향을 바꾼 것.. 다 필요 없이 협약 시점에 제안하고 발표한 내용으로 숙제를 해야 한다.
평가하는 외주 감리사나 평가위원분들 역시, 반드시 해야 하는 숙제가 있기 때문에 실제 사업을 위한 평가나 피드백보다는 해야 해서 해야 하는 평가와 피드백이 주어지는 부분이 느껴져 다소 아쉽다.
요즘 정부사업은 매년매년 더 철저해진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마냥 '눈먼 돈'이라고 하기엔 장비 구매를 최소화하거나 신규 고용에 대한 혜택, 장비 등록/반납 프로세스 추가, 현물을 인건비로 한정, 회의비 사용 시 사진이 포함된 회의록 필수 등 각 기관별로 정부지원금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요건을 강화하고 있는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정부사업을 전담하는 인력의 필요성이 점점 높아질 정도로 증빙과 관리에 대한 업무역할이 커지는 것 역시 불가피해지고 있다.
현재 작은 회사에 속해 있어
정부지원금을 받아 사업을 진행한다면 서비스 기획자 입장에서 더없이 좋지만, 한편으로는 단 3명이 실무자로 개발 중인 서비스 추진과 별개로 보고 및 관리를 해야 하는 리스크도 크고
인사총무 담당자 1인으로 구성된 회사이므로 지원 인력이 부담해야 할 업무가 과중해질 것 역시 우려된다.
서비스 사업화를 위해 정부지원 사업을 도전해야 하는 것인가? 혹은 투자개념으로 CEO를 설득해 개발에 집중해 수익을 내야 하는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