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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활동이라는 이름의 봉헌(奉獻)

by 필로마테스

교수 생활을 시작한 지도 1년이 되었다. 다코타 주립대에서의 가을 학기와 봄 학기가 마무리되었고, 지금은 여름 학기를 가르치고 있다. 아무래도 강의량이 많은 학교다 보니, 학생들을 가르치고 과제를 채점하고 시험을 만드는 일만으로도 숨 가쁜 나날을 보내왔다.


그 사이 연구 논문을 제출한 학술지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 한 논문은 제출한 지 14개월 만에, 다른 한 논문은 7개월 만에 학술지에 실리게 되었다. 이제 1년을 바삐 지냈으니 한숨 돌리며 연구를 해볼까 했던 내 의욕을 다시금 불타게 해준 소식이었다.


여타 분야와 달리 수학은 연구의 주제와 자율성이 자유롭게 보장되는 분야다. 이런 환경에서 초년차 교수이자 새내기 학자인 내가 학계에 보답할 수 있는 일은 '연구의 생산'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어느 학술지 편집장으로부터 모 논문의 리뷰를 맡아줄 수 있겠냐는 이메일을 받았다. 나는 조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이메일을 받았을 때 나는 병실에 있었다. 아내가 출산 대기 차 병실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물론 리뷰어가 된다는 소식은 아버지가 된다는 소식에 비해 한참 부족하고 덜 감격스럽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나를 '이 논문을 평가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평가해준 것만으로도 꽤 감격스럽고 기쁘며, 동시에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논문은 약 40쪽에 달하는 길이였고, 물론 내 연구 분야와 많이 맞닿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공부가 필요해 보였다.


다행히 아내는 무사히 출산했고, 나는 이제 둘에서 셋이 된 가족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미국은 산후조리원이 없기에, 제왕절개 이틀 만에 집에 돌아왔다.) 아내에겐 산후조리 간호사로서, 딸아이에겐 아버지로서, 학생들에게는 여름학기 강사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내가 과연 리뷰어로서의 역할도 맡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할 수 있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앞으로 많이 해야 할 일이기에 첫 경험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수락했다.


타인의 논문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논문은 그 사람이 짧게는 몇 주에서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쳐 고민한 것을 남긴 글이다. 더욱이 자신의 고민을 마치 이 글처럼 장황하고 주절주절 풀어내지 않는다. 그 모든 연구 과정 중의 시행착오와 불필요한 과정을 걷어낸 채, 올바른 과정과 확고한 결과만을 남긴 것이다. 밤잠 못 이루며 써내려간 연시(戀詩)도 온 마음을 다해 읽을진대, 논문이야 오죽하겠는가.


물론 이 말에 얼마나 많은 학자들이 동의할지는 모르나, 적어도 나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나의 논문을 써왔고, 그렇기에 이 글 역시 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해야겠다. 비록 서투를지라도 지금 나는 문장 하나하나를 읽으며, 그 논리적 정합성을 따지며 더 명료한 설명을 고심하고 있다. 덕분에 하루에 2페이지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법의학자 유성호는 법의학자를 '빛도 없는 카메오'라고 표현했다. 리뷰어 역시 그와 같다. 그들은 이름도 묻어둔 채, 오로지 그 초안이 더 나은 최종안으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하며 제안을 아끼지 않는다. 아직 박사과정에 있던 시절, 누군가가 나의 논문을 그러한 진중함으로 마주해주었고, 그 피드백은 나의 논문을 훨씬 더 나은 글로 만들어주었다. 이번엔 내가 그 역할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차례다. 적어도 언젠가 학회에서 그 저자를 마주하는 날 부끄럽지 않도록 말이다.


이것은 학계에 은혜를 입은 나로서, 그것에 보답하는 방식이다. 학문 활동이라는 이름의 봉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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