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애스터는 엄마에 대한 자신의 공포가 하나의 말도 안 되는 농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걸 영화로 만들면 코미디가 될 거야! 하지만 공포의 대상에 대한 농담은 자신의 공포를 덜기 위해 던지는 것일 뿐, 사람들을 웃길 순 없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게이로 알려져 있다. 마더 콤플렉스와 섹스 금기를 이야기하는 영화에서 감독의 섹슈얼리티를 떠올리지 않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자기 자신이 깊게 투영된 캐릭터인 '보'를 이성애자로 설정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감추며(회피 서사), 이제는 엄마로 농담을 할 만큼 엄마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양 가장(코미디 형식)한다.
이후 스포 있음.
영화는 보가 양수 속에 있다가 태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둠이 빛으로 찢어지고 의사가 갓난아기의 엉덩이를 치자 아기가 운다. 이 이미지는 영화 초반 보의 목욕장면에서 반복된다. 보가 집 열쇠를 잃어버리고 걸인들이 한 바탕 보의 집을 휩쓸고 나간 후 보는 욕조에서 목욕을 한다. 이때 보는 욕조의 천장에서 그와 또래인 한 남자가 아슬아슬한 자세로 매달려있는 걸 본다. 천장의 남자가 한참 동안이나 그를 바라보며 도망갈 여지를 주지만, 보는 그를 보면서도 피하지 못한다. 그는 결국 보에게로 떨어지고, 둘은 한 동안 물 안에서 엎치락 뒤치락 몸싸움을 한다. 그러다 남자의 엉덩이도 노출되는데, 나는 이 장면이 게이 섹스씬 묘사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보는 마치 방금 태어난 갓난아기처럼 온 몸이 젖은 채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한 부부가 운전하는 트럭에 치여 쓰러진다(섹스 금지에 대한 처벌). 미친 걸인이 쓰러진 보를 습격해 칼로 찌른다. 보의 배엔 마치 성기와 같은 상처가 생긴다(삽입 섹스의 이미지).
영화에서는 엄마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엄마집 방문의 지연 - 정상가족에 대한 환상으로의 회피 -(액체를 흡입한 여자의 기절)- 한 남자의 습격' 구조가 반복된다.
첫 번째로 보가 열쇠를 잃어버려 엄마집에 가지 못했다면, 두 번째로는 자신을 친 트럭을 운전하던 부부의 집에서 간호를 받느라 엄마집에 가지 못한다. 그 가족은 화목한 중산층 가정이지만 장성한 아들을 군대에서 잃었다. 그들은 마치 잃어버린 아들을 대하듯 보를 'baby'라 부르며 극진히 간호한다. 그 집엔 죽은 아들의 미쳐버린 친구와 여동생이 함께 살고 있다. 보가 죽은 오빠를 대신해 아들 대접을 받고 있다고 느낀 여동생은 화를 내며 보에게 함께 'fuck up' 하자고 하며, 파란 페인트를 '마시고' 기절한다. 그걸 본 미친 남자는 도망치는 보를 쫓는다.
세 번째로 보는 숲에서 임신한 여자를 만난다. 엄마가 부여한 금기로 인해 섹스를 할 수 없는 보는 이미 임신한 여자를 만난 후 정상 가정을 꾸리는 상상을 하고 이 상상은 그가 보는 연극무대로 펼쳐진다. 이 환상은 보가 섹스를 한 적 없다는 사실, 그리고 쫓아온 미친 남자의 습격으로 인해 깨진다. 마지막으로 드디어 엄마집에 도착한 보는 어릴 적 좋아했던 일레인을 마주치고 일레인과 섹스를 한다. 그러던 중 콘돔이 터져 일레인은 보의 정액을 흡수하게 되고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이때 굳어버린 일레인의 눈은 페인트를 마셨던 소녀의 눈과 같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다.
이후 '아버지 정체의 진실'이 있는 다락방에 들어선 보는 초라하게 늙은 자기 자신과 그 옆의 거대한 남근괴물을 마주하는데, 괴물은 아버지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섹스를 할 수 없어 기괴하게 부풀게 된 보의 성기로 보인다. 숲의 연극을 습격했던 미친 남자는 이 다락방까지 오는데, 그가 이번에 습격하는 건 보가 아니라 남근괴물이다(남근괴물이 정말 보의 아버지라면, 미친 남자가 옆에 있는 보를 내버려 두고 괴물을 습격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엄마와 섹스금기였으며, 진실의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문제 뿐이었다. 미친남자는 괴물의 부풀어오른 고환을 칼로 찌르다 결국 남근괴물의 촉수에 머리가 뚫려 사망한다(삽입섹스의 이미지).
이후에 그는 마치 엄마의 뱃속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듯, 보트를 타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동굴법정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그는 엄마의 희생에 걸맞는 사랑을 돌려주지 않은 죄로 재판을 받는다. 양수같은 물로 가득 차 있는 동굴에서 그는 결국 물에 빠져 죽는다. 숲에서 본 연극에서 천사는 진실을 고백하면 흙이 마실 물로 변하고 영원한 고향을 되찾게 되리라고 예언했다. 보는 다락방에서 진실(방에 갇혀 초라하게 늙은 자신과 성나서 부풀어오른 성기괴물)과 마주치고, 그가 딛고 있던 땅은 양수가 되어 그를 집어삼켜 버렸다. 천사의 예언대로 그는 영원한 고향 - 어머니의 자궁 - 을 되찾게 되었다. 애스터는 이 길고 지루한 농담을 하고 나서 엄마를 좀 덜 무서워하게 되었을까? 앞서 말한 서사와 형식 측면에서 이중의 은폐는 결국 한 가지 질문을 숨기고 있다. '엄마가 너무 무서워서 내가 게이가 된 게 아닐까?' 아리 애스터가 이 질문과 제대로 맞설 용기를 갖고 다시 엄마 얘기를 하길 바란다. 그리고 코미디 영화에는 다신 도전하지 말기를...
여담
보의 캐릭터를 ‘인셀‘로 읽는 사람이 많던데 사실 보는 인셀과는 정 반대의 정신구조를 갖고 있다.
인셀이 언제든 섹스를 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아무도 그와 섹스하길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름 그대로 비자발적인 순결주의자가 된 남자라면, 보는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서 누군가 그와 섹스하고 싶어해도 섹스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또는 여자에 대한 공포로 여자와 섹스하지 못하고, 동성애 금기로 남자와도 섹스하지 못하는/섹스하고서도 그 사실을 부정하는 디나이얼 게이)
정리하자면 보가 ’섹스하면 나는 죽을 것이다‘ 라는 금기에 시달린다면 인셀의 사고방식은 ’섹스를 하지 못하면 나는 루저다‘에 가깝다. 그렇기에 그 둘은 정 반대의 심리구조를 갖고 있다. 인셀에게 있어서 여성은 남성인 자신이 정복과 소유를 해야 하는 대상이라면 보에게 있어서 여성(=엄마)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통제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보는 엄마에게 완전히 압도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을 섹스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없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섹스한 후 죽었다. 그러므로 보에게 여성과의 섹스는 죽음과 등가교환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섹스를 하면 죽는 부계 유전병에 대한 엄마의 이야기가 가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버지가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는 소망으로 나타난다. 숲 속에서(망상 속에서) 아버지로 추정되는 남자와 마주친 이후, 보는 처음으로 여자와 섹스를 하게 된다. 아마 이 시점에서 그는 아버지가 살아있을 수도 있으니, 내가 여자와 섹스해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품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섹스를 하고 나서 죽은 것은 보가 아니라 그와 섹스한 일레인이었다. 어머니의 말은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보는 부모에게서 섹스와 관련된 유전병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보가 유전받은 것은 아버지의 심장병이 아니라 섹스를 한 상대를 죽이는 어머니의 힘이었다. 보의 아버지는 심장병이 아니라 보 어머니의 불가사의한 힘 때문에 죽었다. 유전성질은 부계가 아니라 모계에 있었다. 어머니는 여자이기 때문에 섹스 상대를 죽여도 혈통을 이어갈 수 있지만 보는 남자이기 때문에 섹스 상대가 죽으면 대를 이어갈 수 없다. 그렇기에 그는 모계 집안의 성질을 물려받은 마지막 괴물이다.
이 집안에 아버지의 자리는 없다. 아버지의 정체가 숨어있다는 진실의 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엄마로 인해 방에 갇혀 초라하게 혼자 늙은 자기 자신과 욕구불만으로 치솟고 부풀어오른 성기였다.
보의 정신 구조에 있어서 아버지의 자리는 없다. 오직 어머니에 대한 공포와 그로 인한 욕구불만, 비참함과 증오로 인한 괴물적인 힘이 있을 뿐. 그는 괴물 어머니가 낳은 괴물 아들이다. 금기로 억압되어 옴짝달싹 못하는 이 괴물은 결국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고 엄마의 자궁 속 양수에 잠겨 사라지기를 원한다.
(인셀의 공격성을 밖을 향하지만 퀴어 우울증은 자신을 부정하는 방향을 향한다. 그래서 조커는 세상을 불태우고 보는 자신을 물에 빠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