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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픽션 Feb 03. 2023

아워바디 - 퀴어 로맨스와 멜랑콜리의 평행선

페미니즘으로 영화읽기 3


영화 전반에는 멜랑콜리의 정서가 가득 깔려있다. 그 멜랑콜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데서 연유하는 것이기도 하고, 퀴어적 맥락에서 유래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 달리기 영화에서 이렇게 여성의 몸을 자주 성적으로 보여주고 섹스씬이 자주 나오냐고? 그건 이 영화가 달리기 영화라기 보다는 여자와 여자간의 섹슈얼한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퀴어 텍스트로 읽어야만 해석되는 맥락들로 가득하며 그것을 읽지 못하면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 아워바디가 상업적 흥행에 실패한 것은 한국 대중의 퀴어 리터러시 문제이기도 하다. 아워바디는 운동을 통해 건강과 자신감을 되찾는 힐링 영화가 아니라 운동으로 다져졌음에도 온전히 긍정할 수 없었던 여성의 몸과 욕망에 대한 영화이다.

자영은 고대를 나왔지만 서른 한 살이 되도록 취업을 하지 못하고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를 하다 끼니를 대충 라면으로 때우고 변변한 매트도 없는 바닥에서 잠을 자며 남자친구와 잘 때면 혹여나 소리가 새어나갈까 숨을 죽인다. 그런 자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동네에서 매일 러닝을 하는 현주를 마주치고 나서이다. 자포자기한 자영이 계단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마시다 떨어뜨린 한 캔을 러닝을 하며 계단을 오르던 현주가 주워주는 장면은, 섹슈얼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자영은 탐내는 시선으로 현주의 탄탄하고 마른 몸 구석구석을 훑고, 자신감 넘치고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쉽사리 떼지 못한다. 그 뒤로 자영은 동네를 달리는 현주가 보일 때마다 시선으로 그녀를 쫓다가, 결국 그녀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이후 그녀는 달리기 동호회의 멤버가 되어 매일 밤 현주와 함께 동네를 달린다.

현주를 만나고 난 후의 자영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너 요즘 왠지 달라보인다' 라는 말은 운동으로 인해 건강과 자신감을 되찾은 것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흔히 듣는 말이기도 하다. 현주를 만난 것과 달리기 이외에 변한 상황(직장없음, 돈없음, 애인없음)이 전혀 없음에도 자영은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생기가 넘친다. 달리기 동호회의 주멤버는 현주와 자영 이외에도 남자 두 명이 있지만 이들은 구색을 맞춘 것일 뿐, 영화 내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보통 이런 조합일 경우 여주와 멤버 중 한 남성이 로맨스로 맺어지게 되는 스토리라인이 흔히 등장하지만, 이 영화에서 여자와 남자간의 로맨스는 벌어지지 않는다. 여자와 남자는 오로지 섹스를 할 뿐이다. 여자들이 관심있는 것은 오직 여자들이다. 동경하는 대상으로서의 여자, 질투하는 대상으로서의 여자, 동생으로서의 여자, 경쟁자로서의 여자.



이 영화에는 총 네 번의 섹스씬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영화 초반 섹스 후에 바로 헤어지게 되는 남자친구와의 씬이고, 두 번째는 달리기 동호회의 멤버인 남자와의 씬이며 세 번째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동시에 인턴으로 지원한 회사의 상사와의 씬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호텔에서의 자위씬인데, 이 자위는 앞서 이뤄지지 못했던 현주와의 섹스를 만회하는 것으로 읽어야 마땅하다. 현주가 살아생전 자영은 현주의 집에 두 번 방문하는데, 현주와 술을 마시며 섹슈얼한 긴장감이 넘치는 장면을 만들어 낸다. 첫 번째 씬에서 현주가 소파에 기댄 채 자영에게 성적 판타지에 대해 물을 때, 자영은 비싼 호텔에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섹스를 하는 거라고 한다. 이후 현주는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속옷이나 다름없는 운동복을 입고서 쓰레기를 버리러 복도에 나가며, 자영은 누가 볼까봐 하는 걱정 반, 그리고 아름다운 현주의 몸을 계속 보고자 하는 욕망 반으로 현관까지 나가 현주를 계속 지켜본다. 그 앞에서 현주는 그런 응시를 즐기듯 포즈를 취한다. 이어 둘이 다시 안에 들어간 채 문이 닫히지만, 영화는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두 번째 씬에서 현주는 자신의 소설을 자영에게 보여주려 하지만, 자영은 잠들어 현주의 말을 듣지 못한다. 제대로 응답받지 못한 어떤 요청들. 이에 대한 부채감을 느끼듯 자영은 현주가 죽은 후 알몸의 현주가 자신의 이불 속으로 들어와 안기고 그 몸을 어루만지는 꿈을 꾼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아직도 현주가 살아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남자멤버와 충동적으로 섹스를 한다.

현주에 대해 자영이 가졌던 욕망은 뭘까? 자영이 보기에 현주는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자유로운 사람이다. 즉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자영은 현주처럼 되기를 원하는 동시에 그녀를 갖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주디스 버틀러는 프로이트가 이야기한 근친상간 금기 이전에 동성애 금기가 있다고 말한다. 이성애중심주의 사회에서 아이에게 가장 먼저 금지되는 것은 동성의 부모를 향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금지된 사랑은 동일시의 전략으로 바뀐다. 즉 갖고자 하는 욕망을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전환시켜 사랑의 대상을 모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모방은 우울증적 구조를 띈 젠더 정체성으로 수행된다.

극 중반에 현주는 자살로 추정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게 되는데, 이후에 자영이 현주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은 그녀를 사랑하던 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자영은 더 적극적으로 현주가 되고자 하며, 매일 밤 달리기를 계속하는 것은 물론 현주의 집에 가서 그녀의 흔적을 쫒고 그녀의 글을 읽고 그녀가 그려진 그림을 자신의 집으로 들고 오며 급기야 직장 상사 앞에서 마치 현주에 빙의된 것처럼 현주가 할 만한 말들을 하다가 그녀의 성적 판타지를 실현시키고 만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퀴어 욕망에서 오는 멜랑콜리와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데서 오는 멜랑콜리를 연장선상에서 다뤘다는 것이다. 현주는 자영의 우울증적 욕망의 대상이며, 자영이 현주를 가질 수 없었던 지점(섹스할 수 없음, 더 깊이 소통할 수 없음)이후에 죽고 만다. 금지된 대상에 대한 사랑은 죽은 대상에 대한 우울증적 애도와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이 영화는 무의식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무의식적이라고 한 것은 감독이 이 지점을 제대로 형식화시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퀴어 욕망에 대한 리터러시가 없는 사람들은 이 맥락을 읽지 못하고 스토리 또한 개연성이 없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는 우울증적 구조 안에서 자동적인 힘으로 현주를 죽인 후 자영의 사랑을 계속 밀고 나간다. 영화의 마지막 자위씬은 이런 멜랑콜리적 퀴어 욕망의 절정에 다다르는데, 현주가 죽은 후 현주에게 말했던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실현하며 스스로를 애무하기 때문이다. 이때 자영이 상상한 것은 누구의 몸이었을까? 이 호텔 장면은 앞서 말했듯 현주 생전에 이뤄지지 못했던 그녀와의 섹스를 만회하는 것이자, 현주를 완전히 자신의 몸 안으로 체화해 우울증적 구조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씬이기도 한 것이다. 현주는 이미 죽었다. 자영은 이제 영원히 그녀와 섹스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자영은 현주가 되었다. 하지만 아마 현주가 죽지 않았더라도, 자영은 현주가 되었을 것이다. 자영은 현주를 사랑하지만 그녀와 섹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비틀린 묘미이다.

*

영화에서 자영이 훑는 몸이 또 하나 있는데, 그건 자기 여동생의 몸이다. (몸을 훑기 전에 여동생이 자영의 방에서 콘돔을 주워 주머니에 넣는 장면으로 이 장면은 섹슈얼한 긴장감을 더 한다) 자영은 교복을 입은 여동생의 허리와 다리를 훑고, 여동생은 자기 다리의 늘씬함을 자랑한다. 이 시선은 현주 때와는 달리 영화 후반부에 응답을 받는데, 운동으로 달라진 자영의 몸을 여동생이 훑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동생은 마치 현주를 뒤따라 달렸던 자영처럼, 자영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는 자영의 뒤를 따라 달리는 여동생의 모습으로 극을 마무리짓지 않는다. 이 영화는 불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핵심은 강제적 이성애 사회에서 여성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레즈비언 로맨스의 불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라스트씬은 호텔에서 자위를 한 후 나른하면서도 우울한 눈빛으로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는 자영의 모습이다. 자영은 계속 우울할 것이다. 여자들은 뚱뚱하나 날씬하나 행시를 준비하나 취업을 하나 달리기를 하나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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