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2. 시래기 된장국
뒷마당에 걸려있는 검은 무쇠솥에 민물고기 시래깃국을 끓여주셨던 어머님이 그립다. 시래기를 겨우내 새끼줄로 묶어 말려서 다시 삶아 얼큰하게 끓여주신 그 정성스러운 손길이 생각난다. 명절 때면 대식구가 모여서 온 집안에 가득 차고, 그때마다 땅속에 묻어놓은 동치미며 들깻가루에 감자 순을 볶아주시고, 널따랗게 큰 감떡과 팥시루떡, 다양한 꼬치 전과 명태 전 뼈다귀 소고깃국을 끓여 내셨다.
7남매를 키울 때 얼마나 힘드셨을까. 자기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헌신의 삶을 어머님은 살아오셨다. 지금도 아들들은 어머니가 해주신 시래기 된장국을 제일 좋아하고 즐겨 찾는 향수가 되었다. 자기들의 아내가 끓여줘도 그 맛이 안 난다고 한다. 그렇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가 어찌 어머니의 맛을 따라갈 수가 있겠는가.
50년이 흘러 시아버님과 세 아들과 큰딸이 먼저 하늘나라에 가셨다. 어머님은 10년 전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요양병원에 계셨다. 동서들과 시누이 시동생들과 함께 한 달에 한두 번씩 어머님을 뵈러 갔었는데, 5년 전부터 코에 호스를 끼고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지난해 12월이었다. 어머님이 위독하셔서 가족들에게 장례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모이라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목사님을 모시지 못해 둘째 며느리 나에게 임종 예배를 드리라고 했
단독으로 혼자서 임종 예배는 처음이었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게감과 엄숙함이 느껴지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다. 가까이 가보니 큰 체격을 지니신 어머님이 작아지고 마른 얼굴에 호스를 끼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지고 숙연해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어머님 머리에 손을 얹고 귓가에 가까이 대고 말했다.
“어머님, 그동안 수고하셨고 고생하셨습니다.
7남매를 키우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어머님을 잊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머님을 사랑하시고 함께하십니다.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가십시오. 사랑합니다. “
그 순간 어머님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마 죽음 직전까지 귀는 들리신 것 같았다. 마음이 뭉클하며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았다. 참으로 귀한 순간이었다 그 후 20분이 지나 운명하셨는데 향년 99세이셨다.
시댁은 기독교 가문으로 시아버님은 장로이시고 어머님은 권사이셨다. 위로 예배, 입관, 발인예배, 하관 예배까지 내가 인도하고, 장로인 시누 남편과 권사인 동서가 기도를 도와 장례식을 은혜롭게 잘 마치게 되었다. 입관할 때 수의를 곱게 입은 모습을 보니 주무시는 그것같이 편안하게 보였다
어머님의 눈물은 우리에게 다 하지 못한 말들을 남겨 두고 가신 것 같다. 일생을 살아갈 때 어찌 기쁜 일만 삶이겠는가, 고통 역시 살아있는 보람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의 사랑은 자식들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으로 끓여주셨던 시래기 된장국이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향수로 남았다.
시래기 된장국처럼 깊이 우려낸 국물은 더 진하고 구수한 맛이 있듯이 어머님은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다 우려내 주셨다. 남아있는 우리 또한 부모에게 다 하지 못한 사랑을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줄 것이다. 그게 삶이 아닐는지.
어김없이 다가오는 새벽. 그러나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다. 잠에서 깨어난 사람, 지닌 밤을 잘 넘기고 다시 생명을 얻은 사람에게만 특권처럼 온다. 새벽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이 아프게 가슴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