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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ul 22. 2024

기억의 재구성

The sense of ending_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이李씨(이하 이): 지난주 남편이 자기 핸드폰으로 신생아 사진을 보여주는 거야. 그러면서 나도 아는 사람의 아기이니 맞춰보라는데, 남편과 내가 공통으로 아는 인물이면서 지금 아기를 낳을만한 사람이라니, 그렇다면 진작에 임신 소식도 들었을 텐데, 여태껏 몰랐다면 가족은 아닌 게 맞고, 그렇다면 누군가?.. 눈을 껌뻑거리다가 '글쎄. 모르겠는데.' 했지.


남편이 이름을 딱 얘기했는데, 그제야,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오더라.

남편 친구 중에 2022년에 늦장가를 간 이가 있었거든.


이어지는 저녁식사 시간, 딸에게 장남 삼아 물어봤지.

"00아, 엄마아빠가 지금 늦둥이로 아기 낳으면, 동생 잘 봐줄 수 있겠어? 스무 살 차이 동생."

딸이 정색을 하면서 "으.... 안돼. 싫어!" 하더군.


내 친정어머니는 나를 마흔둘인가 셋인가(당신이 당신의 나이를 정확히 기억 못 하셨어... 호적생일이 32년생이니까, 법적으로는 40세에 나를 출산한 건데, 실제 나이는 그 보다 많으셨던 걸로) 낳으셨어. 시골살이 농사일하던 분이니,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2022년 제주대병원에서 내가 간병을 해드릴 때까지 우리는 모녀라기보다는 조모와 손녀딸로 오해받을 때가 받았지. 그래서, 내 인생 바람 중에 하나가 젊은 엄마가 되자는 거였어.


점선면(이하 점): 이 씨의 개인사가 이 책과 무슨 관계가 있길래?


: 늦둥이 출산 소식을 들은 다음 날 새벽, 정신이 막 깰 때 이 책이 생각이 났어.

강력한 스포일러를 던질게.

이 이야기에서도 어떤 출생이 있고, 그게 이 책의 가장 강력한 반전이기도 하거든.


충격은 우리의 예상과 간극이 클 수도록 강도가 세어지잖아.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다수가 책의 뒷부분을 읽다가, 자기가 어디서 중요한 핵심을 놓친 것인지 알고 싶어서 다시 돌아가서 읽는다는 평을 봤거든. 사실, 나도 그랬어. 그냥 읽었다가, 다시 돌아가서 읽었고, 이 책을 소재로 한 독서 프로그램도 찾아보고, 작가의 인터뷰 영상도 찾아보고, 뭔가 추가적인 공부를 하게 만든 책이었어. 다만 영화는 보지 않았다는 점 밝힐게. 영화화되어 있다는 것까지만 알아.


: 영화 포스터에 '그와 그녀, 서로 다른 기억과 재회하다'라는 문장을 보니, 이 씨가 제목에 왜 기억의 재구성이라고 했는지 조금 알 것 같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사건이라도 개인에 따라서 얼마나 다르게 해석하고 기억하는지. 여기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가?


: 바로 눈앞에 당장 일어나는 일에 대한 해석도 같을 수 없는데, 수십 년이 세월이 흘렀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원래의 사람과 사건은 더 더 기억하는 사람의 재구성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겠지.


여기, 젊은 날의 주인공 토니 Tony,  잠시 동안 그의 여자 친구였던 베로니카 Veronica, 토니와 헤어지고 난 뒤 베로니카가 교제한 남자이며 토니의 친구이기도 한 아드리안 Adrian이 있어.


아드리안은 무척이나 명석하고 지적인 남자였고, 토니는 아드리안에게 매료되면서 동경과 함께 질투도 느끼는 것 같아.

늘 자신을 조금 부족한 이인 것처럼 대하는 베로니카와는 연애가 뜨겁고 달콤하지 못하고, 삐걱대지.

그랬는데, 어느 날 자신과 헤어진 베로니카가 아드리안과 교제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토니는 미국(소설의 배경이 영국임) 여행을 떠나고, 그 후로 자기 인생을 충실히 살아.


시간이 많이 흐른 어느 날, 한 변호사로부터 자기에게 한 여인이 돈을 남겨주었다는 걸 알게 돼.

누구인가?

베로니카의 엄마라고?

그도 그녀를 만난 적은 있었지.

베로니카의 집으로 초대되었을 때.

하지만, 그 집에서 보낸 시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었어.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들과 베로니카가 가지고 있다는 아드리안의 일기장 이야기. 아드리안은 젊은 날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의 일기장이 베로니카의 엄마에게 있는가?그 일기장도 베로니카의 엄마가 자신에게 전해달라고 했다는 걸 알게 돼.


하지만 베로니카는 아예 처음부터 순순히 엄마가 토니에게 전하려고 했던 모든 것들을 다 얌전히 전해줄 생각은 없었어.


토니는 완전히 자기 인생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인물들로부터 소환당한 것이고, 그 역시 그들을 자기 기억에서 불러 낼 수밖에.


그 과정에서 그는 자기에 관한 추한 사실을 알게 돼.

그는 아드리안에게 베로니카와 잘 사귀라고 덕담 정도의 편지를 쓴 것으로 기억했지만,

실제로 자기 손에 받아 든 자신의  편지는 악의와 적의와 저주가 가득한 편지였어.


베로니카가 돌보던 정신지체 청년, 토니는 그의 얼굴에서 아드리안의 얼굴을 떠올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자기가 한 악담이 현실에서 반영된 듯한 기분 때문에.


하지만, 더 큰 반전은 다른데 있었어.


토니가 아드리안에게 심어 놓은 작은 생각의 씨앗이, 어떤 열매가 되었는지.

세월이 흐른 뒤 재회한 베로니카가

"너는 아직도 몰라. 너는 몰랐어."라고 일갈하던

그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어.


: 흠, 이번에도 모든 것을 다 공개하지는 않는군. 영화의 분위기는 로맨스 물인데, 이 씨의 말을 들으면 소설은  미스터리물 같아. 왜 이래?


: 기억의 재구성이라고 했잖아.

작가가 그냥 청춘남녀의 연애이야기 정도를 생각하고 쓴 소설은 아니라서 그래.


젊은이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무척이나 지적이고 철학적이기도 하고, 역사에 대해서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견해를 말하는 부분이 나오거든.


 왜 이렇게 장황할 정도로 이런 철학적인 대사들을 늘어놓는가 했는데, 결국은 인물의 인생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록된 것을 다시 읽어보고 재평가하는 소설의 상황들로 역사를 빗대어 말하고 있는 거더라고.


우리는 모든 상황을 다 알고, 통제할 수 없기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싶으면서도 막을 수 없던 일들이 있었고,

위험하다 싶으면서도 막을 수 없는 일들이 생기고 있잖아.

아예, 예상하지 못한 돌발의 결과들,

오해와 오해가 얽히고설킨 비극 혹은 희극들.

계략과 계획이 세워지고, 틀어지며 순간의 시간들이 모여서 하루가, 한 달이, 일 년이, 십수 년, 수백 년 쌓이면 역사가 되는 거잖아.


소설에서도

'역사는 승자들이 거짓말이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는... 기억해 놓고 써먹고 싶어지는 말을 등장인물들이 하지.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소설이 또 하나 있네.

다음번에는 'Gone Girl'을 소개해야겠어.


왜 우리말 제목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일까?

The Sense of Ending 직역 버전으로 '끝의 감각 ', '끝이라는 예감', '끝난다는 느낌', '끝이란 느낌', '결말 예감', '끝난 기분',  조금 더 나가서 '망한 기분','끝장 난  느낌'보다는 조금 더 호기심을 일으키는 제목인 것은 인정해 줘야겠다.


의식 혹은 무의식 어디에든 찜찜하게 남아있던 어떤 것이, 마침내 '나 여기 있었네! 거 봐 내말 맞지?'하고 등장하는 것 같잖아.

마음에 드는 제목이야.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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