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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Sep 09. 2024

스러져갈 청춘의 날들

The outsiders_아웃사이더

이李씨(이하 이): 소속감.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에게는 본능적인 추구 감정이겠다.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소속감의 단위는 부모와 형제이겠고, 그다음은 또래 관계겠지.


여기, 포니조이라는 14살 남자아이는,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고, 두 형들과 함께 생활하는데

이들은 전부  그리저 greaser라는 백인 갱단 소속원들이야.

제일 큰 형 대릴 Darrel은 20살인데, 그 갱단의 비공식적인 리더이고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강인한 면모를 가지고 있지.

둘째 형 소다팝 Sodapop는 16살이고 학교를 그만두고 주유소에서 일해. 매력적이고 유머감각이 뛰어나서 인기가 있어.


포니조이의 절친은 조니 Johny인데, 포니조이보다 나이가 두 살 많아 16살이고 부모님은 알코올중독이고 그를 무시하고 학대하지. 예민하고 겁이 많은 성품이지만 소설의 말미로 가면서 자기 두려움을 극복하고, 영웅적인 행동도 해.


점선면(이하 점):포니조이의 큰 형이 20세라면, 보호자라고 하기에도 너무 어린 나이인 것 같네. 두 동생을 돌보고, 갱단을 리드하고, 그의 캐릭터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 그렇겠지?

소설은 1967년 출판, 영화는 1983년에 개봉했는데, 대릴 역을 맡은 배우가 패트릭 스웨이지였어.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풋풋하기 그지없는 톰 크루즈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갑자기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저토록 싱그러웠던 배우들의 초상인데, 그중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고, 누군가는 반백의 주름 가득한 중년 아닌 노년에 접어들고 있으니. 참.


조직은 공동의 적과 싸울 때 강해지는 법이잖아.

그리저들의 상대편 역시 백인 갱단으로  소스 Socs, 혹은 social로 불리지. 그리저들이 가난한 계층이라면 소스는 조금 사는 집 자식들이 뭉친 집단으로  마을에서 힘겨루기를 하면서 으르렁 거려.


포니조이는 부모님 대신, 거칠지만 막내를 사랑하는 두 형의 (어쩔 때는) 지나친 간섭과 관심을 받으며 살아가지. 포니조이에게 형들이 있는 가족은 가족이긴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어. 그래도, 절친인 조니가 있어서, 그리고 함께하는 그리저가 있어서 외롭지만은 않아.


소스들은 포니조이를 비롯한 그리저를 보면서 실패자, 낙오자, 하층민 취급을 해도, 밟으면 밟히는 대로 꿈틀대면서 뭉치며 나가지.


소설을 읽으면서, 어느 사회권을 막론하고 이런 편 가르기와 힘겨루기가 존재함을 생각했어.

우리와 우리가 아닌 너희들이라는 구분.

 

운동마저도 경쟁운동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인 나로서는 학창 시절 이런 무리지음이 무척이나 불편했었단다.

물론 대놓고 싸우는 갱단이야 조금 먼 얘기지만, 너무 강한 소속감이 가지는 다른 얼굴, 배타성이 무서워 보이더라. 지금도 공식적인 구분과 상관없이 우리와 너희를 경계 짓는 성격의 모임은 경계해. 아싸도 인싸도 아니고, 차리리 자유롭게 홀로 떠다니는  부유인 floater을 지향할래.


: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 씨처럼 나는 혼자 떠다릴련다 하는 선택이 안될 것 같은데. 특히나 그리저의 일원이라면 말이야. 그냥 갈등이 아니라 계층의 우열을 나누고 무시하고 있으니, 약체로서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대동단결의 에너지가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 말한 대로, 그 둘은 물리력의 충돌도 불사하지. 그 와중에 여리고 섬세해 보이던 조니가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조니와 포니조이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서 외곽의 버려진 교회에 몸을 숨겨. 그곳에서 화재사건을 만나고, 그 사고에서 아이들의 목숨을 구해 준 그리저의 멤버들은 영웅이 되지만, 조니는 그때 입은 부상으로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고 말지.


남자등장인물들의 거친 달음박질에서 일어나는 장면전환, 버려진 교회에 몸을 숨긴 사이, 조니와 포니조이는 감수성 풍부한 시와 소설의 세계를 이야기하지. 살인자이자 도망자인 열넷, 열여섯 남자아이들이 말하는 문학의 세계라니.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게 15살. 완결을 한 것이 고등학교 8학년.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출판의 모든 과정에서 자신을 S.E. Hinton이라고 이니셜만 밝혔을 뿐인데, 이건 실제 이름인 수잔 엘로이스 Susan Eloise을 쓸 경우 여성임이 드러나기 때문이었다고 해.

얼마 전 당시 배경인 소설, 레슨 케미스트리에서도 언급된 거였지.

저자의 이름에서 여성성 배제하기.


: 이 소설을 고등학교 여학생이 썼을 거라고 예측하기 힘들었겠네. 주인공들도 남자들 중심이고, 갱단의 싸움  이야기이고.


: 덕분인지, 소설은 큰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폭력성, 미성년 음주와 흡연, 강한 비속어, 가족 기능 장애, 살인의 설정 등으로 미국 일부에서는 금서가 되었다고 해. 청소년들에게 양서와 금서는 마치 손등과 손바닥 뒤집는 듯. 동전의 양면인 듯.


소설을 읽는 경험이 미천해서인지, 제일 마지막 페이지에 가 닿았을 때, 작가의 참신한 구성_끝이 곧 시작인 수미상관_을 보고 아! 하고 감탄했지. 그 후로 이와 같은 구성을 가진 소설을 몇 번 더 보았었고.

나의 두 번째 브러치북 -시인오계아 님을 기억합니다-에서도 이렇게 끝이자 시작인 순간을 도입해 봤지.


그리고 덧붙여 정리하자면,

이 소설의 심상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rumble과  gallop 우르렁 거리는 소리와 말의 강한 질주.

 그리저들의 불안, 그리저와 소스의 대결, 포니조이와 형제들의 말싸움, 싸움과 도주, 불꽃과 무너지는 소리.


또 하나는 황금빛 일몰.

  포니조이는 조니와 몸을 숨기고 있는 동안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의 시 Nothing Gold can stay를 읽는데

  시에서는 봄의 초록잎을 황금빛이라 하며 이 빛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 하거든.

  나는 이상하게도 이 시만을 감상할 때도, 소설 속에 이 시를 비추어 볼 때도

  찬란하게 불타오르다가 빛을 거두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일몰의 경관이 떠올랐거든.

  아마, 황금빛과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이 두 가지가 만들어낸 나만의 감상인 듯.


: 이 씨가 제목에 붙인 대로네.


청춘은 스러져 간다.


생명의 왕성함도 그 절정 어디에서 갑자기 멈추기도, 천

천히 소멸해가기도 하잖아.

한때는 투쟁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집착하고, 아쉬워하던 모든 날들에 안녕을 고할 때가 오겠지. 그때는 어느 누구와도 함께 하지 않는,  고독한 자아만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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