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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조교 Apr 07. 2024

세 명의 에반, 어떻게 다를까?

<디어 에반 핸슨> 첫인상 리뷰

지난 3월 28일 개막한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에 캐스팅된 세 명의 에반 첫 공을 모두 보고 왔다. 


사실 이번 <디어 에반 핸슨>은 공연이 안정기에 접어들면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개막일이 다가올수록 점점 커져가는 호기심이 나의 인내심을 무참히 짓밟고 일어섰다. 난 결국 세 명의 에반 첫 공연을 모두 보고 왔다.


공연을 보고 나니 놀랍게도 김성규, 박강현, 임규형 세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에반의 느낌이 미묘하게 달랐다. 물론 이 극에서는 '에반'의 심리와 서사도 중요하지만 에반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주변 인물과 환경 역시 공연의 주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주인공 '에반'이 극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세 명의 에반을 보면서 느낀 점을 전해보려 한다. 


김성규 에반
노래를 기대하고 갔다가 디테일하고 자연스러운 연기에 놀랐던 에반. 


첫 공연의 부담감이 누구보다 컸을 텐데 오히려 그런 떨림이 에반이라는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특히 짝사랑하는 여학생 '조이'에게 거짓말을 빌려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If I Could Tell Her'에서 보여준 끝음 처리는 브로드웨이 초연 에반이었던 '벤 플랫(Ben Platt)'의 음색을 연상하게 했다. 후문을 들어보니 본래 파워풀한 음색으로 노래하는 게 익숙한 성규지만, 엄청난 연습과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의도된 떨림'이라고 해 배우로서의 그의 발전에 더더욱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멋짐'과 '카리스마'를 표현하는 데 익숙한 인피니트 출신의 성규가 맞나 싶을 정도로 공연 내내 엄청난 찐따미를 보여주는데 세 명의 에반 중 가장 마음의 상처가 깊어 보여 공연 내내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 에반이었다. 이리저리 겉돌고 치이며 흔들리던 10대 소년의 유약한 모습이 짙게 보였기 때문에 마음속 비밀스러운 상처를 거짓말로 거듭 짓누르는 에반의 모습이 더 가슴 아파 보였을지도 모른다. 

박강현 에반
뻔한 표현이지만, 확신의 물만두 에반.


세 명의 에반 중 가장 눈물이 많았고, 너무 많이 울어 눈이 시뻘개 지는 모습이 2층 객석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관객들 역시 물만두로 만들어버리는 에반.


성규 에반이 내향적인 성향이 가장 강했던 에반이라면, 박강현 에반은 상황과 대상에 따라 내향성과 외향성이 반반씩 섞여있는 듯한 에반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거짓말을 하는데 더욱 의욕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한 거짓말이 불러올 후폭풍에 깊은 자신의 불안 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보여주는 에반이었다.


박강현 에반은 특히 음악 속에서 가장 자유로운 에반처럼 느껴졌다. 특히 에반이 '거짓말'을 할 때 음악 속에서 훨훨 날아다니다 보니,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가장 뼈 아픈 추락을 경험하는 에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자신이 한 모든 거짓말에 대한 책임을 지며 진실을 마주하는 극 후반의 넘버 'Word Fail'에서 무너지는 에반의 모습에 우리의 마음도 에반의 진실과 함께 무너지지만, 안타까움은 반대로 하늘 끝을 향해 치솟는다.


임규형 에반
그가 에반을 하기 위해 2024년 한국에서 <디어 에반 핸슨> 초연이 운명처럼 올라갔다. 


앙상블부터 대극장 주연까지 오직 노력과 실력, 그리고 <디어 에반 핸슨>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역 적령기(?)에 작품을 만나버린 '운'까지 따라주는 에반. 대극장 첫 주연 작품의 첫 공연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일개 관객인 나도 벅차올랐다.


규형 에반이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은 '불안정한 10대 청소년기의 치기 어린 생각'처럼 느껴졌다. 머리를 쥐어짜 내서 '옳다구나!'하고 벌여둔 일이 알고 보니 얼토당토않은 거짓말 투성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청소년기의 미성숙함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에반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행동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순수한 마음이었다는 사실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도 많지만 스스로에 대한 합리화도 쉬운 불안한 10대. 임규형 에반은 모든 상황이 짓궂게 흘러가버리는 상황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다고 믿는 에반이지만, 결국 다다른 곳은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물 속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진실이라는 SOS를 외치며 간절히 구조를 기다리는 에반처럼 느껴졌다.


한 가지 더 놀랐던 사실은 대사가 음악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았다는 것. 배우가 가지고 있는 음악성이 대사 속에서도 묻어 나와 마치 대사가 리드미컬한 노래처럼 들리곤 했다. 재러드와 에반이 코너를 두고 작당모의를 하는 'Sincerely, Me' 넘버에서 10대 소년의 잔망스러움에 엄마 미소를 짓게되는 에반. 

공연이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면 감정의 서사가 정돈되고 촘촘해질 세 명의 에반을 다시 마주하고 싶어질 것 같다. 종종 세 명의 에반 중 어떤 에반을 봐야 하는지 질문을 받기도 한다. 답은 없고 답을 내려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 역시 그 이유로 세 명의 에반을 모두 보고 왔고, 공연을 보고 나와서도 세 명의 에반은 그저 다를 뿐, 그들의 역량을 고저가 있는 순위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묘사한 세 명의 에반 중 가장 와닿는 설명의 직감을 믿어보셨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이 극은 모든 요소들이 버릴 게 없는 '변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배우의 역량과 음악을 즐기고 오는 것만으로도 공연은 제 가치를 톡톡히 해내겠지만, 대사 속 함축적으로 표현되는 상황과 인물들의 성격을 파헤치다 보면 인물 하나하나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고 결국 우리 모두가 외롭고 불안한 '에반'이라는 사실을 시큰하게 느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아 또 보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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