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후 120여 일, 교정 50여 일째 완모(모유수유만 100%) 중이다. 이틀 전에 갑자기 유선이 막혔는지 모유가 잘 나오지도 않고 가슴이 딱딱해지는 증상이 나타나면서 통증이 시작됐다. 아기 밥통이 고장 나버린 것이다. 계속 수유를 해도, 마사지를 해도, 멍울이 잘 풀리지가 않아 아기가 밥 달라고 자꾸 울었다. 나는 아기 밥 먹이고 지쳐서 쓰러져 잠들고 하다 보니 하루가 훌쩍 가버렸다. 나도 나대로 아프고 지치고, 아기는 제대로 못 먹고 하니 빨리 트러블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갈까 하다가, 왠지 병원에 가면 항생제 처방을 해주고 제대로 해결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오케타니 마사지를 예약했다. 모유수유 자세가 잘못되면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으니 아기와 함께 오라고 했다. 샵에 방문해서 상황을 설명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모유수유의 역사(?)에 대해서 들려드렸다.
임신 중에는 모유수유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지만, 이른둥이에게는 모유가 필수적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기에 나는 출산하고 자연스럽게 모유수유를 하게 되었다. 아기가 니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유축한 모유를 냉동해서 병원에 전달했다. 3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6~8회 정도 유축을 하는 것은 통잠을 못 자서 힘들기도 했지만, 회의감이 들 때도 많았다. 내가 무슨 젖소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걸까 싶은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그때는 아기와 교감하며 직수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아기가 50여 일쯤 지나 퇴원하고 집에 와서 설레는 마음으로 직수를 시도하였는데, 입원해 있는 동안 아기는 힘들이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젖병에 익숙해져서 내 가슴을 앞에 두고 자지러지게 울었다. 엄마와 아기가 교감하며 직수하겠다던 내 아름다운 꿈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눈물이 났다. 우는 아기를 앞에 두고 이게 과연 아기를 위해서 하는 게 맞을까 싶어서 유축한 모유를 젖병에 담아서 먹이기를 한 달여간 더 하였다. 그때 내 일상은 육아, 유축, 집안일의 굴레에 있었다.
그래도 유축으로 완모는 불가하기에 하루에 한두 번 계속 직수 시도를 하였다. 그러다가 아기가 출산예정일 즈음 되자, 직수가 가능해졌다. 눈물 날 것 같이 기쁜 순간이었다. 그렇게 직수로만 유지해 온 지 한 달이 좀 지난 시간이었다.
나는 아기가 건강하기 바라며, 하루하루 버텨왔었는데 사실 육아는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서 힘 빠지는 순간들이 많다. 나도 모유수유 하는 내내 이게 맞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았지만 아기가 따라잡기 성장으로 잘 커가고 있는 것을 보며 잘하고 있는 거겠지 혼자 위로해 왔다.
그런데 내 얘기들을 듣고, 수유자세를 봐주시던 오케타니 간호사 선생님이 나에게 정말 대단하다며 보통 그 정도 상황이었으면 엄마가 많이들 포기하시는데, 엄마 의지가 대단하시다고 훈장 받아야 된다고 칭찬해 주셨다. 육아하면서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칭찬을 받은 것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힘겨웠던 일상들이 대단한 업적이 된 감사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