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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Mar 05. 2023

모태 뚱녀의 슬기로운 조리원 생활 part1.

다이어트vs모유수유

출산 전과 출산 후의 체중변화 없이 병원을 퇴원했다.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와 내 품에 안겨있는데 아이가 있던 내 뱃속은 뭘로 채워졌길래 체중이 그대로일까. 참 아이러니 했다.



아이를 데리고 조리원으로 향하며 다짐했다.

'기필코 조리원에서 절식을 하리라.'



조리원 앞에서 남편과 헤어지며 말했다.

"여보! 우리 아기는 살찌우고, 나는 좀 빼서 나갈게! 2주 후에 봐!"





방 배정 후 옷을 갈아입고 거울을 보니 참담했다.

조리원 복이 펑퍼짐해서 거울 속 내 모습이 삐에로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뚱뚱한 삐에로.

기왕 조리원 복 만드는 거 예쁘게 좀 만들어주지. 가뜩이나 며칠 씻지도 못해서 몰골이 말이 아닌데 세상 펑퍼짐하면서도 분홍분홍한 조리원 복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웃겼다. 남편에게 내 몰골 좀 보라고 인증샷을 찍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산모님! 안녕하세요. 저는 여기 조리원 원장입니다. 가슴 좀 봐드릴게요."



조리원에 입소하면 조리원 담당자들 앞에서 가슴을 내놓는 일이 일상다반사이고 담당자들이 내 가슴을 조물조물 만지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첫째 출산 때 경험하였기에 나는 삐에로 옷 같은 펑퍼짐한 조리원 복 단추를 빠르게 풀어 가슴을 내놓았다.



"산모님! 젖이 막 돌기 시작했어요. 모유수유 생각 있으시죠? 점심식사 후 유축 한번 해보세요!"



벌써 젖이 도는구나. 초유를 먹일 생각에 괜히 설레기 시작했다.

첫째 때 나는 젖이 넘쳐흘러서 어쩔 수 없이 12개월 완모를 했었다.

(완모란? 완전 모유수유의 줄임말로 분유를 섞어 먹이지 않고 순전히 모유로만 수유하는 것을 말함.)



2.3kg 미숙아로 태어났던 내 첫째 아이는 내 모유를 먹고 빠른 속도로 살이 붙어서 금세 정상체중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크고 있다.



물론 모유를 먹인다고 아이가 무조건 건강하게 자란다고 볼 수는 없다.

완분을 했던 내 조리원 동기들의 아이들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완분이란? 완전 분유의 줄임말로 분유로만 수유하는 것을 말함.)

내가 모유수유를 고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유수유를 통해 아이와 교감하는 것이 너무 기쁘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모유수유 하는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고 그때 그 기분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또한 모유수유를 하면 살도 비교적 잘 빠지기 때문에 1석2조라 생각하며 둘째 아이 역시 완모를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조리원 원장님과의 짧은 만남 후 점심식사가 방으로 배달되었다.



남편과 조리원 앞에서 급하게 헤어진 것도 아쉽고 무엇보다 첫째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래서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어서 저녁식사도 절반이상을 남겨버렸다.



저녁이 되어 젖이 좀 차오른 것 같아 유축기로 유축을 했다. 그런데 유축기가 고장이 난 건지 초유가 개미눈물만큼 나오는 거 아닌가!

그래서 급하게 조리원 담당자분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는데 유축기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으며 젖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내일 유축을 다시 해보라는 답변을 받았다.



당황스러웠다.



첫째 때는 처음 유축기로 유축했을 때부터 모유가 많이 나왔기에 아이에게 초유를 듬뿍 먹일 수 있었고 이번에도 그때처럼 많은 양의 모유가 나올 거라고 자만하고 있었기 때문에 젖이 안 나오는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가 싶어 빠르게 씻고 잠자리에 누웠다. 내일 아침엔 모유가 넘치길 바라며.




다음 날 일찍 눈을 떠서 다시 유축을 해보니 어제보다 더 적은 양의 모유가 유축되는 것이 아닌가!

이러다간 완모는커녕 초유도 못 먹이겠다 싶어 조리원 원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산모님! 어제 식사 잘하셨어요? 미역국은 다 드셨나요?"



나는 어제 두 끼의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조리원 원장님은 "완모 생각이 있는 분이 식사를 잘 안 챙겨 먹으면 어떡합니까? 아이에게 초유를 먹여야 하니 오늘 아침식사부터는 꼭 식사를 다 하셔야 합니다. 특히 미역국은 국물까지 다 드세요!"



나 살 빼야 하는데. 그러려면 절식해야 하는데.

과거 조리원에서 나오는 밥을 남김없이 먹다가 조리원에서 살을 거의 못 빼고 나온 1인. 그게 바로 접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꼭 절식을 해서 어느 정도 체중을 감량하고자 했는데 모유가 안 나올 줄이야.



초유가 신생아에게 정말 좋다는데.

꼭 우리 아이에게 초유를 먹이고 싶은데.



아침밥상 앞에서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아이를 택할 것인가. 다이어트를 택할 것인가.

보통 엄마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자를 선택하겠지만 모태뚱녀인 나는 다이어트도 목숨을 걸만큼 중요한 사안이기에 깊은 고뇌에 빠졌다.



하지만 이내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나는 하루 세끼 식사를 잘 챙겨 먹었고 하루종일 물을 마시며 젖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10ml도 안 나오던 모유가 3일 만에 100ml 넘게 나오게 되었다.

지겨운 미역국을 꾸역꾸역 먹은 것이 정말 힘들었지만 다시 모유가 잘 나온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조리원에서 살을 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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