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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Mar 14. 2023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어도 여전히 뚱녀

아빠 곰은 날띤해- 엄마 곰은 뚠뚠해-

조리원 퇴소 전날 밤, 집으로 가서 고군분투할 생각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첫째 아이를 키울 땐 아이가 생후 130될 때까지 종종 울었고 허공에다 욕을 하기도 했다.

육아가 이렇게 힘든 거였으면 평생 딩크로 살았을 거라며 신을 원망하곤 했다.



육아가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수면 부족이다. 제대로 잠을 못 자기 때문에 나는 늘 예민했고 육아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곤 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면 이렇게 겁먹지도 않았을 텐데.

신생아 육아에 대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조리원 퇴소 후가 암담하기만 했다.





다른 산모들은 아침 일찍부터 퇴소를 했다.



나는 아침에 따뜻한 물로 천천히 샤워를 했다. 여유롭게 샤워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기에 조리원 퇴소 의식을 치르는 것 마냥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닦았다.



그리고 100번도 더 봤을 것 같은 내 최애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틀어놓고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했다.



날씨가 추웠지만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후 드라이기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말렸다. 그 어느 때보다 정성스럽게.



집에 가면 여유로운 샤워, 여유로운 식사는 꿈도 못 꾼다. 은 머리카락을 말릴 시간 따윈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조리원 퇴소 3시간 전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 생각되어 최대한 천천히 여유롭게 즐겼다.



남편에게는 퇴소시간에 딱 맞춰 오라고 했기에 남은 시간을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았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의 대사가 떠올랐다.

"나 다시 돌아갈래!"





집에 갔더니 친정 부모님과 첫째 아이가 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출산하고 조리원을 퇴소할 때까지 첫째 아이를 돌봐준 친정 부모님 눈 밑에 다크서클이 내려앉아있었다.



친정 엄마가 말하길 "애는 예뻐. 근데 솔직히 끝이 있는 육아였기이 견뎠지. 정말 힘들었어. 앞으로 애 둘을 키워야 할 너랑 신서방이 걱정이야."



친정엄마는 내가 굶어 죽을까 봐 미역국, 고깃국, 불고기, 부침개, 각종 나물, 어묵볶음, 동치미 등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가득 해오셨다.



모유수유로 인해 다이어트 식단까지는 못하더라도 저칼로리 식단을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싸 온 반찬들을 보며 당분간 다이어트는 잠시 접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점심을 우걱우걱 먹으며 친정엄마에게 나 살 좀 빠진 것 같냐고 물으니 평소 거짓말을 못하는 우리 엄마는 "하나도 안 빠진 것 같은데? 좀 적게 먹지 그랬어"라고 했다.



거의 10kg 가까이 빠졌는데 티가 하나도 안 난다고? 앞자리가 8에서 7로 바뀌었는데? 꽉 끼던 임부복이 헐렁거리려고 하는데?

오늘 같은 날은 거짓말 좀 해주지. 바리바리 반찬 한가득 싸왔으면서 적게 먹으라고 말하는 엄마가 얄미웠다



사 후 안방으로 와서 전신 거울을 속 내 모습을 멍하니 보았다

출산은 했는데 여전히 임산부 비주얼이었다. 그것도 뚱뚱한 임산부 말이다.

'나는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어도 여전히 뚱보구나!'라고 생각하며 조금은 울적했지만 사랑스러운 첫째 아이의 재롱을 보며 우울함을 떨쳐내려고 했다.



첫째 아이가 장난감 피아노를 엉망으로 치며 자신의 애창곡인 곰 세 마리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곰 떼마리가 한 지베 이떠. 아빠 고옴, 엄마 고옴, 애기 곰"



귀여운 율동을 보며 노래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는데

"아빠 곰은 날띤해, 엄마 곰은 뚠뚠해, 애기 곰은 너무 귀여어! 으뜩 으뜩 자란다!"



아이가 살짝 바꿔 부른 노랫말에 온 가족이 폭소를 했다.

친정 엄마는 "우리 아기 똑똑하네. 엄마 곰이 너무  뚱뚱하지?"라고 말하며 정곡을 찔렀다.



조리원에서 마사지로 살이 조금 빠져서 덜 뚱뚱해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뚱뚱한 엄마 곰이었다.



모태 뚱녀라서 뚱뚱하다는 말에 딱히 상처받는 스타일은 아닌데 첫째 아이가 뚱뚱하고 날씬하다의 의미를 아는 것 같아서 조금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그 누구보다도 자식에겐 뚱뚱하지 않은 건강한 엄마로 인식되고 싶었기에 생각보다 빨리 다이어트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첫째 아이에게 엄마가 뚱뚱하냐고 물으니 "응. 뚱뚱해! 근데 예뻐. 공주님처럼 너무 예뻐! 나는 엄마 닮았어."라고 했다.



나를 예쁘다 해주는 유일한 내 딸에게 고마웠다.

딸아, 기다려줘. 곧 날씬한 엄마곰이 될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모태 뚱녀의 슬기로운 조리원 생활 p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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