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제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선택의 연속인 것 같다.
이전에 전도사 사역을 했을 당시 대학교를 다니며 사역을 하는 것이 벅찼었다.
특히나 지역이 달라 이동하는 것도 힘들었고 초등부 교육전도사는 처음 하는 일이었다.
23살에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주일학교와 예배공과 그리고 여름성경학교 이런 모든 것들이 생소했다.
주일학교 교사 경험도 없는 내가 아이들에게 성경말씀을 전하는 사역자가 되었다.
그래도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 하며 최선을 다해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나는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어린아이들의 입술에서 기도를 하고 지난 시간 배운 내용에 대하여 기억을 하며
앞에 있는 전도사님한테 이쁨을 받기 위해 손을 들고 나의 물음에 답하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벅찼다.
내 마음이 이렇게 벅찬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쁘실까?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이 너무나 소중했고 귀했다.
그런데 담임 목사님과의 의견 충돌로 인하여 여러 문제들이 생겼고 목사님께서 갑작스럽게 나에게 나오지 말라고 하시면서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던 나의 마음에 아픔으로 자리 잡았었던 경험이 있었다.
이때가 나의 첫 사역의 실패 경험이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사역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었어도 얼마 후 코로나가 터지면서 영상을 다룰 줄 아는 전도사 사역자를 많이 찾게 되면서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교회는 거의 없었다.
물론 배우고 지원하면 좋았겠지만, 그렇게까지 사역에 뜻이 깊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 후 시간이 흘러 작년 6월 하나님께서 다시 나를 초등부전도사로 콜링 하셨다.
초등부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여름성경학교,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나에겐 너무나 소중했고 즐거웠고 기쁨이었다.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영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생각애서 전혀 나올 수 없는 아이디어와 비유들이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하나님께 의지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이해시켜 주기 위해서 아이들이 앉아있는 의자에 비유를 들었다. 이것은 내가 대본을 쓴 것도 아니었고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디어였다.
‘여러분들이 의자에 앉을 때 의자가 부서질 거야~ 하면서 의자에 앉을까요? 아니지요? 여러분이 의자에 쉽게 앉을 수 있다는 것은 의자가 나를 지탱해 줄 것을 신뢰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이렇게 의자에 앉는 것과 같아요.
의자가 부서질까 봐 엉덩이를 떼고 있으면 스쿼트 자세가 되어서 힘을 주게 되어서 힘이 들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하게 되면 힘이 들 수밖에 없어요.
능력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으며 의지할 때 우리는 편해질 수 있어요. 지금 여러분이 편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것처럼요!’
사역을 통해 나도 어려운 성경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알려주기 위해 준비를 하다 보면 내가 더 은혜를 받고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가 된다.
내가 더 배우며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매주, 매달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나의 사역자의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여러 번의 고비들이 있었다.
첫 번째 고비는 교회 내에서 다른 전도사님과 교제를 하게 되었는데 헤어지게 되었고 서로 끝이 많이 좋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매주 그 전도사님을 보는 것이 마음이 힘들었지만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까지 힘들지는 않았다.
두 번째 고비는 작년 성탄절을 준비할 때였다. 유초등부 전도사님께서는 하나도 관여를 하지 않으시고 나 혼자서 주말 동안 유초등부 아이들을 맡아서 율동을 연습을 시켰다.
불만이 많았지만 은혜로 넘겼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는데 다음날 그 전도사님께서 피드백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을 땐 정말 화가 너무 났다.
내가 불만을 표현했더니 다음 행사 때는 아예 나를 무시하시고 진행하셨고 나도 신경을 껐다.
그렇게 넘어갔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싸웠을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고비는 주일학교 교사 선생님들이 내 험담 하는 것을 듣게 되었고 거기에 또 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싶어 권사님께 상의드렸는데 또 권사님께서 목사님께 내가 한 이야기를 전달하셨고 그 덕분에 나는 목사님께 크게 혼이 났다.
이유는 전도사로서 성도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하면 약점이 되고 모범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전도사는 성도분들이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늘 성도 앞에서 웃어야 하고 믿음이 좋아야 하고 모범을 보여야 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하신 목사님의 말씀에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교회에서 가면을 쓰고 거짓말로 대응하라는 느낌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때에 나의 신앙관이 흔들렸다.
교회 성도로 있을 때와 사역자로 있을 때의 나의 말과 행동이 달라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하셨지만
충격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충격이 다 가시지 않았을 때 마지막 사건이 터졌다.
초등부에 있던 여자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학생부로 옮겨졌다.
그런데 학생부에 학생이 없어 이 아이 혼자 있었다.
초등부를 졸업 후 아이가 2주 동안 교회를 나오지 않았다.
지난번 하나님의 교회(이단교회) 다니는 친구가 있는 교회에 가려고 했었던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의 영혼이 걱정되었다. 초등부를 졸업했지만 학생부에 가서 적응을 못하는 것 같은 마음에 신경이 쓰였고 걱정이 되었다.
학생부와 초등부 부흥을 위해 나는 지난 17일 토요일에 시간이 되는 아이들과 함께 전도를 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주일에 목사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은 또 한 번 충격이었다.
최종적으로 목사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은 내가 그 여자아이들 데리고 전도한 것 자체가 월권행위라는 것이었다. 목사인 자신도 그 학생부 담당 전도사님의 자존심을 위해서 믿고 기다려주고 있는데 왜 내가 그렇게 설치냐는 거였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선한 행동으로 했던 나의 행동들이, 도움을 주려고 했던 전도가, 협력해서 선을 이루고자 했던 나의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학생부담당 전도사님한테 연락을 했었다. 이분은 이전에 나와 교제했던 분이었다. 나와 헤어지고 카톡을 차단했다. 그래서 연락이 안 되었고 상의를 할 수가 없었다.
목사님은 모든 사실을 알고 계셔서 나는 상황설명을 다 말씀드렸다.
아이가 걱정이 되었다는 말에 목사님께서는 이미 보냈으면 끝난 것이라는 답변이 들려왔다.
이 사실 또한 나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아이의 영혼에 관련된 일인데 함께 협력해도 부족할 판에 이렇게 무 자르듯이 매정하게 학생부로 넘어갔으니 나는 신경도 쓰지 말고 손 떼라는 것인가? 나는 너무 화가 났고 목사님께 항의를 했다.
하지만 나의 말은 목사님 귀에 들어가지 않았고 목사님은 그저 학생부전도사님의 자존심이 중요했다.
나의 행동은 월권행위라며 반대 입장을 이야기하셨지만 나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고마울 것 같았다. 나 대신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생각했다.
나는 이일로 인하여 학생부 담당 전도사님께 문자로 연락을 했다.(문자는 차단이 안되었다는 것을 그날 당일 알게 되었다) 전도사님의 답장은 그렇게라도 그 아이가 교회에 나오는 것이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말해준 전도사님이 나는 고마웠다.
나는 교회에 아이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이 두려웠고 무서웠다. 겁이 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을 듣는 다음세대들의 수가 줄어들고 심지어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들도 있다고 했다.
나는 우리 교회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행했다.
그런데 결과가 이렇게 되어버렸다.
나의 열정은 상처로 변질되었고 더 이상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한 마음만은 정말 진심이었고 사랑이었다.
그런데 내가 어른들에게 상처를 받았고 이겨낼 힘이 없다.
나는 지금 성공과 실패의 기로에 서있다.
이대로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사역을 내려놓을 것인가?
또 아이들의 영혼을 두고 그만두려고 하니 이전의 실패의 경험이 나를 붙잡았다.
그런데 나보다 더 좋은 전도사님이 오면 그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내 안을 덮어갔다.
자존감이 끝없이 하락했다. 자신감이 없어졌다.
삶은 언제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선택의 연속인 것 같다.
여기서 내가 사역을 내려놓는다 할지라도 지금 당장은 실패일 수 있지만
이 실패를 계기로 나는 또 많은 것을 배울 것이고 많은 것을 깨달으며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성장의 발판이 하나씩 하나씩 쌓이다 보면 언젠가 성공에 도달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