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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준 Mar 28. 2024

수능 끝난 고3이 홀로 떠나는 해외여행(1)

진짜 나를 돌아보는 여행

 고등학교 들어오기 전 혼자 무의도 여행을 다녀왔었다. 이 여행은  내 중학교시절을 돌아보고 앞으로 있을 고등학교 견뎌낼 의지를 다지게 해 준 소중한 여행이었다. 이때 하늘이 두쪽 나도 수능 끝나고 혼자 해외여행은 가야겠다고 결심했었고 나는 드디어 이룰 때가 왔다. 그래서 3년 동안 열심히 용돈을 모았고 노력 끝에 물가가 싼 나라를 여행할 만큼의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재수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재수생이 혼자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의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눈초리들이 나의 결정을 뒤집어 버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난 이제 모든 결정을 혼자 하고 그 결정의 책임을 져야 할 나이이다!

 그 첫 번째 결정이 바로 이 혼자 가는 해외여행이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부모님께는 수능 끝나고 해외여행을 간다고 귀에 딱지 앉게 말을 해놔서 허락을 받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재수생인 만큼 눈치가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부모님과 몇 차례 마찰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출발 하루 전에 비행기 티켓과 숙소의 예약을 다 끝냈다. 하루 전에 정신없이 하느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과 약간의 불안감을 갖고 공항에 도착했을 땐 멀쩡했던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고 승무원에게 여권을 내미는 손이 벌벌 떨렸다. 3년 동안 기다렸던 여행, 지금까지 썼던 가면을 잠시 내려놓고 진짜 나를 돌아보고 나대로 행동할 수 있는 여행, 내가 진짜로 원했던 여행이 실현된다는 것이 너무나도 가슴 벅찼다. 공항에 3시간 전에 도착했지만 미리 준비해 두었던 유심을 찾고 환전까지 하니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 바로 탑승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로 갔다. 창 밖에 있는 비행기를 보니 '이제 진짜 시작이네...'라는 생각이 팍 들었다.

 드디어 탑승시간이 되어 줄을 섰는데 나만 혼자였다. 모두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나는 내 뒤에 꽂힌 이어폰에 약간의 외로움을 덜어 내고 있었다. 설렘, 두려움, 불안, 외로움 등의 수십 개의 감정을 느끼며 비행기를 탔다. 자리에 앉아 미리 다운로드하여 놓은 태국 여행에 도움 될만한 동영상을 보았다. 동영상을 보며 태국에서 꼭 먹어야 할 것과 가야 할 곳 리스트를 만들었다. 중간에 창 밖을 보니 해가 지고 있었고 해가 지고 나니 보석 같은 별들이 쏟아질 것 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별들을 보며 잠에 들었고 잠에서 깨니 벌써 방콕에 도착해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동남아 특유의 냄새와 꿉꿉한 공기가 확 느껴졌고, 약간 울컥했다. 울컥함도 잠시 이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맡긴 수화물이 없어 재빠르게 공항을 나와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 둔 택시를 기다렸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나는 금방 땀범벅이 되었고  그때 마침 택시가 도착했다. 그 택시기사에게 비행기에서 공부한 서툰 태국어 한마디를 건네었다. "싸와디캅~" 내가 인사를 하니 그분도 친절하게 인사를 해주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었다. 처음으로 혼자 온 타지에서 아직까지 어리바리하지 않고 잘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가 기특했다. 혼자 별의별 생각을 하는 사이에 벌써 첫 번째 숙소에 도착했다. 첫 번째 숙소는 룸피니 공원 근처인 실롬로드 쪽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시각이 밤 10시 정도였기 때문에 주변이 약간 스산했다. (사실 내가 긴장했기 때문에 스산하게 느껴진 거 같기도 하다.) 얼른 체크인을 하였고 숙소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넷플릭스도 볼 수 있었고 에어컨도 빵빵하게 잘 나왔다. 이제 무사히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어 온몸에 긴장이 싹 풀리니 피로가 몰려왔다. 잠시 침대 위에 누워있는데 작은 검은색 무언가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개미였다. 그래서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침대 위에 있던 개미를 모두 잡고 여기선 제대로 자는 건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미 덕분인지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였다. 제대로 방콕을 느낄 시간이다!

 숙소 근처는 약간 외진 곳이었고 번화가까지는 약간 걸어가야 했다. 방콕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내 마음속 불안이 설렘으로 등가교환되어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역시 방콕은 밤문화의 성지인 만큼 번화가는 수많은 불빛들과 술집으로 가득했다. 그냥 그것들을 구경하며 걷는 것만으로도 나는 여행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착한 시간이 밤이기도 했고 오기 전에 너무 긴장을 했던 탓인지 무려 맥도널드에 가서 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콘파이’를 먹었다.

 태국도 당연하게(?) 키오스크가 있었는데 무슨 문제였는지 한국에서 발급받아가지고 갔던 트레블카드로 결제를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 몰라하던 그때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자기에게 주문하라면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 ‘휴… 살았다.’ 한국이었으면 당황하지 않았을 모든 일들이 낯선 땅에 처음 오니까 더 힘들고 어려웠다. 다행히 음식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착석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기 무섭게 내손에 카드가 없다…‘엥 방금까지 내 손에 쥐어져 있었는데…? 에?…?’ 당장 일어나서 카운터에 가봤지만 카운터에는 없었다. 멘붕 일보직전이었다. 혹시 떨어뜨린 건 아닌지 바닥을 유심히 보고 있었는데 하필 카드가 흰색인데 바닥타일도 흰색이라 찾기가 힘들었다. 열심히 찾다가 그냥 포기하려는 순간 다른 손님 테이블 바로 밑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해서 속으로 기쁨의 환호를 내뱉고 바로 나의 음식이 타이밍(?) 좋게 나왔다. 다행히 먹으면서 체하진 않을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하도 콘파이를 먹으라고 하던데 그게 그렇게 유난 떨 맛이야…?라는 생각이 한입 베물자 그대로였다. 그냥 콘파이 맛이었다. 맛은 있었지만 감탄이 나올만한 맛은 아니었다. 그냥 한번 경험해볼 만한 정도… 그래도 배가 고팠어서 빠르게 먹어 치우긴 했다.(지금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뭔가 계속 생각나서 그리운 맛이긴 한 것 같다.)

 그렇게 태국 맛보기를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면서 이대론 돌아가기 아쉬운 미음에 편의점 털이를 하러 편의점을 들어갔다. 한국과 비슷한 품목들이 많았고 난 태국에만 있는 걸 먹어 보고 싶었지만 잘 찾아지지 않았다… 일단 작전상 후퇴하고 다음에 좀 검색을 해본 후에 다시 제대로 털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더위를 시킬 겸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가지고 나왔다. 생각보다 맛이 있지는 않았지만 더위를 시킬 만큼 충분히 시원했다. 처음 걸어왔던 길과 같은 길로 숙소로 되돌아갔는데 두 번째 걸어서 그런지 훨씬 익숙했다(?). 확실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처음 걸을 때 이 길은 오만가지 부정적인 생각들 예를 들면 바퀴벌레들이 갑자기 하수구에서 튀어나와 나를 덮친다던가 갑자기 강도가 나타나 칼을 들고 위협한다던가 하는 지금 보면 이상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반면, 되돌아가는 길에는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있었다. 이 마음 그대로 숙소에 도착하여 씻고 바로 침대에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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