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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원 Oct 30. 2023

엉킨 실타래

풀 것인가, 자를 것인가.

오늘아침, 바느질을 할 일이 있어서 실을 꺼냈는데 곱게 감겨 있던 실이 엉망으로 꼬여버려 난감했다.

손만 대면 망가뜨리는 마이너스의 손인 나를 탓하며 화를 다스렸다. 학창 시절 나는 가사시간을 가장 싫어했다.

무슨 만들기가 그렇게나 많았던지, 한복 만들기, 뜨개질, 버선 만들기 등등.. 가사시간은 내게 도망치고 싶은 시간이었다. 차라리 수학문제 하나를 더 푸는 것이 나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엉켜버린 실타래를 보니 문득 내 머릿속을 보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잘 다뤘더라면 이렇게 엉키진 않았을 텐데 또 이렇게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인생의 고민들 역시 처음부터 잘했더라면 잘 풀릴 수 있었을까? 뭐가 됐든지 처음부터 잘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잘할 수 있었을까? 세 번째도 네 번째도 잘하기는 쉽지 않았다. 몇 번째인지 셀 수 없을 때쯤 조금은 잘해진 것 같았다. 엉킨 실타래를 대하는 나의 자세 역시 몇 번째인지 알 수 없으나 조금 나아진 듯하다. 예전이었다면 벌써 집어던지고 자르던지 버리던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나는 조금 인내심을 가지고 적은 양이지만 천천히 실패에 옮겼다. 아직도 풀어야 할 매듭이 훨씬 더 많이 남았지만, 적은 양의 풀어낸 실이 더 뿌듯했다. 이제 남은 실을 잠시 밀어 두고 조금씩 천천히 다시 풀어 보려 한다. 인생의 고민들 역시 다 풀 수도 없을 것이며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풀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두를 풀어야만 끝이 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풀어낸 작은 부분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더 큰 용기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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