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나는 이제 나도 중년의 삶으로 가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기 관리가 꽤 철저한 편이어서 꾸준한 운동과 함께 식단도
늘 클린 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고 습관처럼 지켜지던 일이었다. 그러나 오십이 넘어서면서부터 일상들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몸이 먼저가 아니라 인생의 굴곡이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듯하다. 뜻하지 않은 환경의 변화는 나를 점점 알 수 없는 늪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산속을 거닐다 나를 빼고 모두가 하산한 후 나 혼자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운동을 하려고 애썼고 나름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노력을 했던 것은 소용돌이 휘몰아치는 삶 속에서도 나를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행동과 반대로 몸은 계속 말을 듣지 않았고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져만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귀찮았다. 당연히 움직임이 줄었고 몸은 변해갔고.. 그러면서 마음도 점점 변해갔다. 몸이 변하면 생각이 변한다. 생각이 변하면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면 삶이 변한다.
그렇게 내 몸이 변하면서 생각도 변하고 행동이 변하고 삶이 점점 변해갔다.
변한다는 말은 대체로 부정적인 말로 쓰일 때가 많다. 좋은 것에서 나쁘게 변할 때 쓰인다.
사랑하는 마음이 변한다. 성격이 변한다. 얼굴이 변한다. 등등 여기에 변화한다 라는 말은 어색하다.
반면 변화한다 는 진취적인 느낌이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 자체로 긍정의 시그널이다.
나는 그렇게 변화하고 싶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예전과는 많이 변한 내 모습을 보면서 달라지고 싶었다.
사람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면 과거에 머무른다고 한다. 변해버린 나는 과거에 집착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와 많은 것을 비교했다. 마음은 불행했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나아질 수가 없지.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오랜 생각 끝에 깨달은 것은 변한 것 중에 내 몸을 먼저 보게 된 이유는 현재를 인정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는 것을 신체가 가장 먼저 알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젊은 나였고 지금의 나는 훨씬 나이가 많은 나다. 그러니 몸도 마음도 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당연한 것을 생각 못하고 나는 뭐든지 핑계를 찾고 싶었는지 모른다. 내 탓은 아니라고.
어릴 때는 나이를 먹으면 편해질 줄 알았다. 노노.. 절대!!
힘든 일은 끊임없이 있고, 세상에 모르는 게 너무 많고, 나만 바보 같다고 느낄 때도 많고, 이 나이 먹고 나는 도대체 뭐 했나 싶기도 하고.. 하는 일 없이 나이만 먹은 거 같아서 허무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매정하게 앞으로만 달려가고 있다. 나는 변화하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인정하게 되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변화다. 지금의 나. 중년이 된 나.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 과거의 내가 하지 못했던 일을 분명 이루었고 이루어 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추억으로 포장된 필터 씌운 아름다운 기억이 허상으로 내게 자리 잡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조금 편안하다. 인정하고 나니 홀가분하다. 그렇게 나는 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