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선이엄마가 몸빼바지를 입고 빗속을 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뛰어가는 장면을 보는데 불현듯 그 모습에서 우리엄마 모습이 오버랩되어 보였다.
1년365일 몸빼바지에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하고 있던 엄마의 모습은 응팔의 성덕선이 엄마와 똑같았다.
그시절 예보도 없던 비가 내리면 언제 올지 모르는 오빠를 마중하러 버스정류장에 우산들고 나가 기약도 없이 기다리는게 내몫이었던 억울하던 시절.
그래도 버스정류장앞 레코드점에서 틀어주던 노래를 듣는일은 가난한 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게 해 주는 낭만이었다.
저녁먹고 나서 연탄 갈때면 어김없이 날빠진 부엌칼 들고 집앞 한길 옆으로 들고나가 붙은 연탄을 칼로 잘라내고 후벼서 깔끔하게 잘라내면 내자신이 기특하기도 했던 시절.
생전가야 이사가는 집도 없고 이사오는 집도 없던 맨~ 달동네 토박이들만 모여살던, 이 집 저 집 수저까지 꿰차고 있던 이웃을 그래서 더 부담스러워 하며 가난하여 싸울 일이 더 많았던 엄마의 창문단속을 나는 매번 저 창문짝 닫는다고 우리집 소리가 딱 50센치 떨어져 붙어있던 옆집에 안들리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어 엄마의 내숭이 더 불편했었던 시절.
그래도
바가지들고 콩나물공장에 콩나물 사러 가던 기억이,
냄비들고 저 아래까지 내려가 500원 주면 한냄비 채워주던 뚱띠할매시락국이,
그것보다 더 아래 로라장옆에 있던 만두집에 오빠 심부름으로 사러가던 만두가,
날만 새면 마루 밑까지 닦아내며 청소하던 엄마, 봉고차로 학생들 태워 나르던 봉고기사하던 아버지
1988년 여름 휴가때 거제도 학동해수욕장에서 불러대던 다섯손가락의 '수요일엔 빨간장미를'
1988년 크리스마스 전날 부산대앞 어느 주점에서 불렀던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시작해 정태춘 박은옥의 '사랑하는 이에게'를 합창하던 그때가
없는게 많아도 불편하진 않았던
아침저녁 상관없이 문밖만 나서면 마주치던 이웃이 있던
겨울 밤하늘에 별이 유독 가까이 느껴지던 그 시절 1988년.
엄마가 돌아가셨던 그 해
살던 집을 부수고 이층집을 지어 처음으로 남부럽지 않은 집에 살았지만
퇴근하고 어두운 집에 들어서 불을 하나 하나 켤때마다
참 많이 외롭고 쓸쓸했던 1988년
응답하라 1988을 보며 유독 감정이입이 많이 되어 눈물 훔치지 않은 회가 없노라고.
40여일 후면 쉰이라는 내나이가 어이가 없노라고.
아직도 이리도 선명한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