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루시카, <꽃에 망령(花に亡霊)>
3월을 코앞에 둔 지금, 벌써 2023년의 한 분기를 채워가고 있다. 한 해의 마무리를 잘 준비하자는 글을 기고했던 작년의 11월을 떠올리면, 새삼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당시에는 얼른 2022년이 끝나 바쁜 일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후회 없을 만큼 열심히 살았으니 올해가 지나가는 게 전혀 아쉽지 않다고, 얼른 전부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떠들고 다녔다. 그런 내 모습이 무색하게도 내가 해온 모든 활동에 진짜 마침표까 찍히자 왈칵 눈물을 쏟았더랬다.
작년을 쏟아부었던 소중한 동아리도 끝, 2년동안 매주 강의실에서 - 물론 반은 온라인 강의였지만 - 만났던 동기들과의 만남도 끝. 나는 곧 휴학을 하고 동기들도 각자의 계획에 맞춰 학교를 다니거나 몇 년 쉬거나 할 테니 내가 학교에 돌아올 즈음이 되면 많은 게 달라져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간 애정했던 많은 것들이 갑자기 물거품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무서워졌다. 그리고 오늘은 그 당시의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노래 한 곡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もう忘れてしまったかな
이젠 잊어버렸으려나
夏の木陰に座った頃
여름의 나무 그늘에 앉았을 즈음
遠くの丘から顔出した雲があったじゃないか
저 멀리 언덕에서 얼굴을 내민 구름이 있었잖아
요루시카는 노래에서 지나간 추억을 하나씩 회상한다. 여름의 나무 아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머 바람을 맞았던 순간, 진실된 가치를 찾으러 가자던 약속, 그늘 아래에서 구름을 바라보며 그걸 잡으려 했던 실없는 장난까지. 사소하지만 분명히 빛나는, 그래서 소중한 추억들일 것이다.
그 순간들, 혹은 그때의 자신을 요루시카는 '꽃에 있는 망령'이라 부른다. 죽은 사람의 영혼. 분명히 존재했을 테지만 더이상 살아있지는 않은, 그러나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는 존재.
忘れないように
잊지 않기를
色褪せないように
색 바래지 않기를
形に残るものが全てじゃないように
형태로 남는 것이 전부는 아니기를
그리고 이어 노래한다. 형태로 남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기를 바란다고, 그 지나간 추억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무언가가 남을 수 있다는 이런 이야기야말로, 마음을 쏟았던 무언가가 끝나는 데 두려움을 느끼던 나에게 필요한 말이 아니었을까.
言葉をもっと教えて
말을 좀 더 알려줘
さよならだって教えて
작별이더라도 알려줘
今も見るんだよ
지금도 볼 수 있는걸
夏に咲いてる花に亡霊を
여름에 피어난 꽃에 망령을
모든 순간에는 끝이 있고, 어떤 만남이든 그 결말은 헤어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별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별의 순간까지도 우리가 두고두고 회상할 그 '망령'의 일부가 될 테니까 말이다.
2022년은 끝이 났지만, 연말에 슬퍼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내 일상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내 곁에는 내가 아끼는 친구들이 남아 있고,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또다시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요루시카의 노래를 들으며, 책 속 문장에 마침표가 찍히더라도 그 문장이 계속 마음에 남아 울림을 주듯이, 내가 해온 일들에 끝이 다가온다고 해도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곱씹어본다.
그저 요루시카가 노래했듯이 바라보며 살아갈 뿐이다. 형태로 남는 것이, 역사에 남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를.
2023. 02. 23. 작성
형태로 남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를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 ART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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