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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쓰는 곰 Mar 10. 2024

대문에 이름이 철썩

<베를린 곰 편지>

베를린이 낯설다는 것을  몸으로 적나라하게 느낀 건 변기 위에서다. 너무 높았다.  높은  Bar호커에 앉은 것 마냥 발이 허공에서 대롱거려 제대로 힘을 줄 수 없었다.    

세면대 거울도 너무 높았다. 거울 앞에 서면 턱 아래는 싹둑 잘려 목을 보려면 까치발을 해야 했다.     

거리에선 허리가 내 눈높이인 사람이 하루에도 몇은 지나갔다.     

지하철 손잡이는 왜 그렇게 높은지. 잡으면 거의 매달릴 지경이다. 덜컹거리는데 잡을 곳은 마땅찮고, 퀴퀴하고 쇠 냄새 같은,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낯설고 역한 냄새가 나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

문득문득 ‘어, 왜 이렇게 어금니를 꽉 물고 있지?’ ‘어, 또 주먹을 꽉 쥐었네.’ 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내가 낯선 것 같다.  '오'라는 내 성을 보고 진짜 성이냐고 묻는 걸 보면.  알파벳으로 Oh라고 쓰는데 사람들은 감탄사 Oh!로 읽고 재미있어하거나 놀린다. 그렇다고 O를 쓰면 더 이상할 거다. 인터넷 등록할 때 성에 Oh를 쓰니까 계속 '세 글자 이상입력하시오.' 하여 등록을 못한 적도 있으니.       


여기서는 현관과 우체통에 숫자 말고  ‘성’이 붙어 있다. 우편물은 충무로 1번지 ‘101호’가 아니라 충무로 1번지 ‘오’ 가한테 온다.  그래서 살던 사람이 이사 가면 집 이름도 바뀐다. 관리소 아저씨가 현관에 ‘Oh'를 철썩 붙여주었다. 단단히 붙은 ’Oh'를 보니 근거 없는 배짱이 생겼다. 시작은 했으니 이제 어떻게든 되겠지.          


허황된 배짱은 쉽게도 사라졌다. 그날 밤 자려고 불을 껐는데 집 앞에서 여자 비명이 울렸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 섬찟했다. 블라인드를 열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신고하려고 전화를 든 후에야 알았다. 신고번호를 모른다. 신고는 112. 해는 동쪽에서 뜬다는 것만큼 당연한 상식이 여기서는 아무짝에 쓸모없다. 이런 자각이 베를린을 더욱 낯설게 만들었다.  


문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고 누웠는데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무슨 일이었나 물어보고 싶어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웃집 벨을 누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도시엔 스스럼없이 벨을 누를 수 있는 집이 없었다. 딸과 나만 덩그마니 있었다.



며칠 뒤엔 딸아이 여권을 도난당했다. 복사가게에서 체류허가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복사하는 사이, 방금 복사를 해 바로 옆에 둔 여권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눈 뜨고 코 베이는 게 이런 건가. 눈앞이 캄캄했다. 세 달 이내에 체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안 그래도 시간이 부족하고 할 일이 많은데 여권까지 다시 만들어야 하다니!


영사관에 문의하니 우선 경찰서에 신고하라고 했다. 신고하러 갔더니 경찰서가 이상하다. 입구부터 한국과 달랐다. 안이 보이지 않았다. 거울 같은 유리 앞에 놓인 마이크에 용무를 말한 뒤 밖에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고 이상하게 주눅이 들었다.


은행에서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체류허가 신청에 필요한 계좌를 만들려고 은행에 갔다. 그런데 창구직원은 예약 없이 와서 도움을 줄 수 없단다. 그럼 예약을 잡아달라고 하니 그건 창구에서 다루는 일이 아니라고. 지점에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안 되고, 인터넷 예약 시스템도 없었다.


예약 없이 가면 문전박대 당하기는 병원도 마찬가지다. 응급상황이 아니고는 바로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초진 예약을 하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했다.


일상이 너무 낯설었다. 식재료나 생필품을 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생일 초와 성냥을 사려면 우선 독어로 뭐라고 하나 찾고, 어떤 가게에서 파는지 알아봐야 한다. 가게에 가도 진열 방식이 낯설어서 한참 두리번거리다 결국 직원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봤다.


늘 긴장해서 그런지 자주 체하고 두통과 구토로 고생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체했다는 개념이 없다. 위염약, 두통약, 장염을 먹으라고 했다. 모두를 한 방에 날려주는 가스 활명수가 그리웠다.     


그렇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았다.

여권은 무사히 재발급받았다. 은행 업무도 잘 해결되었다. 네 번째로 찾아 간 은행에서 친절한 직원을 만났는데 그녀는 필요한 계좌가 뭔지 어눌한 영어를 듣고 단박에 이해하고 예약을 잡아줬다. 그리고 며칠 뒤 비자요건에 맞는 계좌를 개설해 주었다. 다른 직원들은 왜 안 된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일사천리였다.


'케바케'.  Case by Case의 줄임말로 독일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독일에서는 비슷한 경우라도 담당자가 다르거나, 같은 담당자라도 다른 날 시도하면 결과가 달라진다. 독일 사람은 정확히 규정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와 전혀 다른 말이라 설마 했는데.         


베를린 변기들은 여전히 높다. 하지만 집에서는 상관없다. 발판을 놓고 썼더니 문제가 사라졌다.

지하철은 여전히 덜컹거리고 손잡이도 높지만 이제는 어디 서면 편안한지 알고 냄새는 익숙해져 역하지 않다.

긴급 상황은 112 혹은 110. 한국과 같다.

여전히 낯선 것 천지지만 익숙해진 것도 제법 있어 이젠 살만하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게 겁나기도 한다. 아, 좀 괜찮다 하면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기곤 하니까. 크던 작던 문제를 간과해선 안 된다. 그랬다가는 생각도 못했던 일로 큰 불편이 생기고 체류허가를 못 받고 쫓겨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서류 처리가 서툴렀는데 서류가 훨씬 많은 이곳에서 모든 걸 혼자 하려니 아주 괴롭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낯선 방식으로 제기되는 문제를 혼자 해결하며 누리게 된 혜택도 있다.

일상을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고 부지런해졌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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