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부모 + 내 부모의 집합은 과연 행복일까, 불행일까?
'그냥 누나가 무시해, 그리고 이해해.' 2년 동안 남편에게 들었던 이야기들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문장이다. 물론 남편이 앞으로 거론할 이야기들의 해결에 힘을 아예 안 썼느냐? 또 그건 아니다. 그도 그 나름대로 사랑하는 부모님에게 쓴소리를 뱉기도 했고, 중재하기 위해 바락바락 맞섰던 적이 있다. 여러 번 쓰려다 못 쓴 주제, 바로 '고부 갈등'이었다. 지금 내가 살아오는 시대는 전형적인 KBS1에 나오는 환장할 정도로 다복다복한 8-90년대식의 가족 형태와 현재의, 다분히 현실적이고 독립적인 가족의 형태가 양면의 날처럼 대립하며 살아간다. 결혼하기 전에는 살짝 귀띔으로도 듣고, 또 몇 번 목격하기도 했지만 무심히 지나갔던 나의 '시가'가 결혼한 나에게는 어느새 이해하기 힘든, 또는 너무 낯선 하나의 집합체로 다가왔었다.
시가에 가거나, 시부모와 함께 맛있는 음식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꽤 평범하고 그럴싸한 관계를 유지 중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모종의 시간이 걸리긴 했다. 당연히 내 부모와 다른 부모의 결이 다르다는 건 어느 정도 인지를 했지만, 막상 내 가족이 되니 거기에서 오는 인지부조화가 상당했다. 아니 왜 그러시지.. 아니 왜 갑자기...라는 이야기가 나올만한 일들이 몇몇 있었다. 약속되지 않은 만남, 의사소통의 오해, 가끔 툭툭 소견 없이 뱉는 무의미의 문장들도 곱씹어보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성질을 가리고 그 모든 상황을 품으려고 할 때, 쌓아 올렸던 벽돌들이 내 성질에 차마 못 이기고 다 무너져 내려서 폭발할 때도 있었다. 남편의 중재 방법 역시 가끔 답답하기 일쑤였다. 직접 물어본다거나 맛대맛으로 간다기엔 너무 부족한 그만의 소통 방법이 소화가 되지 않은 채로 끝나거나, 혹은 과열되어 서로 간의 오해가 더 생기기도 했다. 나 또한 내 성미를 가리고 '예~' 아님 '네~'만 내뱉었다. 아마 이 4명의 오합지졸적인 충돌이 모든 오해의 복합적인 화근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결혼을 하고 3년의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우리는 따로 베이비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딩크냐? 또 그것도 아니다. 책임지고 모든 걸 다 퍼부어줄 수 있을 때 귀여운 아이를 세상과 만나게 해주고 싶다. 시가와의 대화 중엔 이게 또 마음에 걸리시는지 얼마 전엔 무슨 이슈가 거론될 때마다 '젊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제 나에겐 두 가지의 질문이 생겼다. 내가 만든 가정을 끌고 갈 것인지, 아니면 이젠 새 생명을 바로 잉태라도 해줄 젊은 엄마를 그의 가족들에게 직접 주선해 줄 건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물론 후자는 너무 극단적이긴 하지... 2년의 시간을 쓱 내려보내며 이렇게 사는 건 고문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피하고, 밀어내고, 못 본 척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건 내 부모가 나를 낳아 기르면서 근본적으로 심어준 사상과는 또 다르기 때문일지도.
처음으론 항상 네 네하고 인형처럼 말을 아끼는 캐릭터가 아님을, 뭐 웃길 땐 웃기고, 농담도 많이 뱉고, 진중하며, 실수도 하는 그런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조금씩 공유해 가는 중이다. 잘한 짓은 아니지만, 답답할 땐 울기도 하고 울면서 떼를 쓰기도 했다. 나의 시모는 혼자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나갔다. 아마 내가 상상도 못 할 인생사들을 혼자의 몸으로 견뎌냈겠지. 그런 시모가 나를 데리고 큰집이나 작은 집에 갈 때 내가 느꼈던 것들, 그리고 가족 행사 자리에서 시부의 가족들이 시모에게 행했던 행동들이 시간이 지나 나에겐 되게 불쾌하게 느껴졌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녀에게 낮은 대우의 손짓과 언행을 하거나 함부로 하는 듯한 제스처에 짜증과 동시에 염증을 느꼈다. (그들에게 행하는 부조리한 대우가 나한테까지 전달되기 때문도 있다.) 그 일 이후, 나는 그녀(시모)에게 호기심을 더 느끼게 됐다. 엄마를 끼고 만나는 자리에서 사교성 좋은 엄마는 시모가 아이를 낳았을 때의 고통에 큰 공감을 하며 엄마들만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풍부하고 긴 대화는 아니었지만, 같은 여성으로서의 진솔한 이야기들과 어떠한 연대가 오갔다.
시모와 갤러리에도 가고, 대형 서점에 가서 읽기 쉽고 좋은 책들을 보고, 같이 읽고, 또 내가 가본 곳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하며 만남의 장을 넓혀가려고 한다. 남편은 에둘러서 같이 그런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근본적인 부분이 바뀔 사람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맞을지도 모르지. 그런 시간을 같이 보낸다고 해도 그게 친분과 친화력의 촉매제가 되리라는 희망사항은 어느 정도 내려놓은 상태이다. 사람 바이 사람 아닐까, 단지 그녀가 궁금하다. 어떤 색깔을 좋아하고, 어떤 그림을 좋아하며, 어떤 공간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좋아하는 냄새나 순간은 어떤 건지. 왜냐면 나는 우리 엄마와 아빠가 뭘 좋아하는지 다 알겠거든. 내 부모와 같이 늙어갈 나의 또 다른 윗사람이며 부모기에 똑같이 궁금하다. 30년을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며 서로를 알게 된 부모 자식 관계와는 다르게 시가와는 그런 모종의 과정은 모두 끊어진 채로 만나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 더 싸울 수도 있고, 화해할 수도 있고, 또 같이 웃을 수도 있겠지. 그 과정을 밟기 위해 나의 시모, aka 올리브 여사에게 먼저 품는 궁금증과 호기심은 날로만 커져간다. (어쩌면 내가 징글징글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날이 따뜻해지면 그 궁금증을 한 스텝, 한 스텝 조금씩 해소하기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