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스페셜한 여행기
아무 계획도 없이 훌쩍 떠난 건 아니었지만, 막상 와보니 모든 게 새롭고 낯설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가장으로서, 교사로서, 신앙인으로서 낯선 땅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조금씩 의미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 여정의 단상을 되짚어보며 가끔은 미소지어 보고픈 이야기입니다.
‘그냥 그런’ 해외생활기가 아닌 저만의 ‘나름 스페셜한 여행기’가 되기를 바라며.
#4.
비행기에 앉고 탑승 시간이 끝나가는데, 내 옆 좌석은 계속 비어 있었다.
아! 순박한 청년! 그가 오지 않고 있었다.
왜 안 오지? 길을 잃었나? 연락해봐야 하나? 너무 오버인가?
안 오면 출발할 거고, 그럼 수화물만 베트남으로 올 텐데…
내가 대신 수화물을 찾아서 어디에라도 맡겨놔야 하나?
무슨 상관이야, 남인데.
… 아니지! 그는 내 위탁 수화물을 해결해 준 고마운 내 동행자라고!
통로로 들어오는 승객들의 얼굴을 나도 모르게 하나하나 뜯어보며 마음을 정리할 때쯤,
제일 뒤편에서 걸어 들어오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꽤나 긴장한 표정이던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안심했다. 나도 안심이다. 셔틀트레인을 못 찾아 길을 헤매고 있었단다. 놓칠까 봐 걱정하며 뛰어왔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소리 죽여 물어봤다.
“저 죄송한데… 제가 몰라서 그러는데, 핸드폰 비행기모드를 켜야 하나요…?”
아아 그렇다!
캐리어에 붙은 수많은 스티커가 뿜어내던 여행자 포스와는 달리, 비행기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역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선 안 된다.
나는 친절하게 답변해 주었다.
“아, 그건 말이죠.
휴대폰은 반드시 꺼야 하고요,
신발도 벗고 왔죠? 아이고, 신고 들어왔네. 얼른 벗어요…”
……라고 장난쳐볼걸. 아, 아깝다.
#5.
그는 백 씨 성의 대학생인데, 베트남에서 20년 넘게 산 외삼촌의 초대로 호치민을 가게 됐다고 했다.
조카가 무슨 국제학교에 다닌단다. 나는 호치민에 있는 학교로 발령받아 간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조카가 우리 학교 초등학생이었다.
우리 학교는 유초중고가 다 모여 있는 큰 학교인데, 내 교실도 초등학교 건물에 있다.
우리 아들도 그 학교에 다닐 것이다.
그 조카의 이름을 받았다.
자기 조카를 잘 부탁한다고 했다.
역시 순박한 청년.
청년의 어머니와 외삼촌은 손 씨 성을 가졌다. 우리 아내도 손 씨다.
대한민국 손 씨가 얼마 없지 않나?
청년도 어쩐지 우리 아내가 낯이 익었다며 너스레를 떤다.
이 청년의 조카도 당연히 손 씨 성을 가졌다.
참고로 내가 가는 학교의 교장선생님도 손 씨였다.
그분의 아들도 물론 손 씨일 테다.
손 씨는 다 같이 가깝고 먼 친척 관계 아닌가.
아니 손 씨가 이렇게 많을 일인가?
그리고 세상이 이렇게 좁을 일인가?
손 씨를 학교에서 만나면 간식이라도 주고 잘해줘야겠다.
내 동행인의 조카 아니면 교장님 아들, 아니면 아내의 친척이지 않겠는가.
아무튼 간에, 작은 인연이라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