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스페셜한 여행기
아무 계획도 없이 훌쩍 떠난 건 아니었지만, 막상 와보니 모든 게 새롭고 낯설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가장으로서, 교사로서, 신앙인으로서 낯선 땅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조금씩 의미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 여정의 단상을 되짚어보며 가끔은 미소지어 보고픈 이야기입니다.
‘그냥 그런’ 해외생활기가 아닌 저만의 ‘나름 스페셜한 여행기’가 되기를 바라며.
#1. 2024.2.16. 11:30
이륙한 지 30분이 지났다. 아직 다섯 시간을 더 가야 한다. 여러 나라를 가봤지만 베트남은 처음이다. 태국을 중3 때 가족여행으로 가봤으니 동남아 가본지도 벌써 20년이 지났고, 해외 출국도 신혼여행 이후로 근 10년 만이다.
비엣젯 항공을 탔다. 박스와 큰 캐리어가방을 위탁으로 보내기로 하고 백팩과 노트북 가방엔 짐을 꾹꾹 눌러 담았다. 위탁수화물은 기본 20kg에 추가 20kg였는데 공항에 있는 전자 저울에 무게를 재보니 41.5kg나 되었다. 이대로면 초과분에 대한 비용을 몇만 원이나 더 지불해야 했다. 짐을 최대한 빼서 더 뺄 것도 없었다.
#2.
절체절명의 순간에 아내가 기지를 발휘했다. 그녀가 잔머리를 위잉 하고 가동하더니 약 4.5초 만에 아이디어를 떠올렸는데- 다른 사람과 동행하면 무게를 합산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화물 대기줄에서 노심초사하던 우리는 바로 앞에 있던 젊은 남성을 발견했다. 그는 젊었고 짐은 캐리어 하나뿐이었으며 캐리어엔 수화물 라벨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필시 여행자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동행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의 시크한 외모에 순간 긴장했지만 그는 이미지와 다르게 순박한 청년이었다. 웃으며 알겠다고 해준 것이다. 그의 캐리어는 18kg였고 나는 41.5kg여서 무사히 수화물을 부쳤다. 우리 둘 다 지정좌석이 아니었기에 서로 옆좌석으로 배정되었고 내가 수화물 대표자로 연락처를 남겼으므로 그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동행하자는 한 마디로 돈 몇 만 원을 절약하고 다섯 시간 넘는 비행의 대화 상대를 얻은 셈이다. 우리는 그에게 감사의 표시로 잠바주스를 샀다. 고마워요, 순박한 청년.
#3.
공항까지 동행해 주신 부모님과 아내와 아들들과 밥과 음료를 먹고 출국 심사대 입구에서 헤어졌다. 아버지 어머니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나이가 많이 드셨다. 다시 뵐 때 얼마나 더 나이 드실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 주까지 못 보는 아들들도 한 명씩 안아주었다. 엄마 말 잘 듣고 동생 잘 챙겨야 돼. 큰애가 네 하더니 울며 제 엄마한테 가서 안겼다. 이제 이별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다음 주에 볼 건데.(이날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혹시 집에 뭔 일 있으시냐. 준이가 친구한테 자기 이제 아빠 없다고 했다고…응?)
둘째는 평소와 같은 장난기 없이 시무룩하게 안겼다.
엄마랑 형아 말 잘 들어야 돼
…(침묵)
그럼 장난감 사줄 거야 알았지?
끄덕끄덕.
다섯 살쯤 되니 이제 분위기 파악을 좀 하는 것 같다. 처가댁 가족들과 동생, 직장 동료와 교회 식구 몇몇에게 인사 문자가 와서 답장을 했다. 이제는 떠나야 한다. 가족들과 손 흔들며 헤어지고 검사대로 들어갔다. 짐 검사에 시간이 꽤 걸렸다. 게이트까지 가려면 셔틀트레인을 타고 좀 더 가야 했다. 나는 뒤이어 올 아내를 위해 사진을 연신 찍어대며 이동했다. 비행기를 타러 게이트를 통과하니 공항 와이파이가 끊어졌다. 요금제를 바꿔 데이터를 차단해 놨기 때문에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이제, 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