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룩스 이야기-14]
감사
시아
그럴 일이 있어야 하지! 없어! 없다고!
오만상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기 일쑤다. 실은 ‘그럴 일’이라는 것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당신도 알고 나도 안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다리다 보면 지친다. 다만 기다려야 할까? ‘그럴 일’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유분수다. 감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듯 하면 될까? 잔뜩 구겨진 기분으로 투덜대며 기다리는 것은 어떤가? 기다림은 벼르고 벼르는 것이 아니다. 기다림이란 원하는 것을 품고 그 대상을 향해 다소곳이 마음을 내주는 것이다. 불안, 초조, 긴장 일색으로 분초를 다투면서 그럴 일을 바라고 있다가 보면 알게 된다. 그럴 일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도대체 그럴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정반대의 꼬락서니로 치닫고 있다며 울상인 경우도 있다. 모든 불행이 숨죽여있다가 한꺼번에 닥쳐온다면? 정신 차리지 못할 지경일 것이다. 태연하고 침착하게 대처하라고? 당신이나 그래 보시지? 이런 일을 안 당해서 그렇게 쉬운 말이 나오지!
이것의 정반대라면, 무수한 일들이 떠오를 수 있다. 낙담, 실의, 좌절, 상처, 배신 같은 단어들이 순식간에 둥둥 떠오른다. 불안하기 그지없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한테 익숙한 단어들 말이다. 그러니, 이것을 입 밖에 내면 미친 사람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이미 미친 세상에서 미쳤다면, 정상이 아닐까? 이런 논리를 은근슬쩍 내밀어 보다가 냅다 지르는 새된 소리를 듣는다.
“정신 차려! 지금, 이 말이 나와?”
이것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혹은 비정상이다는 갑론을박이 일어나는 통에 이것은 세상에서 부유하기만 한다. 정착하지 못하는 신세가 이것의 원래 운명은 아니다. 현대인들은 너무나 약삭빨라서 약게 놀기 마련이다. 이것을 갖다 써도 되나? 안 되나? 쓰면 좋냐? 아니냐? 머리를 굴리고 계산기를 두드릴수록 이것은 멀어진다. 뭐, 멀어져도 된다고 겁을 내던지고 큰소리치는 이들도 있겠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이것을 적어도 2주일 동안 전혀 하지 않거나 오히려 튕겨내면-‘튕겨낸다’는 것은 정반대의 것인데, 위에서 예를 든 낙담, 실의 등등이다- 아프게 된다. 몸도 마음도 골골거려서 불면의 밤을 보내게 된다. 웃을 일도 없고, 살아갈 의미도 없고, 의욕도 없어진다. 하도 지쳐서 견딜 수 없어 주위의 권유로 심리검사를 하면,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우울장애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현장에서 겪는 훈장처럼 스트레스를 달고 다닌다. 인터넷으로 치면 쿠키(cookie)처럼 말이다. 때로는 검색에 유용하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쿠키가 달리면 인터넷 처리 속도가 느려지듯이 스트레스도 그러하다. 어느 정도의 긴장과 압박감이 늘어진 마음을 탄력 있게 단련하기도 해서 유스트레스(eustress)라고 부르며 삶의 활력이 된다. 그 정도가 심하거나 불쾌한 일이 동반되면서 억압이 심하게 작용하면 디스트레스(distress)상태가 되어 정신건강의 적신호가 된다. 너무나 쉽고 간편하게 이 스트레스 정도를 파악하는 방법이 있다. 과감하게 비결을 공개하고자 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것을 소리 내거나 혹은 마음속으로 발음해보면 된다.
뭐라고? 정신이 있어 없어? 이 말이 지금 얼마나 나한테 모욕적인 줄 알아? 집어치워!
이 정도면, 스트레스 수치는 과도하게 높다. 당장이라도 휴식과 정신건강을 위한 적극적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참, 이런 마당에 이 말이 나오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그렇지만, 뭐, 어쩌겠어. 잘 해결될 거라고 믿고 나가야지. 그럴 일이 있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이 경우에도 스트레스는 다소 높은 편이다. 앞의 치명적인 경우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휴식과 정신적 안정이 필요하다.
아, 오랫동안 이 말을 잊고 있었어. 이제부터라도 이 말을 품어야겠어!
이렇게 여겨진다면, 스트레스를 통제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순간 그렇게 다짐한 것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실제로 행한다면, 얼마가지 않아서 이것이 가까이 다가오는 낌새를 느끼게 될 것이다.
아! 정말 그렇구나! 맞아. 참으로 그러해!
고개를 끄덕이거나 차오르는 벅찬 느낌이 있다면, 축하드린다. 더할 나위 없이 잘살고 있다는 증거다.
이 쉬운 방법을 써먹거나, 써먹지 않거나는 온전히 당신의 자유다. 놀라운 것은 ‘그럴 일’이 없어도 이것을 하게 되면, ‘이럴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오래도록 품고 있으면, 이뤄질 수밖에 없다. 하늘이 돕고 땅도 돕는다. ‘품는 것’은 마치 어미 닭이 알을 품듯이 지극정성으로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며 행하는 것을 뜻한다. 달걀이 부화할 때 알 속에서 ‘줄’소리가 날 때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알 밖에서 ‘탁’하는 소리로 쪼아주게 되고 그럴 때, 세상의 모든 기운이 병아리를 끌어내듯이 이럴 일이 일어나게 된다. 줄탁통시(啐啄同時)의 때에 이르러 마침내 이것이 환하게 지펴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연구결과도 있다. 2008년 11월 26일, 미국 의학논문을 소개하는 사이트 유레칼러트와 온라인 과학 뉴스 사이언스데일리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 켄트 스테이트 대학의 가족-소비학과 스티븐 토퍼 박사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삶에 강한 영향을 준 사람에게 이것을 주제로 2주에 한 통씩 편지를 쓰게 했다. 총 6주 과정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행복감과 만족감을 가졌다고 한다. 토퍼 박사는 이것에 대한 편지쓰기가 우울증 감소, 면역력 향상으로 건강을 증진하고 성적 향상의 효과도 가져왔다고 밝혔다.
이것은 사실 일상에서 늘, 날마다, 숨 쉴 때마다 해야 효과가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그럴 일이 없다는 대도!!! 그렇게 핏대를 올릴 일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그럴 일이 있을 때를 기다렸다가 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그냥, 정신건강 따위는 쓰레기통 속에 처박아버리겠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며 방황하는 십 대 청소년처럼 하이빔을 켜고 있는 대로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싶은가? 그러겠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으니 말이다.
그런 삶보다 현명하게 살기 위한다면, 해야 할 일이 있다. ‘부정에도’ 이것을 행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소리 작작 좀 해라고 어디선가 고함이 들려오는 듯하지만, 이 말은 사실이다. 혹자는 이것 또한 압박이라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교회에서는 고난에도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을 가르치지만, 기독교인의 46%는 고난 가운데 감사한 적이 없으며, 개신교인의 4명 중 1명은 평소에 아예 감사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2021년 목회데이터연구소 주간리포트 <넘버즈> 제119호의 발표도 있다. 평소에도 잘 하지 않는데 부정적인 상황에서 이것을 하라니!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종교인이라고 무조건 이걸 해야 한다는 게 어디 있냐고 따지려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부정에도 하라는 말은 안 좋은 일을 당했지만, 이 정도에 멈추어서 더 이상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니까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대로, 부정 또한 주신대로, 있는 그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뜻을 일컫는 ‘섭리’대로 내맡기는 것이다. 내 의지대로 내 뜻대로가 아니라 신의 뜻대로 하도록 적극적으로 주인공 자리를 내놓는 것이다. 잔뜩 짊어졌던 고민과 갈등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진정으로 내려놓는 것이다. 부정에도 이것을 한다면, 정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굳이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의 집념은 강력한 에너지를 끌어들이기 마련이다. 부정에도 이것을 행할 때, 그런 기적을 직접 행할 때-부정의 상황에서 이것을 하는 것은 극복이고 섭리에 대한 적극적 수용이다. 그 극복의 기적과 적극적 수용을 수행하는 것은 이것을 선택했을 때 비로소 해낼 수 있다-, 부정의 뿌리는 저절로 뽑혀나가고 그곳에 튼실한 나무의 싹이 자리 잡게 된다.
그러니,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아름다운 선택임이 분명하다. 매번 이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것대로 되리라. 뿌린 대로 거두는 이치대로. 이것은 이것이 되지 않을 때 하면, 억지로가 아니라 영혼을 바쳐 눈물겹게 하면, 이것이 이뤄지는 놀라운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럴 때, 삶은 이 기운으로 충만하게 된다.
*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 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 예술과 문화, 에세이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