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슬기로울 승무원생활 (1)

by 초이

때는 대학 졸업이 몇 달 지나지 않은 2015년도였다. 나는 마지막 학기 동안 인턴십을 했던 브랜드 매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학생비자는 만료가 됐다. 그 몇 달 사이 내 타이틀은 뉴질랜드 유학생에서 외노자로 바뀌었고, 유효기간 1년 워크비자를 받아 일 하는 중이었다. 대학에선 마케팅과 식음료를 복수 전공했다. 전공을 살렸다기도 그렇다고 관련 없다 하기도 애매했다. 일주일 이틀은 백오피스에서 마케팅 관련 업무를 봤고 나머지 삼일은 매장에 나와 일했다. 큰 불만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나는 안정권에 들어서면 부작용처럼 나타나는 권태로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반년쯤 더 지나자, 나는 뉴질랜드 생활 자체가 지겹기 시작했다. 우물 속 개구리처럼 우물 밖으로만 나가고 싶었다.


한가로운 평일 오전, 백화점에 입점해 있던 우리 매장에 익숙한 얼굴이 찾아왔다. 같은 학교, 같은 과를 졸업한 한국인 언니었다. 간단히 안부를 물으며 본인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중동항공사에서 1년 정도 승무원으로 일하고 왔다고 했다. 향수병이 너무 심해 관두고 돌아왔지만 정말 좋은 직업이라며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다 대뜸 내게 물었다.


"지수야, 너 승무원 관심 없어? 잘 어울리는데. 한 번 생각해 봐."


십분 남짓 이야기를 하다 언니는 홀연히 자리를 떴다. 승무원이라. 고등학교 시절 잠깐 생각한 적은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승무원은 나와 거리가 참 멀었다. 머릿속에 흰 피부에, 단아한 이미지의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스쳐 지나갔다. '무슨 승무원이야'하고 생각을 돌리는데 언니가 근무했다는 항공사가 궁금해졌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핸드폰으로 '카타르 항공'을 검색했다. 중동 항공사이고 여러 이유로 현지인력보다는 외국인을 채용한다는 것, 각 나라를 돌며 현장에서 공개 모집을 하는 '오픈 데이' 채용 시스템이 있다는 것, 그리고 조만간 뉴질랜드에도 오픈데이가 열린다는 정보까지 단숨에 습득했다.


약 한 달 후, 6월 20일.

단정한 정장차림, 한 손에는 이력서와 사진이 담긴 폴더를 든 채 나는 오클랜드 소재의 한 호텔로 들어갔다. 300명은 족히 들어가고도 남을 큰 컨퍼런스 룸이었다. 일찍 도착했음에도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첫 번째 단계는 'CV DROP'이었다. 본인이 가져온 이력서를 제출하고 간단한 질문 몇 가지에 답하는 형식이었다. 컨퍼런스룸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섰고, 나도 중간쯤 서게 되었다. 이 단계에선 바로 합, 불합이 결정되었다. 통과된 사람은 컨퍼런스룸에,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그대로 집에 가는 식이었다. 내 순서가 왔다. 긴장해 아픈 배를 다독이며 이력서를 제출했다. 면접관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물어왔고 내 답을 들으며 이력서를 확인했다.


"답 고마워. 들어가서 기다려줘."


1단계 통과였다. 전혀 가시지 않은 긴장감에 배가 계속 아팠다. 삼십분가량 기다렸을까. 입구에 있던 면접관들이 들어오고 문이 닫혔다. 회사 소개 영상과 함께 짤막한 프레젠테이션이 이어졌다. 이후에는 영어 시험을 본다고 했다. 간단한 독해 문제부터, 시차계산, 빈칸 채우기 등의 문제와 에세이 한 편을 작성해야 했다. 에세이 주제는 'Tell me about when y ou were taking a part in an unsuccessful team‘ 결과가 성공적이지 않았던 팀에서의 경험을 묻는 주제였다.. 어찌어찌 시험을 마무리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모이라는 공지를 들었다. 그 사이 시험 점수를 매긴건지, 통과한 사람들 이름을 호명했다. 내 이름도 불렸다. 무사히 2단계까지 통과한 것이었다.


열댓 명이 추가로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단계는 암리치 측정이었다. 손을 뻗어 212cm에 닿는지 확인하는 거였다. 키가 큰 내게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몇 명 참가자들이 측정 전 스트레칭을 하더니 가까스로 통과 혹은 안타깝게 탈락했다. 남은 인원들은 다시 한 명씩 불려 갔다. 1분 랜덤 단어 스피치가 다음 관문이었다. 내가 뽑은 단어는 승객, 'passenger'였 다. 면접을 준비하며 나름 생각해 두고 연습했던 답변들과 연관 짓기가 쉬었다. '승무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승객의 안전이다'라는 내용을 담아 이야기했다.


여기까지 왔을 때 남은 인원은 8명이었다. 우리는 다시 처음 모였던 컨퍼런스룸에 둘러앉게 되었다. 회사에 관한 또 다른 영상과 프레젠테이션을 봤고 카타르 항공의 복지와 혜택 등 다양한 정보가 오갔다. '이렇게 끝인가? 나는 합격한 건가?라는 생각을 하던 중 파이널 인터뷰가 남았다고 했다. 파이널 인터뷰를 본 후 3-4주 내로 최종 결과를 통보해 준다고 했다. 한 명씩 컨퍼런스룸 옆방으로 불려 갔고 나는 세 번째로 들어갔다. 약 10분간 진행된 파이널에서는 도하에서 살게 되면 어떤 게 가장 힘들 것 같은지,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현재 직장 상사가 널 어떻게 평가할 거라 예상하는지, 몸에 흉터가 있는지 등등 꽤 많은 질문이 오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 승무원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인데 답하기 어렵다고 느꼈던 질문이었다. '여행이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와 같은 1차원적인 이유보다는 진짜 나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깊은 고민 끝에 찾은 답변을 준비한 대로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내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직업을 찾고 싶었어. 내가 쌓은 경험과 지식을 사용하면서도 일터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야. 나는 어릴 때부터 여러 나라를 오가며 생활했어, 덕분에 다양한 문화, 언어를 경험하고 습득할 수 있었지. 동시에 내가 다양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봤는데, 일을 하며 나는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을 좋아하는구나 깨달았어. 서비스는 누군가에게 제공되면 그에 따른 피드백을 바로 알 수 있잖아. 손님들은 서비스에 만족하면 표정, 말투, 제스처로 표현을 해주니깐. 나는 그래서 일하면서 동시에 내 노동이 바로 보상받는다 고 느낄 수 있었거든. 그래서 이 두 가지가 충족되는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어"


면접관은 큰 표정의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내가 방을 나서기 전, 이 말을 덧붙였다.


"지수, 지금 네 모습은 있는 그대로 너무 아름다워. 그런데 만약 이번 인터뷰까지 합격해서 도하에 오게 되면 치아 화이트닝 꼭 하고 와. 굳럭! "


솔직한 피드백 고맙다고 유쾌하게 웃으며 방을 나왔다.


그런 순간이 있다. 내 몸의 모든 세포들이 시그널을 보내는 순간.

지금까지 경험하며 내 몸속에 쌓인 데이터와 직감이 보내는 신호. 그 순간이 그랬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확신했다.


“나 카타르 가서 살게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