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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균 Jul 09. 2023

범죄도시는 언제까지 나올 것인가

그래도 재밌으니까, 범죄도시


범죄도시. 군대에서 10번은 본 거 같아 이젠 대사까지 다 외워버린 영화입니다. 17년도에 1편이 나왔고 청불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성인은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높은 인기를 끌어 저번달에 개봉한 3는 1000만 관객을 돌파할 정도로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작품이죠. 사실 전 2를 보고 약간 실망하여 3는 보러 가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흘러가는 콘텐츠 시장의 양상과 함께 같이 얘기해 보면 좋을 거 같아 영화를 보지도 않고 이런 글을 쓰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실 전 범죄도시가 1000만을 찍을 줄 몰랐습니다. 범죄도시 1이 부패 형사와 순수 악 조선족의 두뇌싸움과 현실성 있는 액션 씬을 다룬 것에 비해 2는 헐크가 된 마동석을 보는 느낌밖에 안 들었거든요. 3의 후기를 찾아봐도 '뻔하지만 재미는 있음'밖에 없는 글을 보고 시장의 흐름을 분석하기 보단 트랜스포머 시리즈로 단련된 저의 감각을 믿었으나,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것을 보고 안일했던 저의 생각을 반성하며 관련 도서와 정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연관 도서 중, 이나다 도요시의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 꽤 괜찮은 인사이트를 많이 제공하고 있으니 관심이 있으시면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콘텐츠 공급 과잉의 시대입니다. 달에 오천 원 정도만 결제하면 수천, 수만 개의 영상 제작물을 소파에 누워 편안히 볼 수 있고, 유튜브에는 1분마다 500시간에 달하는 영상이 올라올 만큼 볼 게 넘쳐나는 시대죠. 하지만 바쁜 현대인에게 이 모든 콘텐츠를 볼 시간은 없습니다. 시간의 가성비를 따지기 시작하죠.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고를 때도 과연 이 영화가 내 황금 같은 금요일 저녁 2시간과 바꿀만한 가치가 있을지 1시간을 고민하다 결국 유튜브 쇼츠를 보면서 잠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시간의 가성비를 따지며 배속재생과 10초 건너뛰기 버튼을 쓰다 보니, 전 이제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도파민 체계가 영화관을 제외하곤 발동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감독의 완급조절이 미안하지만 점점 버티기 힘들어져요. 대사 간의 공백과 등장인물의 눈빛, 행동 등 감독이 의도한 장면을 온전히 즐기기보단 19금 영화의 베드신만 찾아보는 것처럼 자극적인 장면만 찾아보게 됩니다. '더 글로리'도 그랬고 얼마 전 나왔던 애니메이션인 '체인쏘맨'도 감독에겐 미안하지만 절반 정도의 장면은 넘기면서 봤습니다. 마치 모든 영상 제작물을 보는 목적이 19금 영화를 보는 목적과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감상'하기보단, '소비'의 형태가 강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시대의 흐름이 이러니 업계도 이를 인지하고 10초 넘기기와 배속재생에 손가락이 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짧고 급격한 사건의 흐름을 넣는 콘텐츠가 많아졌습니다. 얼마 전 '최애의 아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전 1화 만에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인물 3명이 죽는 애니메이션을 처음 봤습니다. 사건의 흐름이 너무 급격하게 진행돼 10초 넘기기를 클릭할 생각도 못 하고 멍 때리며 한 시간을 봤습니다. 솔직히 말해 다른 작품성이 있다고 말한 영화들보다 재밌었어요. 감독이 배치한 복선과 메타포를 추측해가며 보는 것보다 뇌 빼고 보는 듯한 느낌이 제 망가진 도파민 체계에 더 잘 맞았던 거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보니 범죄도시3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일단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는 재미와 은유, 감독의 의도같이 생각해야 하는 거 없이 그냥 웃기만 하면 되는 영화로서 오락영화의 본질은 200% 달성했다 봅니다. 딱히 영화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유튜브만 봐도 이 흐름은 명확합니다. 책이나 나무위키에서 그럴듯한 지식을 주워 담아 5분 정도 되는 짧은 길이로 비약적인 논리 구조를 들어 설명하면 시청자는 왠지 똑똑해지고 지식이 많아지는 듯한 느낌이 드니 구독자 수준을 넘어 광신도가 됩니다. 그때부터 채널 운영자의 말을 필터 없이 듣게 되고,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듣게 되는 폐쇄적인 커뮤니티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됩니다. 직접 고민하고 논리구조를 의심하기보단 자신이 원하는 답이 바로 앞에 있으니 거기에 중독되는 것이지요. 


앞으로 영상업계가 어떤 양상으로 변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19세기 말 영상이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던 전유물에서, TV가 보급되며 장소적 제약으로부터 해방되고, 80년대에 DVD가 등장하며 시간적 제약의 해방, 2000년대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물리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지금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 기능의 추가로 시간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이 한 번 더 진행되었는데, 앞으로는 어떤 종류로부터의 해방이 이루어질지 기대되기도 하면서도 무섭기도 합니다. 정말 과거의 명작이라고 불리던 영화들이 영영 나오지 않는 건 아닐지, 아니면 몇십 년이 지나면 아예 영화관에서조차 배속 영화를 상영해 줄지. 미래가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누가 제 망가진 도파민 체계를 고쳐주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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