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던하기를. 멋쟁이이기를." - 박완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은 꽤 어린 시절부터 저에게 꾸준하게 제기되어 왔던 질문 중 하나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질문을 자발적으로 던졌던 경험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물어봐주는 때에야 그 답을 고민해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 학창 시절의 선생님들이 과제와 훈육의 형태를 빌려 던진 질문 중 하나였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그런 것 같더군요. 나름대로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한 면도 많았던 저라고 생각했는데, 당연히 저런 어려운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져봤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 나이에 걸맞은 철 없는 시간들도 제법 많이 보내왔었네요.
어린 시절의 저에게 과제로 제기되었던 질문이 어느새 스스로에게 제시하는 숙제로 바뀌고, 누군가 물어봐줘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대학교 입학 후 중앙도서관에 출입하던 시간이 그 계기이자 배경이었습니다. 명확한 '시점'은 아니지만, '기간'이 배경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법적인 나이로 '성인'이 되었고, 지성인이 되기 위한 첫 걸음으로서의 '대학생'이 된 저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그래야 하는 나이이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시기였습니다. 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중앙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서가에 정해진 규칙대로 나열되고 정리된 책들 사이에서 과거의 선인 또는 현인들이 던진 답들 중에 나에게 적합한 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해보려는 노력보다는 제가 생각한 '훌륭한 답'의 조건에 부합하는 문장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적인 허세에 취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부끄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도 문장을 수집하려고 하고, 제 삶의 경험을 토대로 글을 써보려는 노력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아무튼, 결과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답이 나오지 않더군요. 훌륭한 통찰력을 답은 답변들은 많았지만, 앞으로 제가 살아갈 삶을 관통하며 설명해줄 만한 문장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삶이 아닌 책 속에서만 답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 어리석었다는 생각을 교훈으로 쌓아가는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인생의 중간 중간, 희노애락이 교차하는 여러 경험들을 하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만 깨닫는 시간이 쌓여갔습니다.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그때마다 달라지는 것 같다는 것 정도로, 가르치고 싶은 게 분명한 역사 교사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좋아하는 취미를 오래도록 꾸준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답을 내리는 것을 대신하고는 했습니다. 어쩌면 그게 정답일 수 있습니다. 꼭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고민하며 답을 찾으려는 시간을 보내는 게 삶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는 어느 한 문장의 힘을 빌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완벽하게' 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만, 제가 처한 상황과 주어진 환경,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 사이에서의 갈등, 책임과 자유 사이의 괴리 등의 조건들이 되고 싶은 사람의 외형은 바꾸겠지만, 어느 정도는 뿌리와 기둥은 세워놓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답에 대한 부담을 살짝 내려 놓고 만난 박완서 선생님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중 한 문장은, '지금, 여기'의 제가 세워놓고 싶은 기둥을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통찰과 삶에 대한 사유의 깊이에 다다르기 어렵겠습니다만, 그 가까이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만이라도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해봅니다.
"커서 만일 부자가 되더라도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에 자기 생활을 조화시킬 양식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부자가 못 되더라도 검소한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되 인색하지는 않기를. 아는 것이 많되 아는 것이 코끝에 걸려 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무던하기를. 멋쟁이이기를."
-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15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