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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정 Jun 12. 2023

'간이역' 역사 교사가 사랑하는 문장들 #07

"손가락으로 가리키다." - 김소연

"허우적거림은 나의 자세를 헝클고 공기를 헝클지만, 나를 넘어지지 않게 하고 공기를 고여 있지 않게 합니다." - 김소연, <시옷의 세계> 中



허우적거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허우적거리다'는 제스처의 뉘앙스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을 들게 합니다. 그리고 하염 없이 비틀거리는 모습이 생사여탈의 문제에 놓인 사람의 움직임을 상상하게 합니다. 이는 물론 저만의 느낌, 생각이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제가 생각하는, 그런 '허우적거림'과는 거리가 먼 움직임으로 공기를 헝클며 살고 있습니다. 


춤을 추듯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살고 있다고 하면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될까요? 기쁘거나 슬프거나 행복하거나 지치거나 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몸'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고상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취향으로서의 예술의 영역을 넘어, 대중적인 관심과 열광으로 확장되는 시대입니다. 나의 기분이나 태도를 바깥으로 드러나는 것은 예의가 아닌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면에서 '마음의 눈'으로 가만히 지켜보는 가운데 정적이고 내밀하게만 이야기되어야만 했던 감정을 온몸으로도 표현하며 한껏 '허우적거려도 되는' 시대입니다.



시대가 허락하고 말고를 떠나 저는 요즘 학교에서, 일상에서 춤을 추듯 공기를 고여 있지 않게 하려고 살고 있습니다.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이야기를 듣고 나누며, 더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의 아름다운 평화가 주는 '가라앉음'의 미학을 싫어하지 않지만, 초여름의 햇살과 기온이 주는, 다가오는 계절에 대한 기대감에 취해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뻗으며 춤을 추듯이 삽니다.


아이들도 제 춤선을 보고 선생님의 내면과 일상에 어떤 변화가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나봅니다. 선생님, 요즘 눈빛도 낯빛도 뭔가 좀 달라보여요. 더 부드러워진 것 같아요. 뭔가 개운한 것처럼 보여요. 아이들이 전해주는, 저에 대한 관찰 일지를 듣고 있다보면, 가만히 중심만 지키고 앉아 있는 것만이 교직 생활의 평화를 지키는 일은 아니겠구나-하는 마음이 듭니다. 몸이 넘어지지 않는 선에서, 공기가 고여 있지 않도록 하는 선에서, 나를 잃지 않는 선에서 만큼은 감정에 솔직하고 기분에 취하기도 하는 춤을 이리저리 추면서 살고 싶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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