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떡이 내 기도를 막기 전까지는...
우린 누구나 한번 쯤은 어릴 때 공부 안했다가 혼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공부라는 것은 왜 해야할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교육 받았을까 궁금하다. 나는 선생님들과 부모님과 어른들이 일관되게 이렇게 얘기해왔다.
"공부해야 훌륭한 사람 되는거야."
중고등학교 들어가면 이렇게 바뀐다.
"공부해야 괜찮은 마누라랑 결혼할 수 있어."
대학교 가면 이렇게 바뀐다.
"취직해야지. 뭐 먹고 살래?"
너무 맞는 말 아닌가?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 결과 지금 대한민국이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한강의 기적과 자살률 1위의 타이틀을 동시에 가진 나라.
그냥 사춘기 소년의 푸념마냥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게 진짜 맞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줄 모르면 이 지옥불에 다같이 죽는 것이기 때문에 다 같이 살자고 질문하는 것이다.
그럼, 공부가 틀린걸까? 부모님이 틀린걸까? 내가 틀린걸까?
우린 비판하는 능력을 잃었다. 이걸 제대로 이해해야한다.
우리의 공부는 나의 생존이고 남들 밟는 용도다. 내가 밟지 못하면 밟힌다.
공부를 잘한다고 하는 것은 남들 잘 밟고 올라설 수 있는 것이고
공부를 못한다고 하는 것은 남들에게 잘 밟히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니, 내가 공부 못하면 부모님이 화내는 것이다. 아니 화가 나는 것이다.
남한테 밟히는 느낌 나니까...!
원래 공부는 그런 것이 아니다.
공부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더 명징하게 이해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게 한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게 한다.
삶의 고통을 무지하게 반복하지 않게 한다.
더 많은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준다.
그렇다. 공부는 아름다운 것이다. 공부는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숲속에서 물고기를 찾고 바다에서 소고기를 찾는 우매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다.
어쩌면 공부는, 우리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부모님 말씀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라고 한다.
우리는 떡 먹으려고만 들면, 떡주는 부모님의 노예가 되거나 운나쁘면 떡이 목에 걸린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우리는 떡이 목에 걸릴 수도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책임지는 법을 오히려 배워야한다.
부모님의 호의에 질식해서 죽을 수도 있는게 인생이라는 냉혹함을 깨닫는 공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바로 내가 그랬다. 부모님의 호의에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부모님이 주는 떡도 탐났다.
그렇게 죽지 않을정도로,
때로는 떡을 맛 볼 수 있다는 안도감에 숨막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살았다.
'공부 열심히 했으니까 앞으로 인생 나아지겠지... 제발...!'
그러다 떡이 목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엉뚱하게도 한 여자를 만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