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이 순간
나는 미국에서 7년 동안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다. 결혼기간 12년 중, 열정이 넘치는 극성 엄마로 7년간 두 아들만 열심히 바라보며 나의 모든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쏟아부었다. 쉬는 시간에도 육아공부로 채울 만큼 내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키우면 아이들을 바르고 건강하고 똑똑하게 ‘잘’ 키울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열정맘. 남에게 맡기기보다는 원리는 전략대로 무엇이든지 직접 해 내야 속이 후련하고 만족스러워하는 극성맘. 중간중간 나의 건강과 개인 일정을 위해 여러 도움의 손길이 있었지만 주양육자는 나였고, 아이 둘은 내가 다 키운 것이나 다름없다.
육아 번아웃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 나에게 찾아왔다. 아이 둘 다 학교 5일을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3시 반까지 가 있게 되어 규칙적인 나만의 시간이 조금 생겼을 때 찾아왔다. 그동안 악을 쓰며 버티고 있었던 건지,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번아웃이 찾아온 건지, 아니면 나이가 서른 후반이 되면서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해서인지, 둘 다인지 모르겠다.
내가 무슨 색 옷 입는 걸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디저트를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면 잘 웃는지, 내가 가고 싶었던 여행지는 어디였는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요즘. 약속 장소에 계속 늦게 도착하고, 주차장에서 차에 타 시동 거는 그 순간마저 버겁게 느껴지고, 누구보다 외향적인 성향을 가졌음에도 사람들을 전혀 마주하고 싶지 않고, 어떤 음식을 먹어도 아무런 맛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여행에 대해 이야기해도 전혀 기대감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아, 내가 내 삶에 전혀 기대를 하지 못하고 있구나. 내 삶에 대한 흥분감, 기대감, 설렘 같은 느낌이 없구나. 심지어 긴장감이나 두려움마저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적인 상태구나.
매일 내 눈앞에 닥친 집안일들과 아이들 학교와 하교 후의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라이드를 하다 보면 어느새 밤 12시가 되어 있고, 부랴부랴 씻고 잘 준비하고 누우면 1시가 되어 있으니, 조금만 더 늦게 잠들면 나는 또 4-5시간만 자고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일기장에 글 한자를 쓰고 싶어도 잠이나 자라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미국살이가 많이 고되고 무겁도 외롭다.
작년에 내가 계획했던 것들, 올해 내가 해내고 싶었던 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어차피 이렇게 애들 밥 먹이고, 치우고, 씻기고, 재우고, 빨래하고, 널고, 말리고, 정리하고, 운전하고 등 무한 반복적인 일들을 스스로 해내야 하는 상황이니 그 어떤 목표를 가져봤자 난 제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거니까. 내가 매 순간 희망을 가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신나게 만드는 노력조차 에너지 소모 같아.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나의 자유시간이 생기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자유시간이 생겨도 쉬지를 못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육아와 집안일을 잘 해내고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내 자유시간들 마저도 결국 아이들과 관련된 일에 쓰게 돼버렸다. 결국 온전히 나 혼자서 쉬는 시간은 몇 달 동안 없었던 것 같다. '쉼'과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아는데, 나는 나만의 시간이 생기면 나의 커리어를 찾는 일에 쓰고 싶었고, 나만의 것을 차곡차곡해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조급하기만 했다.
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 아이들도 살뜰하게 챙겨주고 싶고, 첫째를 챙기는 만큼 둘째도 잘해주고 싶고, 집안일도 미루지 않고 싶고, 커리어도 찾아가고 싶고, 자기 관리도 잘하고 싶은 이 욕심이 나를 이만큼 갉아먹었다. 결국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할 거야 라며 스스로에게 독설을 해봐도 그중 무엇을 내려놔야 하는지 조차 전혀 모르겠으니, 답이 없는 질문만 계속할 뿐.
이 매거진에는 내가 시도해 보고 도움이 되었던 육아 번아웃 극복 방법들을 나누려 한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7년간 미국에서 아들 둘을 직접 양육하며 여러 번 극복해 낸 경험을 통해 처음보다는 빠른 방법을 소개한다. 열정맘이라면 피할 수 없는 번아웃. 지쳐있는 엄마 아빠들에게 모두 잘 극복해서 다시 밝은 기운이 넘치는 부모님으로 돌아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