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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헤더 Oct 20. 2024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은 곰 한 마리

곧 소멸되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는 슈퍼 E맘.  누가 봐도 외향적이고, 사교적이고, 사람들 틈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사람.  꾸준히 사람 만날 약속을 잡아야 마음이 놓이고, 사람을 만날 일이 없으면 밖에 나가서 햇뼡을 쬐거나, 아주 잠깐 커피 한잔을 투고해 드라이브를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속에 30분이라도 있다 오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사람.  빌딩 숲에서, 지하철 소리, 자동차 소리, 사이렌 소리 등 여러 소음들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전형적인 도시 사람.  울적해도 샤워하고, 가벼운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를 정돈하고, 깔끔하게 옷을 입으면 기분이 전환되던 긍정적인 사람이다.  적어도 그렇게 38년을 살아왔다.


최근 몇 개월간 마주한 나는 동굴 속에 기어들어가 마늘이 먹고 싶은 곰이다.  살면서 이런 나를 마주한 적이 두세 번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랜만이라 참 낯설다. 아주 가끔 나오는 지독히 내향적인 너.  틈만 나면 그저 혼자 있고 싶다.  혼자 있는 시간은 아이들이 학교를 간 순간, 라이드를 빼면 하루 6시간이 허락이 되지만, 그 시간마저도 집안일에 치여서 설거지하고, 빨래를 하고, 정리를 하고, 밥 먹고, 애들 하교 후 일정들 준비하면 그렇게 허무하게 빛의 속도로 지나가버리는 나의 시간이 지독하게 아까워 눈물이 났다.  픽업을 가야 하는 3시가 되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벌써 3시지? 왜 나의 시간은 이렇게 짧은 것인가.  조금 오랜 시간.  그냥 긴장감 없이 혼자 앉아서 책 보는 시간, 혼자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 혼자 글을 쓰는 시간, 그냥 혼자 멍 때리고 앉아있는 시간. 이 시간이 지독하게, 간절하게 필요해.


시든 꽃. 시들어버린 꽃. 눈부신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고 싶은 고개가 푹 숙여진 꽃 한 송이.

간절하게 사람이 되고 싶은, 햇빛을 피해 어둠 속으로 들어가 생마늘만 먹어도 달게 느껴지는 곰 한 마리.

어쩌면 갇혀있는 새장을 탈출해 날개를 펴고 넓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싶은 싶은 독수리.

아니, 어쩌면 다 녹아내려 형체도 모르겠는 눈사람. 다시 엄청난 추위 속으로 가고 싶은 눈코입만 겨우 붙어있는 울라프.


무엇을 해도 마음이 불편해. 나뭇가지에 겨우 달랑달랑 붙어 있다. 센 바람이 불면 휙 날아가버리는 낙엽 같은 불안한 마음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있다.  사람을 만나고와도 에너지가 충전이 되지 않아. 나를 위해 커피 한잔을 사 마시던 소소한 행복도 크게 나에게 위로되지 않아.  심지어 커피 마니아인 나의 입에 커피가 더 이상 맛있지 않아.  좋아하던 품종과 브랜드의 와인도 별로. 나 자신의 취향 같은 건 사라졌다.


혼자 있으면 그나마 살 것 같다.  혼자서 책을 보면 숨을 쉬는 것 같다.  텅 빈 집에 혼자서 침대 위에 누우면 너무 따스하다.  혼자 글을 쓰고 있으면 꼭 병원 입원실에서 수혈받는 느낌.  요즘 지독하게 외로운데, 혼자이면 행복해.  이게 무엇일까.  번아웃을 넘어 나 자신을 거의 잃었다고 느낄 때, 본능적으로 다시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나는 외향인에서 내향인으로 180도 전향이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내 인생에서 손에 꼽힌다.


그동안은 답답해서 더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데 못 나가서 힘들거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나의 욕망만큼 다 이루지 못할 때 답답했다.  지금은 사회의 시선과 남들의 평가, 그리고 누군가의 잣대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순도 높은 100프로의 나 자신이고 싶다.  그냥 껍질 다 벗겨낸 알몸의 나만 마주하고 싶다.  넌 누구니.  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너는 무엇을 원하니.  네가 행복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하니.


리셋을 원해.  내 환경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나 자신을 완전히 바꾸고 싶어.  내가 살던 잘못된 방식, 고치고 싶던 나의 습관, 내가 싫어하는 나의 성격. 그리고 다 비워낸 다음엔 진짜들로 채우고 싶어.  더 바른 사람으로, 더 똑똑한 사람으로, 더 마음이 넓은 사람으로, 내면이 더 아름다운 사람으로.  앞으로의 삶은 지금과 다르게 살고 싶어.  그래서 나는 동굴 속에 들어가 매운 마늘을 먹으며 눈물을 왕창 쏟아내고 싶어.


딱히 후회할 만한 일도 없었고, 잘못된 일도 없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나의 모습이 끔찍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살다 간 삶의 중심도 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남들의 시선에 맞춰 어중간한 어디쯤에서 후회만 하고 있을 것 같단 불안감.  나의 40대는 제대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20대 30대 철 없이 살았다면 40대부터는 진짜 나로 살아가야겠단 다짐.  근데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 답을 찾을 때까지 나는 계속 동굴 속에 들어가 있으려고.  언젠간 다시 나오고 싶은 순간이 오겠지.  그땐 인간의 모습으로 나올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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