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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응구
Apr 16. 2023
심정지인데 위치가 산
119 수보요원의 일상
네 119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기, 여기 OO산인데요, 옆에 숨을 안 쉬어요
네 일단 차는 바로 출발시키겠습니다. 의식 없고 숨 안 쉬는 거죠 어깨 쪽 세게 꼬집어볼게요
잠깐 지시를 하고 몇 초의 여유동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한다.
지금 산이라고? 그냥 심정지도 정신없는데 대원들이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가는 동안 심폐소생술을 계속할 수는 있을까
소요시간은? 그럼 구조대원도 추가로 편성하고... 헬기도 고려해야겠네 차가 진입 가능한 위치여야 할 텐데...
꼬집어도 아무 반응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네 우선 스피커폰으로 바꾸시고 평평한 곳에 하늘 보게 바로 눕힐게요
양쪽 젖꼭지 사이에 딱딱한 뼈 있죠 양손을 포개고 깍지 낀 뒤에 체중 실어서 1초에 두 번씩 5cm 이상 누를게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누르고 있으시죠? 계속하면서 대답하세요 거기 현장에는 몇 분이 계세요?
5명 있고 이 분은 외국인이에요
맙소사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 5명인 것과 신고자가 차분하다는 것 외에 나를 당황시키는 것이 점점 늘어난다.
네, 나이대는 어떻게 되고 관계는 어떻게 되세요 아시는 분이에요?
네네 같이 등산하다가 갑자기 쓰러지더니 숨을 안 쉬어요
네.. 평소에 어디 아픈 곳 있는지는 알아요?
아니요 그런 건 전혀 몰라요
나이대랑 성별은요?
한... 60대? 남자에요
네 알겠습니다 차량은 보내놨고 위치가 산이다 보니 오래 걸립니다.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방법 확인 중입니다.
피로가 누적되니까 2분 정도마다 교대로 가슴압박하세요
정확한 위치를 조회하려 합니다. 다른 전화받을 수 있는 휴대전화 알려주세요
여기까지가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 최소한의 조치..
이제 계속해서 환자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적절한 심폐소생술이 지속되고 있는지 지도하는 것.
환자의 정확한 위치와 현장대원의 출동경로, 헬기 등 동원 가능한 자원을 확인.
물론 이 모든 일을 혼자 하기에는 능률이 떨어진다. 이럴 때 팀단위로 서로 도와주고 확인하며,
신고자에게는 진행상황을 알려주어 막연하게 빨리 도착한다기보다는 현실적인 상황을 안내한다.
신고자도 막막하리라...
신고를 하면 어떻게든 이 상황이 해결되리라는 믿음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본인들이 책임지고 심폐소생술을 수행해야 할지를 받아들이는 이 상황이
팀원들의 도움으로 gps위치를 확인했으나 차량으로 최대한 올라가도 한참을 산행해야 하는 사실과
비로 인해 헬기가 뜰 수 없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받아들여질까...
마지막으로 신고자도 우리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심정지 상황에서 아무리 빨라도 30분 이상은 걸릴 듯한데... 심정지 후 5분 이후부터
조금씩 뇌에 비가역적 손상이 오기 시작한다. 물론 심폐소생술을 잘하면 더 늦출 수 있고 소생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마지막내용은 결국 신고자에게 말하지 못한 채 영상통화로 전환하여 자세는 어떤지 속도나 빠르기 피로도 등을 계속 확인하면서
소방대원이 현장도착하는
50분이라는 시간 동안 통화를 지속하였다.
전혀 가망 없는 건 아니지만 응급의료종사자도 아닌 일반인을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심폐소생술을 지시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우리도 1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심폐소생술을 하면 기진맥진한데 참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이었고
법률에 심폐소생술을 중단해도 되는 사유 중 피로도에 의해 더 이상 불가한 경우가 있다.
하여 너무 힘드시다면 그만두셔도 될 거 같다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할 때면
신고자들이 서로 교대할까요? 하며 물어가며 더욱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부끄럽고 울컥했고
저 환자는 제발 살았으면, 그리고 저분들은 어떻게든 상을 내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또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
오늘 일을 잊지 말자' 하고 글을 썼다. 앞으로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나 지금처럼 감히 내가 한 생명의 소생을 멈추려고 고민하는 순간
이 날을 기억하자. 저분들께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자. 최선을 다했는가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사실 지금까지 쓴 글도 얼마 안 되지만 그동안 너무 바빠 글을 쓸 여유가 없었던 듯하다.
하고 싶었던 얘기를 가볍게 일기처럼 써보자는 취지로 써보았으나 내 글은 너무나 형편없었고 쓸 때마다 마음에 안 들었다.
그리고 최근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했는데 내 전공을 더 배우고 싶어서 2년 정도 고민해 오던 일을 결국 시작했다.
돌아온 건 평균 5시간의 수면시간과 빠듯한 생활비 그럼에도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에 버틸만한 듯하다..?:)
논문을 써가며 내 글솜씨에 다시 충격을 먹고 이제는 글을 올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도 오늘만큼은 작성하고 싶었다.
오늘 느꼈던 이 감정을 내일은 잊을 듯하여, 서투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냈다.
여러분도 용기 내어 고백할 일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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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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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한민국 평균남자인 119구급대원입니다. 솔직담백한 글로 만나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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