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리 <만복이네 떡집> 시리즈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쓴다. 김리리 작가의 <만복이네 떡집>은 전혀 슬픈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의 성공에 힘입은 후속작 <장군이네 떡집>, <소원떡집> 등도 마찬가지다.
저마다의 고민을 품은 아이들이 신비한 떡집에서 신비한 떡을 사먹고 일상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이 ’떡집‘ 시리즈의 기본 틀이다. 이런 ‘신비한 가게’ 이야기는 예전부터 어른∙아이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다양하게 변주되어온 검증된 포맷이고, ‘떡집’ 시리즈는 따뜻한 필치로 아이들의 고민을 그려낸다. 굳이 비교하면 <전천당>보다는 좀더 어린 친구들을 위한, 쉽고 따뜻한 버전의 신비한 가게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림보다 글자가 많은 책으로 넘어가는 첫단계로 읽기에 좋아보이고, 풀빵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둘 무렵 ‘떡집‘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었다. 이후에도 <달콩이네 떡집> 등 신간 소식이 들리면 사읽었는데, 가장 최근 책은 2024년에 나온 <왕구리네 떡집>이다. 풀빵은 이제 ‘전천당’을 재미있게 읽지만 ‘떡집’도 새로 나오면 챙겨본다.
문제는 재작년에 나온 여섯번째 책 <둥실이네 떡집>이었다. 어쩌다보니 내가 택배 포장을 뜯고 먼저 읽게 되었는데, 초장부터 가슴이 철렁했다. 주인공 여울이네 집 고양이가 복막염에 걸려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진단 받으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 어쩌나. 우리집에도 나이든 고양이가 한마리 있는데. 이번 책은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래에는 <둥실이네 떡집>, <해님 달님 떡집>의 결말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병든 고양이 둥실이는 ‘고통이 사르르 사라지는 약떡’, ‘매화처럼 몸이 가벼워지는 매화떡’을 먹고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망개떡’을 먹고 사람으로 변신해 여울이네 학교 앞으로 찾아간다.
책을 다 읽은 풀빵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 메리(우리집 고양이, 가명)는 나중에 죽기 전에 나한테 인사하러 안 올 거같아.
- 왜?
- 나는 이유가 있어서 혼낸 건데..(오열)
우리집 고양이는 풀빵이 태어나기 몇년 전부터 함께 살았는데, 풀빵과는 별로 다정한 사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메리가 딱히 풀빵에게 적대적으로 구는 건 아니었지만, 나나 남편에게 하는 것처럼 풀빵에게 와서 안기고 애교부리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풀빵도 메리에게 약간 덜 친근하게 굴었고, 혹시 내가 소파에 누워 메리를 안고있는 모습이라도 발견하면 달려와서 “엄마법[주1] 위반으로 체포한다!”라고 외치며 메리를 쫓아버리곤 했다.
*[주1] 엄마법: 엄마가 소파에 누워있을 때 풀빵 외에는 그 옆에 누워 안길 수 없다는 내용의 법
간혹 메리가 침구에 오줌싸거나 커튼을 발톱으로 긁어 뜯어놓는 등 저지레를 하면, 풀빵이 짐짓 큰소리로 나무라거나 쿠션으로 내리치는 시늉을 하며 혼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자기는 ‘이유가 있어서’ 혼낸건데 그로 인해 메리가 자기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어하지 않을거라 생각하니 슬펐나보다.
그 마음이 전해져서 나도 마음이 시큰했다. 우리집 고양이는 아직 건강하지만 많이 늙었고, 풀빵도 그 사실을 안다. 메리의 수명이 다하는 날이 왔을 때 우리는 그 일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집 고양이와 풀빵은 여전히 다정한 사이라고는 못하겠으나, 우리집에서 고양이 간식을 가장 살뜰히 챙겨주는 사람은 풀빵이다. 메리도 늙어서 그런지, 풀빵이 좀 귀찮게 굴어도 예전보다 반응이 덜 까칠하다. 의젓하게 늙은 고양이를 보살피는 풀빵을 보고 있으면 내가 얘를 과보호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사실 풀빵은 새드엔딩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나이인데 내가 과도하게 신경쓰는 것 아닌지.
참고로 <둥실이네 떡집> 이후에 나온 ‘떡집’ 시리즈엔 주요 캐릭터가 죽는 이야기는 없다. <해님 달님 떡집>의 해님∙달님이 엄마도 수술 잘 끝내고 돌아온다. 말미에 왕구리가 눈오는 길 위에 쓰러져 얼음처럼 굳어가는 걸로 끝나는 바람에 불안했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올해 출간된 <왕구리네 떡집>을 보면 왕구리는 멀쩡히 살아있다.
김리리 <만복이네 떡집> 시리즈
- 추천연령: (한국나이) 7세~초3
- 특징: 따뜻한 필치로 쓴 ’신비한 가게‘ 이야기. 그림책에서 글책으로 넘어갈 때 읽기 좋음.
- 주의: 반려동물 키우는 집이라면 <둥실이네 떡집>에 눈물버튼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