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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Jun 13. 2024

정력과 단전호흡

#9

아이들은 해맑다. 


해맑다는 말의 해석은 좋은 의미로 나쁜 때가 안 묻고 순수하며 밝다는 의미이고, 또 다른 의미로 잘 모르기 때문에 고민이 없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 웃음과 같은 해맑음과 천진난만함은 사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일 때도 있다. 세월을 느끼는 나이가 되고 인생이 무상함을 느낄 때쯤엔 무언가 채우기보단 비우려고 노력하는 시기가 온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궁극적으로 아이들의 그것을, 더 나아가 산모 배안의 태아를 추구하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마음을 비우고자 하는 도(道)를 어렴풋이 흠모했다. 그것은 비단 마음의 수양뿐만 아니라 육체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래서 온라인상 정보와 책을 통해 단서를 찾으려 했지만 쉬운 길은 아니었다. 


수년동안 어디선가 주워들은 잡지식으로 명상과 단전호흡을 꾸준히 했고 나름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생각했던 발전의 단계-단전호흡 중 어떤 심상이 떠오르고 몸의 기운이 느껴지는 단계-가 더디고 성과가 지지부진하여 정체기에 머물러 있었다.


이 와중에 얻은 내 성과는 부끄럽게도 남성의 발기가 굉장히 좋아졌다는 것이다. 30대 시절까지 그것은 젊음이 주는 당연한 선물이므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원하는 것은 좀 더 고차원의 깨달음이었지만 좋은 스승이 없어서인지 그저 그런 채로 시간이 흘러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궁금했던 답을 찾기 위해 떠돌던 중 어떤 여자 도인과 연결이 되었다. 그 도인이 실제로 내가 근무하는 근처까지 와서 가르침을 준다고 하여, 반갑고 고마운 마음으로 그녀를 영접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XXX님이시죠?" 

"네. 맞아요. 반가워요."


겉으로 웃고 있었던 나는 정말 많이 놀랐다. 

그녀는 한마디로,

괴물 같았다.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긴 앞 이빨에 무성하리만큼 봉두난발인 머리, 그리고 입을 열 때마다 괴상망측해 보이는 구강구조까지. 물론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이는 진작 지났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외관은 기괴하여 전적으로 신뢰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기왕지사 만났으니 그녀에게 무언가를 얻을 요량으로 식사를 대접하며 나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곧 '천응조 지응조 월지월존호'를 공부할 시기가 되실 터인데,  천지가 감응해주지 않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바른 길을 계속 가신다면, 천지가 감응하여 원하는 뜻을 이룰 것으로 생각됩니다."


키야. 

무언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럴듯하고 고수다운 말이었다. 이 한마디에 나는 그 도인을 의심치 않고, 명상과 호흡수련에 매진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이상의 성과는 없었다.


그리고 3년 후.

나는 목디스크가 터지고, 이혼을 했다.


***


"내가 예전에 호흡과 도(道)에 조금 관심 있어서 이것저것 많이 노력한 적은 있어."


책 읽기와 독서 토론을 좋아하는 그녀와 난, 종교와 철학에 관련하여 이야기를 할 때 불교 및 다른 종교들도 호흡과 관련된 명상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 다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주장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일천한 경험도 섞었고.


"그래서 오빠는 뭘 얻었는데!?"

"음. 그러니까. 좀 말하기 거시기한데..."


나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정력이라고 해야 하나. 단전호흡을 계속하면 본인의 의지대로 잘 세울 수..."


그녀의 표정은 점점 예전에 만났던 여자 도인처럼 기괴하게 바뀌고 있었다.


"설마? 그 거짓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진짜. 리얼. 맹세코."

"근데 오빠는 왜!?"


아.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으니 주장을 해도 사실에 입각해야 하잖아.


그렇게 우리의 토론에서 내 목소리는 작아져갔다.


하지만 진짜라고.

명상과 호흡은 남성의 기운, 즉 양기를 폭발시킨다고. 내가 경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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