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감나무 아래에서 배운 인생의 지혜

by 이점록

감나무는 내 인생의 뿌리였다. 그 뿌리는 어린 시절 여리고 흔들리던 마음까지 단단히 붙잡아 주었다. 나는 그 넉넉한 그늘 아래서 울고 웃으며, 세월의 무늬를 배웠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은 가지마다 계절이 피었고, 엄마의 정성이 스며든 감마다 사랑이 익어갔다.


고향 마을 뒷산 밭둑, 아버지의 손끝에서 태어난 감나무들은 제각기 제자리를 지키고 섰다. 아버지는 봄마다 새 가지를 접붙이시며 "올해는 더 잘 열겠지"나지막이 읊조리셨다. 그 말씀에는 단지 탐스러운 감에 대한 기대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해를 기어이 살아내고야 말겠다는 한 가장의 굳건한 희망이었다.


가을걷이가 시작되면 온 가족이 감 따기에 나섰다. 아버지는 익은 감을 조심스레 따서 자루에 담았다. 무거운 짐을 지게에 지고 산길을 내려 오셨다. 굽은 허리, 굵어진 손마디, 그리고 땀으로 젖은 옷자락. 그 모든 것이 우리 가족의 생계였고, 부모님의 땀이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모든 풍경은 사무치는 그리움이자, 죄스러운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


해 질 녘, 아버지의 땀 냄새가 잦아들 무렵이면 부엌에서는 엄마의 분주한 손길이 시작됐다.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어내던 둔탁한 소리, 얇게 썬 국수가락이 툭툭 떨어지던 정겨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이윽고 엄마는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국수를 큰 그릇에 담아 내놓으셨다.


마루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얼굴에는 고단함 대신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그날의 저녁만큼은 세상 어떤 잔칫상도 부럽지 않았다. 한 그릇의 손국수 속에는 엄마의 정성과 우리 집의 사랑이 통째로 담겨 있었다.


엄마는 국수를 다 썰고 남은 반죽 마디를 잔불에 구워 내 주시곤 하셨다. 고소한 냄새가 부엌 안에 퍼지면, 나는 어느새 군침을 삼키며 그 곁에 앉아 있었다. 세상 어떤 음식보다 따뜻하고 정겨웠던 그맛, 이제는 다시 느낄 수 없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느는 엄마의 손국수가 남아 있다. 문득 코끝이 시큰해진다.


물론, 어린 시절의 그 감이 익기를 기다릴만큼 어른스럽지는 못했다. 동무들과 어울려 덜 익은 '땡감'을 따 먹던 기억이 선명하다. 홍시도 아닌, 떫디떫은 감을 따서 그대로 베어 무는 것이다. 그때는 번듯한 과도도 없었다. 그저 담벼락의 뾰족한 돌에 감을 대고 손바닥으로 '탁'치면 감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떫었지만 소금을 살짝 뿌려 먹으면 그나마 견딜 만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땡감을 많이 먹고 나면 변을 보지 못해 고생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우리는 참 순수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그 기억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따뜻하게 적신다.


그렇게 떫은 맛으로 기억되던 감나무는, 사실 우리 민족에게 나눔의 지혜를 가르쳐 준 나무이기도 했다. 감은 누가 뭐래도 가을을 대표하는 과일이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가지마다 주홍빛으로 물든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풍경은 그 자체로 한국의 가을을 상징한다.


우리 조상들은 그 가을의 풍요 속에서도, 유난히 높은 가지에 달린 감 몇 개는 끝내 따지 않고 남겨두었다. 그것을 '까치밥'이라 불렀다. 이름 그대로 까치를 위한 밥, 즉 겨울을 앞둔 새들에게 남겨주는 선물이었다. 겉보기에 단순히 감 하나 남겨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풍요를 나누고, 사람 이외의 생명까지 생각했던 조상들의 넉넉한 인심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 감나무도 세월의 바람 속에 늙어가고 있지만, 내 마음속 감나무는 여전히 푸르다. 그것은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아버지의 손길과 가족의 사람, 그리고 한 시대의 삶이 고스란히 깃든 생명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감나무는 아직도 내 마음 한켠에서 조용히 말을 건넨다.

"삶이 떫을 때는 아직 덜 익은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봐."


감나무는 내게 단순한 추억이 아니다. 아버지의 손길과 엄마의 사랑이 고스란히 뿌리 내린 '감사(感謝)'의 나무다. 감 한 입에 어린 날의 웃음이 스며 있고,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삶의 지혜가 배어 있다. 가을의 끝자락, 붉은 감빛이 저녁놀에 물드는 순간 나는 다시금 깨닫는다.


인생이란 결국 저 붉은 감처럼 스스로 익어가며 서로에게 따뜻한 '까치밥'하나를 남겨주는 일이라는 것을, 나를 붙잡아 주었던 그 감나무 아래서 나는 배웠다.


#공감에세이 #오마이뉴스 #감나무 #땡감 #까치밥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청소년의 내일을 밝히는 사람들, 그 조용한 연대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