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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바나나와플 Aug 10. 2023

엄마가 채워놓은 마지막 쌀통

엄마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 집에서 하루하루를 엄마를 그리워하며 지내고 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고 현실을 직시하기란 그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였다.

한달이 좀 넘게 지난 여전히 난 신기루같아진 엄마의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린다.


이사온지 겨우 1년된 이 집에 거주전 다같이 왔을때가 기억이 난다. 가구도 없이 텅 빈 집에 다같이 케이크를 들고 가서 초를 불고 행복해 하던 우리들이 떠오른다. 드디어 좁은 집에서의 가난한 과거는 청산하고 행복한 일들만 기다릴 것이라 믿었다. 비록 지하철도 없는 시골동네이지만 처음 살아보는 아파트에서 우리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매일 아침마다 청소기로 바닥을 밀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빠가 왜 그렇게 아침마다 청소를 하냐는 말에 이 집에 이사 온게 기뻐서 깨끗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안방에 화장대와 세트인 TV다이를 두었다. 그게 내가 살면서 본 엄마의 첫 화장대였다. 겨울이 되면 거실 바닥에 카페트를 깔고 여름이 되면 쇼파에 여름 패드를 깔았다. 집과 어울리는 식탁을 두고 싶다며 하얀 식탁을 골라서 예쁜 실리콘 매트를 위에 깔아 두었다. 아빠는 이렇게 하얀식탁을 사면 매번 닦아야한다며 투정을 부렸다. 엄마와 나는 예쁜 식탁에 마음이 뺏겨 아빠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나에게 부엌에 이쁜 액자를 걸어 두고 싶다고 했다. 나는 쓸데없이 괜히 액자 붙이지 말고 그냥 살자고 했었는데 그게 엄마가 집을 꾸미고 싶어했던 마지막 소품이었다. 엄마는 화훼단지에 가서 꽃을 사오는걸 좋아했는데 식물키우는 것에는 재능이 없어 매번 시들어 죽었다. 그럼에도 집이 화사해져서 사고 싶다는 말에 매번 타박하며 키울 자신도 없으면서 사지말자고 했던게 후회가 된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때는 생전 여행 한번 안가본 엄마가 우리에게 화가나 여행을 떠나버린것만 같았다. 엄마는 그렇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여행을 떠나버렸다. 엄마의 침대와 화장대는 이사와서 새로 산 것들이라 겨우 1년이 된 가구들이 제자리에서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덮던 이불과 매일같이 바르고 나가던 화장품들은 초라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집에 있는 모든것들이 엄마와 연관되어 있었다. 안방문에 걸린 크리스마스 장식은 엄마가 이쁘지 않나며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보았다고 했었고 거실에 앉아서 배달음식을 시키고 넷플릭스에 재미있는게 없느냐며 순위 작품들중에 하나를 틀어 재밌게 보고 방에 누워있는 내가 추울까봐 창문을 닫아주고 아침밥을 먹으라며 깨우는 순간들 하나하나가 떠오른다.


기숙사에서 주말마다 내려오는 나에게 엄마는 항상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돼지고기 김치찌개, 명란젓, 백숙 일하고 피곤한 와중에도 지하철까지 나를 데리러 오고 집에 와서 식탁을 차려줬다.

그때 엄마가 차려운 음식을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인스타를 보다가 일본 예능에서 한 여성이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해놓은 고기조림을 냉동보관 해놓았는데 10년이 지났지만 탈이 나더라도 먹고 싶다며 요리사를 초청해 가열한 후 먹는 모습을 보고 엄마에게 만약 엄마가 죽는다면 엄마의 김치찌개는 얼려뒀다가 몇년이 지나더라고 먹을꺼야 라고 내가 말하며 다같이 듣고 웃었는데 그게 엄마가 쓰러지기 1주일 전 이야기다.


차마 엄마의 물건을 치우지 못하고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이 집에서 아빠와 최대한 담담하게 받아들일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내가 가장 무서운건 엄마의 손길이 닿은 곳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화장실에 휴지통에 씌워놓은 봉투, 만들어 놓은 반찬, 담아놓은 쌀통, 개어놓은 양말같이 살림살이를 해놓은 것이 이제는 줄어들고 있다. 밥이 질게 될때마다 물양을 똑같이 맞출 수 없냐며 엄마에게 빈정대던 아빠는 이제 평생 스스로 밥을 지어먹어야 한다. 아무리 지어도 물양을 못찾춰서 맛이 없는 밥통에서 밥을 푸며 더이상 엄마가 차려주지 않는 밥상에서 밥을 먹었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는 채로 벌써 한달.


끝끝내, 쌀통에 엄마가 채워놓은 쌀은 끝이 났다. 허무한 감정이 들었다. 남들보다 큰 엄마의 키에 맞춘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는 새벽 6시가 되면 일어나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었다. 아빠와 밥을 먹고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일하러 나갔다. 일어나면 차려진 밥상을 먹고 나갈준비를 했다. 그땐 몰랐지만 엄마가 해주는 밥은 내 인생에 있어서 다신 없을 무한한 사랑이며 대가와 조건이 없는 베품이었다. 텅빈 쌀통은 엄마의 부재를 잔인하게 직시시켰다. 애써 외면하던 죽음을 눈앞에 내놓은 것이었다. 단 한번이라도 마지막 인사조차 못한 엄마를 만날수만 있다면 내가 엄마를 위한 따뜻한 식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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