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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착각] 다수가 아니라 착각이었다

우리는 왜 ‘다들 그렇다니까’에 휘둘릴까?

by 책피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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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눈치 없으면 사회생활 못 해."
"다들 그렇게 생각하던데?"
"그냥 조용히 따라가면 돼."


이런 말들, 어디서든 듣게 된다.

가끔은, 우리 스스로도 그런 말을 한다.


왜 우리는 ‘말하지 않는 다수’가 되었을까?

왜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눈치를 볼까?



우리는 언제부터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을까?


‘다들 그런 생각하잖아’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의심이 든다.

정말 다들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아니면, 다들 그렇게 하는 척하는 걸까?

[집단 착각] 은 대부분의 사람은 실제로 동의하지 않지만,

주변이 그렇게 믿는다고 믿기 때문에 따라가는 거라고 말한다.


진짜 무서운 건, 그 ‘따라감’이 너무 자연스럽고 반복되어

결국 본인 생각이 뭔지조차 잃어버리는 지점까지 간다는 거다.

진심이 침묵하고, 눈치가 소리 지르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안에서 서서히 자신을 잃는다.



소수의 목소리가 다수처럼 들리는 사회


우리는 무리에 속하고 싶어 한다. 눈치를 보는 건 생존 본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본능이, 현실 왜곡 장치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뇌가 그렇게 정교하지 않다.

큰 소리를 여러 번 들으면 그게 다수의 의견이라 착각한다.


실제로 소셜 미디어에서는 5%의 목소리, 혹은 5%의 봇 계정이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결국 ‘다수’의 환상이 얼마나 쉽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2017년, Fyre Festival은

SNS에서 ‘힙하다’는 이미지 하나로 티켓이 매진됐고,

모두가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지옥의 페스티벌에 줄을 섰다.

음식은 없었고, 무대는 비었고, 텐트는 난민촌 수준이었다.


2023년, 유튜버 로건 폴이 만든 Prime Energy는

“마시면 운동능력 상승, 셀럽처럼 되는 기분”이라는 틱톡 바이럴로 세계를 휩쓸었다.

실제 성분은 과도한 카페인, 그리고 아무 근거 없는 열광, 그리고 FDA가 경고까지.


두 사례 모두 누구도 멈추지 않았고,

아무도 “이건 아닌데”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트릭이 아니라

내가 말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착각이 진실이 된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동조일 수 있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멈추지 못한 길


“이게 맞는 것 같아.”

누구도 확신하진 않지만, 다들 그렇게 믿는다고 착각하면서

우리는 다 함께 틀릴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결론은

누구도 원치 않는 정책, 왜곡된 여론, 그리고 ‘말하지 않는 다수’가 늘어나는 사회다.


집단 착각은 오해를 했다 정도가 아니다.

서로 눈치만 보며, 누구도 중심을 잡지 못하는 상태.

신뢰가 깨지고, 공동체의 응집력이 느슨해지면서,

우리는 조금씩 '함께 있음'의 의미를 잃어간다.


더 무서운 건, 이 모든 시작이 거창한 거부가 아니라

아주 작은 망설임이었다는 거다.


“굳이 내가 말 안 해도 되겠지.”

“지금은 아닌 것 같아.”

“말하면 괜히 불편해지잖아.”


그 침묵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말하지 않는 게 더 자연스러워졌고,
어느새 말하지 않는 것이 시스템이 되었다.

사회는 그렇게 눈치와 불안 위에 조용히 설계된다.



진짜 위험은,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사실을 모를 때


[집단 착각] 은 우리가 나눠진 게 아니라, 그렇게 착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안에서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서로를 극단주의자라고 단정하는 일처럼.

사실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상대는 다르게 생각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 누구도 확인하지 않았고,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결국 서로가 다른 줄 알고, 서로를 멀리하게 된다.

진짜 위험은,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사실을 모를 때 시작된다.


하지만 과장된 댓글, 반복되는 부정적 메시지,

알고리즘이 뽑아 준 ‘노이즈’가 “우린 완전히 다르다”는 신화를 만든다.


그 신화는 우리를 갈라놓는다.

그리고 더 이상 질문이 사라질 때,

그 신화는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는다.



말하지 않는 나, 사라지는 진실


나는 내 생각을 말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순간, 나도 다수의 분위기에 침묵했고,

가끔은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결국, 인정받고 싶고 소외당하기 싫어서다.


집단 착각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거대한 연극에 우리가 참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연극이 끝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계속해서 무대에 서 있는 것이다.


[집단 착각] 은 그냥 문제를 지적하는 책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함께 남긴다.


내가 속한 집단의 생각은 진짜일까?
내가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침묵이 계속될수록, 나는 점점 나다움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
지금 이 말,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걸까, 아니면 해도 되는 말이니까 하는 걸까?


정직함은 관계를 흔들 수 있다.

하지만 정직하지 않으면, 관계가 남고 나는 사라진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더 많은 대화, 더 적은 착각


[집단착각]은 소규모의, 솔직한 대화를 제안한다.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오가고, 같은 생각이 아니어도 괜찮은 공간.


그렇게 시작되는 대화 하나가,

소수의 의견이 아닌 진짜 나의 의견을 찾아내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실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말해도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 시작은 아마도 ‘말하지 않는 나’에서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생각해 볼 질문들

1. 우리가 정말로 다르다고 ‘믿는 이유’는 어디서 왔을까?

2. 나는 언제부터 “말 안 하는 게 낫다”라고 믿게 되었을까? 그 믿음은 누구의 이익이었을까?

3. 내가 속한 조직은 진짜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일까, 아니면 똑같은 눈치를 보는 사람들일까?

4. 내가 ‘말하지 않은 채’ 넘어간 결정은, 나중에 어떤 비용으로 돌아올까?

5. 지금 우리가 fact라고 믿는 데이터,
그건 진짜 정보 일까? 아니면 편향과 증폭이 만든 착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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