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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보이지 않는 노동이 만든

AI는 허공의 마법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구조를 그대로 비춘다

by 책피바라
XL


AI는 자동화라고 불렸다.

실제로는 추출이었다.

무엇을? 노동, 자원, 창작물을.


우리는 편리함을 본다.
편리함을 지탱하는 손은 보이지 않는다.


자동화가 아니라 추출이다


머시는 하루 종일 교통사고 영상을 봤다.

죽어가는 장면을 반복해서 검수했다.

AI 학습을 위한 주석 작업이었다.

고통은 그녀의 몫이었다.


알렉스는 아마존에서 일했다.

성과 압박, 촘촘한 감시, 초록불과 빨간불.

빨간불이 켜지는 순간, 그는 무급 초과근무자가 되었다.


화려한 자동화처럼 보였다.

뒤에서는 사람이 갈려 나갔다.



창작물의 재조립


로라는 성우였다.

어느 날, 자신의 목소리가 복제되어 돌아왔다.

허락은 없었다.
목소리는 데이터로 잘려 나갔고, 알고리즘으로 재조립되었다.


창작은 어디까지 내 것일까.

AI가 만드는 건 무(無)에서가 아니었다.

이미 존재하던 의미에서였다. 의미는 종종 사라졌다.



중립이 아니라 권력


해저 케이블을 누가 깔다.

서버, 전력, 데이터 흐름을 누가 쥔다.

답은 몇 개의 이름으로 수렴했다.


기술은 중립이 아니었다.

소유와 결정이 방향을 만들었다.

권력은 집중되었다.

과거의 구조가 새로운 포맷으로 돌아왔다.



언어와 사고, 정서의 재배선


AI는 언어 모델이었다.

읽기와 쓰기를 바꿨다.

언어가 달라지면 사고와 정서도 달라졌다.


도구는 세계와의 연결을 만든다.

동시에 단절도 만든다.

무엇과 연결되고, 무엇에서 멀어지는지 스스로 알아차려야 했다.

그 알아차림이 없을 때, 사고는 쉽게 위탁됐다.



쉬워진 능력, 약해진 자율


글쓰기는 빨라졌다.

이미지는 쉽게 그려졌다.

학습은 단축됐다.


그 대신, 스스로의 의미를 만들 시간이 사라졌다.

정답을 찾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내가 왜 쓰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는 느려졌다.


편리함은 늘었다.

자율은 줄었다.



현재와 미래, 답을 주지 않는 책들


한 권은 언어와 쓰기를 통해 사고의 변화를 비췄다.

다른 한 권은 바둑에서 이미 벌어진 변화를 보여줬다.

이 책은 추출의 구조를 드러냈다.


서로 다른 길이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AI는 사회와 상호작용 속에서만 이해된다.

기술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좋은 삶을 묻는 기술


“AI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가 아니었다.

“우리가 AI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였다.


좋은 삶이 먼저였다.

그다음이 기술이었다.

가치가 없으면 방향은 없다.



질문이 남는다


AI는 정말 자유를 넓히는가, 아니면 감시와 효율의 언어로 우리를 묶는가.

편리함은 누구의 노동과 자원을 전제로 성립하는가.

창작의 값은 어디에서 빠져나가고, 누구의 손에 쌓이는가.

언어가 바뀐 뒤, 나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가.

내가 쓰는 도구는 나를 어디에 연결하고, 어디에서 단절시키는가.

기술의 방향을 결정하는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정답은 아직 없다. 그러나 질문은 분명해졌다.

보이지 않는 손을 본 뒤에도,

나는 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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